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제보에도 꿈쩍 않는 병원

치명적인 사고 보상은커녕
사과도 없이 끝까지 발뺌만
유명인과 달리 일반인 피해자는
SNS 호소 금세 잊혀지고
소송 걸어도 비용 부담에 포기
병원 측은 빌미 주지 않기 위해
의료진과 피해자 접촉도 막아
지난해 10월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서 심부정맥혈전증을 진단받아 시술을 받은 후 왼쪽 발가락, 무릎 등에 신경 운동감각 마비가 온 김모(37ㆍ여)씨가 제보한 발 사진.

지난해 10월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서 심부정맥 혈전증 진단을 받아 스텐트 시술을 받은 김모(39)씨는 최근 배우 한예슬씨가 의료사고를 겪은 후 즉각 병원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약속을 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시술 후 왼쪽 발가락, 외측부, 뒤꿈치 등의 감각‧운동신경이 손상돼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해당 대학병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의료사고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의료사고 당했다” 잇따르는데

한씨의 경우 의료사고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자 차병원재단 측은 즉각적으로 수술 실수를 인정하고, ‘환자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며, 책임 있는 의료기관으로서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병원과 의료진의 즉각적인 과실인정이나 사과, 보상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씨 사고 이후 “나도 의료사고를 당했다”는 이른바 ‘의료사고 미투’ 제보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단지 미투 만으로 넘어서기엔 의료계의 벽은 여전히 너무 높다.

김씨는 지금도 스텐트 수술을 받은 7개월 전 상황만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김씨는 시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이들 부위에 감각이상 증세를 느껴 의료진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의료진들은 “부종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며 일축했다. 시술 후 24시간 내 제거돼야 할 주사바늘이 48시간 동안 제거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는 등 의료사고를 의심할 여지도 충분했지만 병원 측은 부인했다. 병원 측은 김씨에게 “의료사고는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병원비 70만원 정도 깎아주겠다”고 회유했으나, 김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아예 상대를 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지역 내 타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시술 받은 왼쪽무릎 뒤쪽 부위의 감각ㆍ운동신경이 손상됐고, 이로 인해 복합통증증후군(CRPS 2형)증세까지 겹쳐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신경손상은 물론 복합통증증후군이 개선될 조짐이 없지만 해당병원에서는 사과는커녕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한씨 사건 후로 대한민국 병원들은 정치인, 재벌, 유명 연예인 등 이른바 ‘VIP환자’와 일반인 환자를 분류해 치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씁쓸해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오진, 과실.. 발 뺌하고 보는 병원

오진은 병원 측이 가장 인정하지 않는 의료사고 중 하나다. 지난해 5월 중순 동네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오른쪽 손목 골절로 병원을 찾은 박모(7)군은 오진 때문에 치료가 늦어져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군은 안산의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단순 타박상으로 진단 받아 치료를 받은 후 귀가했지만 상태가 악화됐다. 타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손목 성장판 골절’로 판명돼 수술을 받았다. 박군의 어머니 정모(38)씨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 양팔 길이가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병원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힘없는 부모를 만난 것이 죄란 생각에 눈물만 난다”고 하소연했다.

암을 일반 염증으로 진단하고도 발뺌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3년 9월 질출혈이 발생해 강남의 모 산부인과를 찾은 이모(41)씨는 자궁경부염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계속 상태가 악화돼 이후 세 차례나 더 치료를 받았지만 담당의사는 자궁경부염 약물만 처방했다. 이씨는 약물처방 후에도 지속되는 통증을 이기지 못해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실시한 결과, 자궁경부암 3기로 진단받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담당의사는 “당시 검사 때는 암이라고 의심할 만한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며 암 진단 지연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보상을 떠나 의사가 인간적으로 사과를 하면 용서하려고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사는 사과 한마디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의료진이 과실을 인정하더라도 총책임을 지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가 부인하면 딱히 방법을 찾기 어렵다. 올 3월 장 협착증 증세로 서울 강동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한 최모(59ㆍ여)씨는 컴퓨터단층촬영(CT) 도중 주입한 조영제가 장이 아니라 왼쪽 손 부위로 흘러 들어가 수포가 발생하고 피부괴사 위험까지 제기됐다. 당시 시술에 참여했던 수술실 간호사가 실수를 인정했지만, 담당 교수는 “다른 환자들과 동일하게 기계로 조영제를 투입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평판 계산기 두드리는 병원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병원이 일반인과 유명인에 대해 다른 대응을 보이는 건 병원에 입을 손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유명인의 의료사고가 기사화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퍼지면 그 사건으로 인해 병원 전체 외래, 입원환자 감소 등 병원운영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면 일반인 의료사고의 경우 본인이 적극 나서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리고 언론에 제보를 한다고 해도 유통 속도는 매우 더디고, 금세 잊혀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저히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하더라도 병원 평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일반인의 경우 소송까지 간다 해도 경제적인 제약과 정보의 격차 탓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안 대표는 “설사 피해자가 소송을 걸어도 의학적 지식도 없고, 1, 2년이 넘게 진행되는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중도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이인재 대표 변호사는 “한 의뢰인이 ‘대형병원의 힘이 이렇게 막강할지 몰랐다‘며 서류를 찢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병원 측에서 의료사고를 낸 의료진과 피해자와의 접촉자체를 금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신생아 4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한 이대목동병원에서 사건발생 후 처음 했던 일이 사망 환아 보호자 면담이 아니라 기자회견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