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친구 아버지 투자 받고 형과 동업
러시아판 페이스북 VK 개발
2년만에 이용자 1000만 돌파
정부 검열 요구 잇달아 묵살
2014년 회사 강제 매각 당해
여러 도시 이동하며 망명자로
“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권리…”
개인회사 만들어 텔레그램 내놔
최고 보안 오픈소스 메신저 등극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지난달 30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거리에는 수천 개의 종이비행기가 떠다녔다. 러시아 시민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관광객이라면 축제나 국가적인 경사를 기념하는 이벤트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법했다. 종이비행기 물결은 러시아 정부가 법원 판결에 따라 텔레그램 차단 조치를 내린 데 대한 시민들의 항의였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종이비행기는 텔레그램의 공식 상징이다.

이날 사하로프 광장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은 러시아 미디어 통신 감독기관 ‘로스콤나드조르’의 해체를 주장했다. 온라인 매체 ‘메디아조나’의 세르게이 스미르노프 편집장은 “텔레그램 차단은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정부는 모든 것을 막으려 하고 있고 우리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막으려 한다”고 외쳤다.

텔레그램이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창업자이자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가 러시아 정부의 암호 해독 키(Key) 제공 요구를 거부하면서부터다. 오래전부터 러시아 정부와 대립해온 두로프가 더 이상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그의 회사가 러시아에 있지도 않아 정부로선 두로프가 협조해주지 않는 한 텔레그램을 통해 오가는 메시지에 대해 감청과 검열이 쉽지 않다.

텔레그램은 사용자 간의 대화 내용이 암호화된 상태로 오가는 데다 서버에 기록이 남지도 않아서 대화 내용을 알아내려면 직접 해당 휴대전화를 열어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되는 기능도 있다. 러시아 정부가 텔레그램 접속 차단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린 이유다. 두로프도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사용자들에게 우회해서 텔레그램에 접속할 방법을 알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러시아의 텔레그램 사용자 수는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페이스북, VK의 급성장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통하는 파벨 두로프는 198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언어학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그는 2001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하던 러시아 명문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의 언어학과로 진학했다. 두로프는 인문학도였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도 빼어났다. 친구들이 책과 강의 노트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온라인 도서관이 교내에서 큰 인기를 얻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포럼을 만들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두로프의 옛 친구 뱌체슬라프 미릴라슈빌리가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고국으로 찾아왔다. 당시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페이스북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러시아에서 비슷한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었던 미릴라슈빌리는 두로프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이 뜻을 모은 건 러시아판 페이스북 ‘VK(브콘탁테)’였다. 사업가인 미릴라슈빌리의 아버지가 투자자로 나섰고, 파벨 두로프의 친형 니콜라이가 수석 개발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맡았다. 니콜라이는 고교 시절 3년 연속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을 정도의 수재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도 알아주는 수학자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2006년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VK는 1년 만에 300만명의 사용자를 끌어모았고 2년 뒤에는 1,000만명을 돌파하며 단숨에 러시아 최고 인기 SNS로 떠올랐다. VK는 인터페이스와 사용 방식 등 많은 부분이 페이스북과 비슷하다. ‘좋아요(like)’ 버튼을 눌러 의견을 전하는 것도 닮았다. 페이스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과 동영상 파일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저작권 침해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저작권 보호에 대해 의식이 철저하지 않은 러시아인들에겐 무척 매력적인 점이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러시아 정부에 의해 해고되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에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다. 정부의 사이버 검열에 협조하지 않아서였다. 2011년 러시아 총선과 2012년 대선 직후 독재자 푸틴을 반대하는 시위가 늘어나자 정부는 두로프와 VK에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계정 및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평소 “정부는 아예 없거나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두로프와 러시아 정부 간의 갈등은 2013년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유럽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 사태를 즈음해 극에 달했다. 러시아 정부가 두로프에게 VK가 갖고 있는 유로마이단 관련자의 개인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또다시 정부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 사이 러시아 정부는 두로프 축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친정부 성향의 러시아 인터넷 서비스 기업 메일루(Mail.ru)는 VK의 지분을 늘려가며 두로프를 압박했고, 결국 2014년 4월 21일 두로프를 최고경영자(CEO)에서 해임했다. 앞서 두로프가 4월 1일 만우절에 장난삼아 VK CEO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한 뒤 철회했는데 이를 트집 잡은 것이다. 메일루가 VK 지분 100%를 인수한 뒤 반정부 성향의 게시물은 모두 사라졌다. VK 지분을 강제로 매각해야 했던 두로프는 러시아를 떠나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세인트키츠네비스에 25만달러를 기부해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나 두로프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한두달씩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텔레그램은 두로프 형제가 VK에 몸담고 있던 때 내놓은 앱이다. 2011년 러시아 정부의 감시와 검열이 심해지자 정부의 감청을 피해 안전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스턴트 메시지 프로그램을 만든 것인데 애초에는 개인적인 용도로 쓰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로프 형제는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전방위 도청 및 사찰 의혹을 폭로하자 정권의 감시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반 공개를 결정했다.

