코스트코 창립자 짐 시네갈

코스트코 창립자 짐 시네갈.
코스트코 매장.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면 기업의 규율이 무너지고 탐욕만 남는다. 고객이 떠나고 기업은 낙오하게 된다.”

글로벌 유통업체 코스트코의 창립자인 짐 시네갈의 말은 기업의 최대목표는 이윤추구라는 말과 배치된다. 하지만 코스트코의 수익률을 보면 어리둥절하다. 전 세계 유통업체 중 미국 월마트에 이어 세계 2위인 데다, 지난해 기준 한국 유통업체 상위 200개 기업의 매출 총액(128조4,000억원)도 코스트코(137조8,000억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다. “마진율을 최소로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는 시네갈의 경영철학이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코스트코를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한 비결이다. 한국에서도 2006년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할 때도 코스트코만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미국 월가는 “코스트코가 마진율을 높이고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는 등 더 쥐어짰다면 이익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충고하지만 시네갈은 여전히 고개를 젓는다. 시네갈은 지난 2011년 최고경영자(CEO)에서 은퇴했지만 현재 고문으로 코스트코에 대한 자신의 경영철학을 지켜나가고 있다. 1983년 설립 첫해 연 매출 6억달러였던 코스트코는 2016년 기준 1,187억달러를 기록했다. 온라인 유통공룡인 ‘아마존’의 등장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몰락이 거듭되는 속에서도 코스트코만은 순항 중이다. 시네갈은 “누구보다 더 싸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파는 게 유통사업의 기본”이라며 “여기에 좋은 사람을 고용하고, 좋은 직업과 임금 및 경력을 제공하면 사업은 저절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에서 CEO까지

시네갈이 유통업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시네갈은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냈다. 홀로 된 어머니가 그를 키울 능력이 없자 보육시설이 맡긴 것이다. 생계가 어려워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 일을 전전했다. 미 샌디에이고 시립대에 다니던 1954년 어느 날 그는 대형할인점 ‘페드마트’에서 매트리스 하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아르바이트였고 일을 도와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찾아간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어서 “평생의 업이 될지는 몰랐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처음 접한 대형 할인점은 그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당시 페드마트는 생긴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백화점 수준의 질 높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파는 창고형 마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많은 상품을 시멘트 바닥으로 된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창고에 진열해놓고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페드마트의 모습은 현재의 코스트코 매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네갈은 “일을 하다 보니 유통이 내게 맞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평생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네갈의 스승은 페드마트의 창업자 솔 프라이스로 여겨진다. 프라이스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경영철학은 매장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다. 프라이스는 이를 기준으로 상품의 종류와 가격산정 및 진열방식, 환불정책 등을 정했다. 시네갈은 29년간 프라이스 아래에서 일했다. 매트리스 하역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한 시네갈은 페드마트의 수석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가치를 창출하고 직원과 고객을 섬기며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주주에게 보답한다.” 프라이스는 입버릇처럼 충고했고, 시네갈의 마음에 새겨지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프라이스가 1976년 페드마트를 독일 사업자에게 매각하고 새로운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프라이스클럽’을 설립하자, 시네갈은 프라이스를 따라나서 그를 도왔다.

시네갈은 47세이던 1983년 투자가인 제프 브로트먼과 함께 750만 달러를 들여 미국 시애틀 시내에 코스트코를 창업했다. 불혹을 한참 넘은 뒤늦은 도전이었다. 평생 유통업에 몸담아온 시네갈은 줄곧 ‘독립’의 꿈을 키웠다. “죽기 전날까지 제 일에 몸과 열정을 다 바치고 싶었다.” 1980년대 당시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를 바탕으로 한 경기부양 정책으로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의 소비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로선 유통매장을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판단했다. 다만 당시 미 유통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월마트’가 문제였다. 월마트는 1980년대 중반 미국 전역에 1,200개의 매장을 보유, 1988년엔 미국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유통업체”로 자리매김한 강자였다.

시네갈은 월마트와 반대의 길을 걷는 전략을 택했다.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처럼 최대이익을 노리지 않고, 최소이익을 추구하겠다. 생활필수품과 먹거리를 파는 할인점이 이익률을 높여 배를 불리면 결국 지속 가능성 측면에선 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네갈의 경영전략은 사실 프라이스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제한된 품목을 판매하고, 가격은 낮게 유지하며, 대용량을 팔고,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되 개인을 비롯 소매업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다. 쉽게 얘기하면 이익을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파는 ‘박리다매’(薄利多賣)다. 시네갈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코스트코는 설립 첫해 매출 1억 달러에서 폭발적 성장을 거듭,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6년 만에 30억 달러 매출을 올린 독보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엔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서 24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기준 전세계에 74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유통 체인점으로 자리를 굳혔다.

