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선 “여론 환기 유지시켜”
김영철 방남 때도 노숙시위
“제1야당 협치에 중점을” 지적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장장 42일 만에 일하는 국회로 되살아나기까지의 과정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 투쟁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늘 스스로를 ‘엄동설한에 내버려진 들개’로 불렀던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원 댓글조작(일명 드루킹) 사건 특검의 ‘무조건 수용’을 요구하며 지난 3일 무기한 단식 투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9일간의 단식농성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에 대해서는 당내에조차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게 감지된다. 드루킹 특검의 처리시기 등을 놓고선 여야의 의견 차이가 많았지만, 결국은 여권도 특검 도입은 불가피하다는 기류였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의 승부수였던 단식 투쟁은 야당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하고 국민 관심을 환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당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반도 해빙 국면에서 드루킹 사건을 그나마 지속적으로 끌고 올 수 있는 데는 김 원내대표의 단식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15일 “단식은 힘있는 여당이 특검을 강하게 거부하는 상황에서 실기(失期)하지 않기 위한 야당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김 원내대표의 솔선수범이 없었다면 특검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불리는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특검수용을 요구하며 9일째 노숙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과연 단식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라는 대목에선 회의론이 적지 않다. 단식은 목숨까지 내걸어야 하는 자해행위인 만큼, 여야 대치 국면에서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꺼내 들기엔 적절치 않은 방식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1983년 정부의 가택 감금에 저항하며 단식한 김영삼 전 대통령, 1990년 지방자치제 도입을 주장하며 곡기를 끊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원래 단식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라며 “단식은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의 한 중진의원도 “국회의원이라면 끝까지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지, 막무가내로 떼쓰는 방식으로는 구태 정치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 때 철야 노숙 시위를 벌이는 등 계속해서 장외 투쟁 카드를 꺼내는 데 대해서도 평가가 좋지만은 않다. 과거와 달리 집권여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아니어서 일방통행식 독주를 할 수 없고, 국회 안에서도 제1야당으로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 다당체제의 묘미는 바로 다양한 형태의 협치에 있다”며 “이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우선하는 문화가 야당에도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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