텔레그램으로 러시아 정부에 맞선 두로프

러시아를 떠난 뒤 두로프는 외부 투자를 배제한 채 개인 회사 형태에 가까운 유한책임조합(LLP)을 만들었다. 망명자 신세인 탓에 한 곳에 정착해 회사를 꾸리기가 쉽진 않았다. 애초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려 했으나 러시아에서 함께 건너온 개발자들 모두에게 영주권을 줄 수 없게 되자 최근에는 몇 차례 이동 끝에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운영비는 두로프가 VK 지분을 매각해 받은 3억달러(약 3,200억원)를 토대로 조성한 디지털 포트리스 펀드가 대고 있다.

텔레그램은 푸틴 정부의 VK 장악에 대한 두로프의 반격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텔레그램의 최종 목적이 수익 창출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권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는 “프라이버시는 사고파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권리를 놓고 협상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같은 암호화 메시지 프로그램 덕분에 러시아 반정부 세력은 VK에서 텔레그램으로 옮겨 가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어떻게든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하려 애를 쓰고 있다.

두로프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의 암호 해독 키 제공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로스콤나드조르는 지난달 16일 초강수를 뒀다. 텔레그램이 이용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구글 클라우드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모두 차단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AWS와 구글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크고 작은 회사들은 홈페이지가 마비되거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 둔 회사 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서 큰 손실을 보았다. 심지어 정부가 관리하는 크렘린 박물관마저 티켓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여론이 점점 나빠지자 로스콤나드조르는 해당 서비스 사용자들로부터 불편 신고를 받은 뒤 하나씩 차단을 해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텔레그램의 철학은 ‘자유’

텔레그램은 광고가 없는 오픈소스 메신저다. 두로프는 애초부터 광고도 외부 투자도 받지 않고 비상업적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며 다른 회사에 매각할 계획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수익을 내는 것이 회사의 최종 목적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지만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가상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모았고 기존 운영 방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익 사업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놓았다.

텔레그램의 최고 강점은 최고 수준의 보안이다.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2014년 보안 평가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일반 채팅 기능은 보안 점수 7점 만점에 4점으로 약간 높은 수준이었지만 비밀대화 기능은 만점을 받았다.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등 인기 메신저 앱들 사이에서 텔레그램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높은 보안성 덕분이었다.

2014년 3,500만명에 불과하던 텔레그램 사용자 수는 4년 만인 올 초 2억명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감청 사태, 2016년 테러방지법 통과 등을 계기로 텔레그램 사용자가 급증했다. 최근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문,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등 정치인과 관련한 뉴스에 자주 등장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텔레그램은 올 초 두 차례의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약 17억달러(약 1조8,300억원)를 모았다. ICO는 사업자가 직접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코인을 발행한 뒤 이를 투자자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IPO와 달리 증권 당국의 까다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수익 사업을 하지 않아 사실상 일반 기업공개(IPO)가 불가능한 텔레그램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두로프는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자금이 충분하다는 판단에 당초 계획돼 있던 일반인 대상 ICO를 취소했다. 투자금은 텔레그램 운영과 블록체인 플랫폼 ‘톤(TONㆍTelegram Open Network)’ 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성공적인 ICO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긴 했지만 여전히 텔레그램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아직까진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는 데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용한 사업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로프는 별걱정이 없는 듯 “언젠가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지난 3월 말 텔레그램의 활성 사용자가 2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주주나 광고주를 끌어들일 계획이 없습니다. 정부 기관과 거래하지도 않을 것이며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로 사업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텔레그램은 우리에게 단지 조직이나 앱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지구상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는 신념 말입니다. 이러한 철학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규정합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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