코스트코 매장에 진열된 상품들.
코스트코 창립자 짐 시네갈.
“최대한 많이 판다”

시네갈은 코스트코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판매가격과 원가 차이인 마진율을 15%로 제한하는 ‘15% 법칙’을 고집한다. 월마트 등 대형할인점의 마진율(20~25%)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마진율이 낮으면 그만큼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시네갈은 “가격 인상은 마약과 같아 기업은 계속 원한다”며 “하지만 15%는 우리도 돈을 벌고 고객도 만족하는 가장 적당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코스트코는 대신 수익의 모자란 부분을 회원제 연회비로 채운다. 코스트코에서 물건을 구매하려면 유료 회원제 가입이 필수다. 코스트코의 연회비는 국가와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미국의 경우 60~120달러(6만8,000원~13만6,000원), 한국은 3만3,000원~3만8,000원 정도다. 지난 2016년 기준 연회비를 낸 전 세계 유료 회원은 4,760만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총 영업이익의 72%를 차지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코스트코 비즈니스 모델은 창고형 할인점에서 가장 가격경쟁력이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회원을 모집하고, 수익은 회원들이 내는 연회비에서 거두는 방식”이라며 “코스트코에 신뢰가 쌓인 회원들은 재가입율 90%를 보여 코스트코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트코는 매장 전시 품목 수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안도 고안해냈다. 월마트는 10만개가 넘는 상품을 진열하지만 코스트코는 4,000개 정도에 불과하다. 월마트는 많은 브랜드와 용량의 상품을 갖춰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반면 코스트코는 자사가 추천하는 상품 1, 2개만 골라 전시하는 것이다. 코스트코가 고품질이면서도 가격경쟁력 있는 제품을 직접 선별해 소비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제품 선택을 단순화해 구매를 쉽게 하고, 진열도 단순화해 창고 관리비도 대폭 줄일 수 있다. 실제 코스트코가 원가 100달러짜리 상품을 판매하는 데 드는 관리비용은 평균 11달러인 반면 월마트는 25달러로 두 배가 넘는다. 모두 코스트코 제품의 가격을 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코스트코는 또 ‘1 국가 1 카드’ 정책을 택하고 있다. 코스트코에선 현금이나 한 종류의 카드로 밖에 결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삼성카드(코스트코 리워드)만 사용해야 한다. 가맹점 카드 수수료까지 줄여 제품가격을 더욱 낮추기 위한 코스트코의 정책이다. 한국에선 삼성카드가 다른 카드사들과 경쟁입찰을 통해 코스트코와 독점계약을 체결, 국내 카드업계의 수수료율(최고 2.5%)보다 현저히 낮은 0.7% 정도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네갈은 “코스트코의 연간 이익율은 2~3%에 불과하지만 월마트보다 제고 소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일정 수준의 이익률을 항상 유지한다”며 “월마트는 1년에 재고가 8번 바닥나는 데 비해 코스트코는 12번이나 된다며 최대한 많이 팔아 치우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코스트코 회원가입
“중산층이 살아나야 고객이 늘어난다.”

코스트코는 글로벌 유통업계에서도 임금이 상당히 높기로 유명하다. 코스트코 신입 직원의 시간당 임금은 13달러 정도지만, 전체 직원의 경우 초과근무 수당을 포함하지 않고도 평균 시급이 22달러에 달한다. 미국 유통업계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임금(2015년 기준 11달러)에 비해 두 배가량 높은 것이다. 코스트코는 올해 초 한국에서도 상품을 검수, 검품하고 기존 사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아르바이트 인력을 뽑으면서 시급을 1만원으로 책정했다. 한국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시간당 6,450원에서 7,530원으로 인상하면서 소매업자를 중심으로 후폭풍이 거세지만, 코스트코는 기존에도 시급 9,250원을 지급해왔다. 법정 근무시간을 초과할 경우 1.5배에 해당하는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고, 새벽ㆍ야근 근로자에겐 교통비(택시) 7,000원도 지급한다.

코스트코에서 직원 급여가 높은 건 시네갈의 확고한 경영신념 때문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항상 근로자들을 위한 임금인상에 찬성해왔다”며 “중산층이 강해질수록 코스트코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사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트코의 핵심 판매품목인 식료품의 주요 소비자는 중산층인 만큼, 이들의 소비가 늘어야 코스트코도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직원 만족도가 높을 때 회원제를 통해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스트코의 기업가치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코스트코는 승진 인사제도에도 내부 직원들을 뽑는 ‘순혈주의’로도 유명하다. 미국 중요한 관리직엔 유명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외부인사를 앉히는 경우가 많지만 코스트코는 경영진에서부터 중간 관리직까지 철저히 회사 내부에서 선발한다. 학위 유무나 아르바이트생 등 출신은 상관하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줘 코스트코를 찾는 고객들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시네갈이 한평생 써온 명함에는 CEO가 아닌 ‘1983년 이후 근무’(Since 1983)라고만 쓰여있다. 시네갈은 “직원이 행복할 때 그들은 최고의 코스트코 외교 대사”라면서 “직원들에게 좋은 급여를 지불하는 건 옳은 일인 동시에 훌륭한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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