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물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토끼

토끼 랄라가 이동 가방 안에 들어가 물을 찾고 있다. 이순지 기자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린 동요 ‘옹달샘’ 가사다. ‘고추 먹고 맴맴’, ‘퐁당퐁당’ 등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노래와 시를 남기고 떠난 고(故) 윤석중 시인은 토끼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밤새 숙면을 취한 우리 집 토끼 ‘랄라’는 매일 아침이면 “촵촵~ 촵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눈에 노란 눈곱이 끼어 지저분한데도 일단 세수는 뒷전이다. 갈증이 사라질 때까지 물을 마신 후에야 분홍색 혀를 이용해 세수를 한다. 평소에는 쉬지 않고 몸을 단장할 만큼 깔끔함을 자랑하는 토끼인데, 물 앞에서는 예외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물 마시기’일 정도로 토끼는 물을 좋아한다. 이제는 6년 차 ‘토끼 엄마’라서 잘 알고 있지만, 고백하자면 처음엔 너무 무지하고 이기적인 토끼 엄마였다. 마트에서 아기 토끼 랄라를 데려올 때 나는 점원이 손에 쥐어준 토끼 주식인 건초 ‘알팔파’(Alfalfa)만 신나게 흔들며 집에 왔다. 분명 마트 애완동물 코너 옆에는 토끼에게 물을 줄 수 있는 물병이 즐비했다. 그런데 토끼에게 물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바보 같은 나는 물병을 사지 않았다.

집에 와서야 포털 사이트에 ‘토끼 키우기’를 검색했고, 그제서야 나는 내 토끼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마트를 떠나 집에 오기까지 랄라는 약 6시간 이상 물을 구경도 못했다. 심한 갈증을 느낀 랄라는 당시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동네 동물병원에서 물병을 산 뒤 물을 먹였다. 당시 랄라는 멈추지 않고 무려 5분 동안 물을 꿀꺽 꿀꺽 마셨다.

아기 토끼 랄라가 집에 누워 쉬고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에게 왜 물이 중요할까?

영국 토끼복지협회(RWAF)에 따르면 토끼에게 물은 생존에 필수 요소다. 대부분 건초를 먹고 사는 집 토끼들은 물을 따로 챙겨주지 않으면 수분을 스스로 섭취하기 어렵다.

토끼의 신체적인 여건도 영향을 미친다. 소화기관이 약한 토끼는 물을 잘 먹어야 장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만약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신체 소화기관이 건조해지거나 섭취한 음식물들이 대장에 오래 머물러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물을 먹이지 못해 토끼가 아프다면 바로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 물을 먹이는 것을 소홀히 하다가는 토끼를 죽일 수도 있다.

토끼 랄라가 물병을 이용해 물을 먹고 있다. 이순지 기자
랄라가 늦은 밤 몸을 반쯤 집 안에 넣고 음식과 물을 먹고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는 인간과 달리 음식에서 나오는 모든 칼슘을 흡수한다. 물론 칼슘은 토끼에게 꼭 필요하다. 뼈와 치아를 강하게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다만 토끼는 모든 칼슘을 흡수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양은 소변으로 흘러나가게 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 역시 물이다.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한 토끼는 칼슘을 소변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이로 인해 신장 결석 등 질병을 얻을 수 있다.

미국 동물 관련 사이트 펫차에 따르면 토끼는 더위에 약한 동물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랄라가 한 여름에도 땀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땀샘이 있는 입술에만 땀이 조금 맺혀있는 것을 본 것 같다. 토끼는 입술을 빼면 땀샘이 없는데 주변 온도가 높아지면 열을 배출할 수가 없어 위험하다. 이때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물이다. 물을 먹으면 체온이 낮아지고 더위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된다.

토끼를 위한 물그릇 선택 방법
토끼 물병(왼쪽)과 물그릇.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 캡처

토끼 엄마들이 또 고민하는 것은 물을 어떻게 먹이냐는 것이다. 물을 그냥 먹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작은 것에도 신경이 쓰인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파는, 토끼 그림이 그려진 빨간색 5,000원짜리 물병을 사용했다. 그런데 SNS에 이 물병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글이 올라왔다. 반려동물이 주로 사용하는 물병은 작은 볼을 움직여야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의 양이 갈증을 해소해 줄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면 목이 말라 꿀꺽 꿀꺽 물을 먹고 싶은데, 이 물병으로 먹을 수 있는 양은 풀잎에 이슬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소량에 불과하다. 이후 물병을 바꿨는데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꿀꺽 꿀꺽’ 물을 마시는 랄라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병과 물그릇을 두고 고민하는 초보 토끼 엄마가 있다면 물그릇을 추천한다. 랄라의 경우에는 플라스틱 물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물그릇인데 발로 물그릇 위를 누르면 물이 작은 구멍으로 나오는 형태다. 랄라는 기특하게도 사용 방법을 빨리 익혀 물을 편하게 먹고 있다. 이 물그릇을 사용하면 털이 무차별적으로 젖어 피부 감염이 생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물그릇에 왼쪽 발을 올리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랄라. 이순지 기자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니 토끼란 동물을 키우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그릇 선택부터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물은 토끼에게 정말 중요하다. “토끼는 물 안 먹어도 채소만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토끼를 키우는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 사람들도 물 대신 평생 오이만 먹고 살라고 해.”

토끼를 키우다 보니 그 동안 인간 중심적인 사고만 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삶을 같이 하기로 했다면 조금 더 그들을 생각하자. 작은 배려심이 그들의 생명을 좌우하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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