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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1만3144쪽 작업 ‘루쉰 전집 20권’ 한국어로 첫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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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1만3144쪽 작업 ‘루쉰 전집 20권’ 한국어로 첫 완간

입력
2018.05.17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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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현대문학 공부한 사람들

루쉰에 빚 갚으려 의기투합”

연구자 12명 번역위원회 결성

11년 동안 81차례 모임 가져

루쉰 전집 20권 번역 사업에 참여한 이보경 강원대 교수. 전집 번역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후학들에게 미안하진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루쉰 전집 20권 번역 사업에 참여한 이보경 강원대 교수. 전집 번역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후학들에게 미안하진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그래도 중국 현대 문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이것만큼은 우리 손으로 해서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가자는, 그 마음이 전집을 완간하게 만든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16일 ‘루쉰전집 20권’(그린비출판사) 완간 작업을 끝낸 이보경 강원대 교수의 설명이다. 전집 20권 완간은 2007년 8월 ‘루쉰전집번역위원회’(번역위)를 결성한 지 11년만의 일이다. 번역위에는 이 교수 외에 공상철(숭실대)ㆍ김영문(청청재)ㆍ김하림(조선대)ㆍ박자영(협성대)ㆍ서광덕(건국대)ㆍ유세종(한신대)ㆍ이주노(전남대)ㆍ조관희(상명대)ㆍ천진ㆍ한병곤(순천대)ㆍ홍석표(이화여대) 등 12명의 연구자가 참가했다. 200자 원고지로 5만2,000매 분량, 20권 총 쪽수로는 1만3,144쪽에 이르는 전집은 그 결과물이다.

루쉰(1881~1936)은 중국의 문호다. ‘중국 현대 문학의 모든 것’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루쉰의 매력은 먹물쟁이들의 자기 도취 의식을 남김없이 깨버리는 서늘한 풍자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지식인의 위선을 다룬다 하지만, 사실 홍 감독 영화는 ‘지식인의 위선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지식인’이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측면도 크다. 반면, 루쉰의 글은 그런 훈장을 달아줄 생각조차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유머가 넘친다.

그런 루쉰이지만 한국에 소개된 책은 ‘아Q정전’ ‘광인일기’같은 몇 가지 소설들, 시집 ‘들풀’이나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 외 인물 평전 정도다. 대놓고 싸우길 좋아했던 루쉰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기, 산문, 논설, 편지 등을 남겼다. 이걸 한국말로 다 풀어냈다. “책의 분량으로 따지자면 전집 20권 가운데 3권 정도 뺀 17권 정도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다”고 할 수준이다.

11년간 12명의 학자가 매달려 완간한 루쉰 전집 20권. 200자 원고지로는 5만2,000매, 책의 쪽수로는 1만3,1444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11년간 12명의 학자가 매달려 완간한 루쉰 전집 20권. 200자 원고지로는 5만2,000매, 책의 쪽수로는 1만3,1444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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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 헌신ㆍ로맨티스트 등

번역하며 루쉰 새 매력도 발견

“번역 작업은 본전 찾기 어려워

수정 지속할테니 의견 주세요”

번역 욕심은 모두에게 다 있었다. 홀로 해보려는 이도 있었고, 팀을 꾸려 스터디를 시작한 이도 있었다. 루쉰을 손에서 못 놓았던, 그래서 ‘루쉰’이란 주제에 대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6년쯤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는 함께 작업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번역작업은 쉽지 않았다. 각자 번역하되 통일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서로의 번역을 읽어주고 비판하고 보충하는 월례모임을 열었다. 이 교수는 “어느 정도 번역 문장에 대한 공감대와 틀이 갖춰진 뒤에는 편안해졌지만 처음 2~3년간은 의견 조율하고 서로 맞춰나가는 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11년 동안 월례모임은 81차례 열렸다.

이런 작업에 공적 지원이 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명저번역지원사업에 응모해볼까 생각도 했죠. 그런데 몇 년 안에 성과물을 내도록 하는 구조라서 장기적인 우리 작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포기했습니다. 대신 처음에 책 내신 분들이 인세를 자발적으로 내놓으셨어요. 전집 가운데 처음 선보인 1, 2, 7권 같은 경우에는 소설들이 많아서 제법 판매가 많이 됐거든요.”

번역 작업 중 루쉰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건 가외소득이다. 이 교수는 세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고문(古文) 중에서도 좀 특이한 고문을 쓰던 루쉰이 1910년대 백화문 운동 이후 구어체를 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기꺼이 인민들 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루쉰의 면모다. 또 하나는 학생에서, 애인으로, 다시 사실혼 관계로 발전하는 쉬광핑(1898~1968)과의 연애다. 이 교수는 “사랑을 확인하고, 또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랑을 쟁취해나가는 인간적인 면모가 아주 잘 드러나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역시 청년을 위한 헌신이다. 1920년 창당된 중국 공산당이 세를 불려나가자 루쉰은 젊은이들에게 점점 ‘꼰대’ 취급을 당한다. 이 교수는 “젊은이들의 비판에 대해 비애와 분노,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래도 청년들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한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번역 작업은 본전 찾기 어렵다. 기껏 해놓고도 한 두 가지 삐끗하면 ‘씹힌다.’ 이 교수도 알고 있다. “설레면서도 떨려요. 출판사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계속 고쳐갈 테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주세요. 우리 번역을 딛고 일어서길 바랍니다.” 1권부터 20권까지, 전집 전부를 매만진 편집자 주승일 이름 석자도 빼놓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성실성으로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온갖 외국어가 난무하는 원고들을 모두 다듬어 준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린비출판사가 '루쉰 전집' 완간 기념으로 내놓은 특별잡지 '루쉰을 읽자'. 60여쪽 분량이지만 풍성한 읽을 거리가 담겼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그린비출판사가 '루쉰 전집' 완간 기념으로 내놓은 특별잡지 '루쉰을 읽자'. 60여쪽 분량이지만 풍성한 읽을 거리가 담겼다. 그린비출판사 제공

그린비출판사는 완간기념으로 ‘루쉰을 읽자’라는 60쪽이 넘는 소책자도 ‘특별잡지’ 형식으로 내놨다. 전집 맛보기용으로 넣어둔 소설, 편지 같은 것도 좋지만, 루쉰을 ‘길 없는 대지’라 평하는 고미숙의 글, ‘헛된 희망’만큼이나 ‘헛된 절망’도 잘못이라 일러준 루쉰에게 감사를 표하는 고병권의 글도 참 좋다. 이 소책자는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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