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선의 외교 사례 정리 비결

무작정 뛰어들면 방향을 잃어
‘왜 하나’ 작업 목표가 나오면
‘어떻게’는 저절로 따라와
정조 승하 1년 전의 당부를
21년간 품고 있다가 작업 마쳐
기존 ‘동문휘고’ ‘통문관지’보다
훨씬 검색 쉬운 ‘사대고례’ 펴내
18세기 청 건륭제 연간에 제작된 '만국내조도(萬國來朝圖)'. 여러 나라 사신들이 정초에 청나라 황제에게 조회하는 의식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 하단 코끼리 오른편에 조선 사신들이 있다. 조선에게 대중국관계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 중요한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해낸 이는 다산이다.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사대고례’라는 책

앞 글에 이어 다산의 공부법에 대해 몇 차례 더 살펴야겠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을 말하고 인공지능(AI)을 얘기하지만, 다산의 치학(治學) 방법, 공부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등은 여전히 생산적이고 위력적이다.

다산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펴낸 책 중에 26권 10책 분량의 ‘사대고례(事大考例)’가 있다. 대청(對淸) 외교상 빈번하게 발생하는 각종 실무 접촉에서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이전 사례들을 주제별로 갈래 지워 정리한 책자다. 이 책은 원본이 일본 오사카 부립(府立) 나카노시마도서관(中之島圖書館)에 소장되어 있어 일반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책을 펴면 첫 장에 ‘사대고례찬집인기(事大考例纂輯因起)’가 나온다. 이 책을 왜 편찬하게 되었는지를 밝힌 내용이다. 대뜸 1799년 2월 1일자 ‘승정원일기’부터 인용했다. 정조가 중국 사행에서 종이로 된 패문(牌文)과 나무에 쓴 패문의 차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 전례를 캐물었지만 사정을 아는 신하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청나라와의 사이에서 발생한 각종 사안에 대한 문서는 129권 60책으로 된 ‘동문휘고(同文彙考)’란 방대한 책자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다만 이 책은 관련 공문서를 사안별로 모두 파일링한 것이어서 분량만 엄청났지 필요한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 읽어봐도 맥락이 잘 닿지 않았다.

‘통문관지(通文館志)’도 있었다. 이 자료는 단순히 연대순으로 묶은 것이어서,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선례를 찾아 적용하려면 처음부터 일일이 대조해 비슷한 경우를 찾아야만 했다. 일껏 찾아도 경우가 다 달라 정리가 힘들었다.

신하들이 자신의 물음에 벙어리가 되자 정조가 말했다. “‘동문휘고’는 필요한 정보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 너희가 편차를 고쳐서 다시 정리하고 ‘통문관지’도 보충해서 정리해두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이듬해 정조가 급작스레 서거하는 바람에 이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 사이에도 청나라와의 각종 민감한 외교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담당자들은 엄청난 자료 뭉치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다산은 정조가 살아 생전에 남긴 당부와 이 작업의 필요성을 잊지 않고 있다가, 22년이 지난 1821년 8월에 이 책 ‘사대고례’를 완성했다.

서문은 전 사역원정(司譯院正) 이시승(李時升)의 이름으로 썼지만, 실제 이 책을 엮고 글을 쓴 사람은 다산 자신이다. 당시 그가 재야 민간인 신분이어서 국가 외교에 관한 책에 함부로 이름을 올릴 수 없어, 이시승의 이름을 빌린 것일 뿐이다. ‘사암선생연보’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핵심가치가 먼저다

다산은 모든 작업에 앞서 핵심가치를 먼저 살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점검해서 정확한 방향이 나오기 전에는 일에 착수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였다. ‘왜’에 대한 성찰 없이 막연한 의욕만으로 달려들면 진척이 더디고 방향을 잃기 쉬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조금씩 집적거려둔 것이 그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되곤 했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고, 의미 없이 흩어져 있던 것들에 핵심가치를 투여해서 반짝이는 금강석으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다산은 핵심가치에 맞춰 일목요연한 계통성을 갖춘 정보로 재편집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산은 에디톨로지(Editology)의 대가였다.

‘사대고례’ 편찬 작업의 핵심가치는 기존 ‘동문휘고’와 ‘통문관지’에 실린 대청 외교 문서를 주제별 검색이 수월하도록 간추리는 데 있었다. 관련 문서를 다 모아둔 ‘동문휘고’, 연대순에 따라 늘어놓기만 한 ‘통문관지’의 비효율적 정보 제공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작업이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은 작업 매뉴얼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그 다음은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 뒤따랐다. ‘어떻게’에 대한 고민에 돌입한 것이다. 외교적 사안이 생길 때마다 전례를 손쉽게 찾아 비교해서 대응전략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 작업의 목표였다. 그러려면 사안을 먼저 갈래에 따라 분류해야 마땅하다.

