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집’ 내달 박물관으로 개관
문 목사의 조카 문영미 상임이사
스토리펀딩 등으로 기금 모으며
젊은 세대에 통일 운동사 홍보
방북 때 입었던 옷ㆍ자필원고 등
2만5000여점의 유물 전시 예정
문영미 통일의집 상임이사는 "통일의 집 박물관 개관을 시작으로 '투사'의 이미지로 가려진 문익환 목사의 사상, 문학이 친근하게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3일 찾아간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의 집’은 건물 뼈대만 남아있었다. 문익환 목사(1918~1994)와 부인 박용길(1919~2011) 장로가 1970년부터 살았던 집은 문 목사 사후 “통일을 위한 토론과 교육의 장으로 쓰이길 바란다”는 박 장로의 뜻에 따라 일반에 공개됐지만 박 장로 별세 후 7년간 방치되며 잊혀진 공간이 됐다. 벽과 천장과 바닥까지 뜯어내고 집은 이제, 유리창에 쓰인 집주인의 손글씨만이 이곳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통일의 집’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목 목사 탄생일인 6월 1일에 맞춰 1970년대 가옥을 고스란히 복원한 집과 1989년 방북 당시 목 목사가 입었던 옷, 수의 등 주요 유품을 전시한다. 문 목사 유족과 시민운동가들이 2016년부터 사단법인 ‘통일의 집’을 결성해 준비한 결과다. 이날 만난 문영미 상임이사는 “지난 2년 간 시국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남북정상회담이 막 끝난 시점에서 (박물관을) 개관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문 상임이사는 문 목사의 동생 문동환 목사의 딸이다. ‘통일의 집’ 관장인 사촌언니 문영금 씨와도 “18살 차이가 난다”는 그는 백부를 “어린 아이의 의견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고 소통하려 했던 어른”으로 기억했다. “아버지와 삶의 궤적이 비슷해서 늘 이 집에 왔죠. (문익환 목사는) 친구 같은 느낌이라 학창시절 고민 있을 때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담했어요. 제가 어릴 때 보낸 엽서, 큰 아버지가 저를 써주신 시를 유품 정리하면서 발견했는데, 전시 품목에 넣을 거 같아요(웃음).”

통일의 집 유리창에 쓰여 있는 문익환 목사 의 글씨 '조국은 하나다' 신상순 선임기자

89.97㎡ 넓이의 작은 집에 유물이 자그마치 2만5,000여 점 남아 있다. 문 상임이사는 “두 분 생전에도 이 집을 ‘보물 창고’라고 할 정도로 박용길 장로가 모든 걸 다 모았다. 하다못해 민주화 운동행사에서 준 이름표, 감옥에 차입한 책에 꽂아둔 코스모스도 안 버렸더라”고 설명했다. 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인 그는 “비슷한 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 유품들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고 덧붙였다. ‘통일의 집’이 낡은 데다 산 밑에 있어 여름이면 곰팡내가 진동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 지난해 박물관 건립이 결정되고 임시 수장고로 옮기기 전까지, 1930년 문 목사와 박 장로가 주고받던 연애편지에서부터 감옥에서 사용된 귀마개, 십자가, 옥중편지, 자필원고 등이 그대로 방치됐다.

1960년대 붉은 벽돌집으로 지어진 ‘통일의 집’은 1997년 건설노동자들이 집수리를 무상으로 해주면서 흰색으로 탈바꿈했다. 문 상임이사는 “당시 비가 샐 정도로 집 상태가 좋지 않아 지붕에 창 뚫고, 천장을 높이는 등 보존의 개념 없이 집을 수리했다. 이번 복원을 통해 문 목사 생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 당시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 건축사로 함께했던 류현수 자담건설 대표가 주택 복원을 맡았다. 캐나다에서 공수해 문 목사 집안의 행사 때마다 연주된 피아노는 이한열 운동화를 복원한 김겸 박사가 맡았다.

문 목사 내외가 생활한 안방은 만주 유년시절부터 가족사를, 기도방은 구약성서 번역 등 문 목사의 기독교 활동사를, 호근, 의근, 성근 등 아들 3형제가 머문 작은방은 방북과 수감생활 등 통일 운동사를 전시할 예정이다. 문 상임이사는 “복원한 피아노를 전시할 거실은 여러 시민단체 모임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부엌은 사무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문익환 목사 가족이 가족 행사 때마다 연주했던 피아노. 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겸 박사가 복원을 맡았다. 사단법인 통일의 집 제공

재단은 재작년 발족했지만 박물관 건립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지난해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가 설립되면서부터다. 문 상임이사는 “애초에 사립박물관으로 등록해 정부나 지자체 지원받으려고 했지만, 주차시설ㆍ수장고 등이 해결되지 않아 요건을 맞추지 못했다. 우선 시민 모금운동으로 전환해 재단이 박물관을 직접 운영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모금 운동을 하면서 ‘젊은 세대’에 문익환 목사를 알린 성과도 있다. 문 상임이사는 “처음에는 교회를 통해 모금을 요청하다 올해 초 다음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진행했다. 30만원 모금자에게 전집을, 10만원 이상 모금자에게 박물관 동판에 이름 새겨드리는 행사를 지금도 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전집 받으려고 30만원 지원하는 분이 많더라”고 말했다. 4월까지 1,484명 참여해 2억6,500만원이 모였다.

후원자들이 ‘어른 중심의 단체보다 여성, 지역활동가 등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는 젊은 단체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김병민 김근태 재단 기획위원, 극단 진동의 최소진 대표, 역사학자 심용환 등 ‘젊은 피’가 이사로 참여하게 됐다. 최근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문익환입니다’ 방송도 시작했다.

문 상임이사는 “이한열의 죽음, 6월 항쟁은 교과서에 실리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평가가 되고 있는데 문익환 방북사건은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 역사에서 지워진 것 같다. 남북 관계가 바뀌는 국면에서 새롭게 평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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