다산은 길흉(吉凶)과 상변(常變)을 두고 각종 사례를 모두 18항목으로 먼저 나눴다. 순서는 사안의 비중에 따라 정했다. 황제가 바뀌거나 조선의 임금이 바뀔 때 양국이 주고받는 절차나 세자 탄생 같은 축하 사절을 보낼 일, 아니면 무역이나 조문(弔問) 관련 사항, 군사적 접촉과 국경 분쟁에 관한 건, 표류민 환송 같은 난민 구호의 처리 방식 등을 사안에 따라 모두 18개 항목으로 배치했다.

청나라와 외교 관련 공문서를 모아둔 방대한 기록 '동문휘고'. 정조는 필요할 때 참조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조의 당부를 잊지 않고 다산은 정조 사후 21년 만에 '사대고례'로 이 책을 재편집해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이것들은 또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다산은 먼저 ‘사대고례발범(事大考例發凡)’을 썼다. 작업 지침 또는 원칙에 해당하는 범례를 작성한 것이다. 모두 12조에 걸쳐 작업 방향을 지시했다. 각 하위 챕터의 서두에는 그 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룬 내용과 하위 갈래의 구분 근거를 명확하게 밝혔다.

한 예로 해금(海禁)과 표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해방고(海防考)’는 해금을 위반한 자를 엄하게 단속한 ‘해금엄속례(海禁嚴束例)’와, 섬을 지키는 ‘해도방수례(海島防守例)’,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표류한 ‘아인표해례(我人漂海例)’,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로 표착한 ‘피인표해례(彼人漂海例)’, 중국 표류민을 압송해서 돌려보낸 사례를 묶은 ‘피표압부례(彼漂押付例)’, 그 밖의 국가에서 표류해온 경우를 정리한 ‘제국인표해례(諸國人漂海例)’ 등 6가지 하위 항목으로 세분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가 강남과 대만의 반청 세력을 꺾은 뒤 연안의 해금(海禁)을 풀면서 부쩍 빈번해진 표류선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예전의 비슷한 사안을 이렇게 갈래 지워 그때마다의 처리 과정과 결과를 간략하게 정돈하여 보여주니, 한 눈에 처리의 방향이 매뉴얼로 정리되어 나왔다. 그간의 처리 방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도 일목요연한 파악이 가능해졌다.

범례와 목차로 방향 잡아주기

다산이 한 일은 범례를 정하고, 목차를 정해주며, 하위 분류의 근거를 챕터별 서문에서 밝혀 작업의 전체 방향을 틀 지워준 것뿐이다. 정리의 실무 작업은 다산의 작업 진행 방식을 가장 잘 이해했던 제자 이정이 도맡아 했다. 이정은 스승의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정리 작업에 돌입해서 그 방대하고 호한한 자료들을 간결하게 추려냈다.

이정의 1차 정리 노트가 올라오면 다산은 붉은 먹을 찍어 중간 중간에 안설(案說)로 필요한 설명을 보탰고, 끝에 비교표를 작성해서 한 눈에 상황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정의 항목 정리가 장황할 경우 붉은 줄을 그어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냈다. 많은 수정 표시로 지저분해진 원고를 다시 한 차례 새 공책에 정리하면, 해당 항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당시 청나라와 조선 양국 간에는 정해진 규정과 제도가 있었지만, 적용되는 상황은 그때마다 복잡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상황 파악 후 대책을 세우고 절차를 마련하려면 전례 검토를 통한 상황 장악이 먼저였다. ‘사대고례’는 이 같은 구실에 맞춤형으로 설계된 저술이었다. 다산은 정조가 세상을 뜨기 한해 전에 내린 당부를 21년간이나 품고 있다가 이시승의 이름을 빌려서 작업을 마쳤다. 이 ‘사대고례’ 10책은 다산의 저술이 분명하니, 저작자 또한 다산의 이름으로 돌려놓아야 마땅하다.

한결 같은 작업 원리

다산의 모든 작업은 대부분 이와 같은 과정과 절차로 진행되었다. 먼저 작업의 핵심가치를 정하고, 매뉴얼을 작성한 뒤, 항목 카드 작업에 들어갔다. 1차 편집이 끝나면 여기에 다산이 코멘트를 하고, 항목의 배열과 첨삭을 검토한 뒤 이를 반영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되풀이하면 어느새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다산의 저술 한 권이 탄생되어 있었다. ‘목민심서’나 ‘마과회통’ 같은 책은 수정 첨삭 과정이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어떻게’ 보다 ‘왜’가 먼저였다. ‘왜’로 방향이 나오면 ‘어떻게’는 저절로 따라올 문제였다. 모든 작업에서 다산은 이 첫 질문을 잊지 않았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을 함으로써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런 다음에 다산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한다. 왜 하는 지도 모른 채 죽으라고 열심히 한다.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자신을 탓하지 않고 세상을 원망한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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