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마스터 프린터 유철수 흑백사진연구소 대표

마스터 프린터 유철수 흑백사진연구소 대표가 경기 고양시에 있는 자신의 암실에서 환히 웃고 있다. 1999년부터 아날로그 사진 인화에 매진해온 그는 현재 국내에서 프린터를 직업으로 삼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배우한 기자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가 본 건 뭘까. 그의 옷자락, 웃음, 팔, 그림자… 찍는 사람은 사진 전체를 보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알지 못한다. 사진비평가 존 버거는 책 ‘사진의 이해’에서 사진가 앙드레 케르테스의 사진 ‘잠든 청년’(1912)을 두고 “이중 어떤 것도 케르테스가 구성하거나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그의 일은 바로 그 장소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외양들의 응집을 그만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응집에서 발생한 호응들은 매우 광범위하고 매우 복잡하게 짜여 있어서 말로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는 없다. 종이는 의복과 주름, 얼굴의 특징, 인쇄된 신문, 어둠, 잠, 빛, 그리고 읽을 수 없는 것들과 호응한다.” 작고한 비평가의 아름다운 문장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사진가가 의도성을 가지지 않았을 때 오히려 사진은 힘과 분명함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거의 글은 멋지지만 이 책은 1967년부터 2007년 사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즉 ‘디카’가 나오기 전의 이야기다. 전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에 응집, 호응, 의도성 같은 단어는 이제 옛말이 된 것일까. 여전히 그런 단어들을 붙잡고 사는 이가 있다. 이제 국내 유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희소해진 아날로그 사진 프린터, 유철수 흑백사진연구소 대표다.

서울 종로구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 시인 사진전 ‘올리브 나무의 꿈’에 전시된 동명의 작품. 유철수 대표가 프린트를 맡았다. 팔레스타인, 2008년,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나눔문화 제공

1999년 출발해 20년 가까이 아날로그 사진 인화에 몸담아온 그를 부르는 직함은 흑백사진연구소 대표, 암실 테크니션, 마스터 프린터 등 다양하다. 그는 스스로를 “프린터”라고 부른다. “옛날 말로 하면 기사죠. 암실에서 사진 인화하는 사람을 기사라고 불렀어요. 나이가 많아지니까 사람들이 낮춰 부르기 불편해서 이런 저런 직함을 만든 거예요.”

2018년, 그가 자신의 직업을 프린터라고 칭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인화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찍고 인화까지 하는 사진작가들이 있으나 직함은 프린터가 아닌 작가다. 아날로그 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남의 작업을 해주는 이들도 극소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직업은 프린터가 아닌 작가 혹은 교수다. 국내에서 열리는 굵직한 사진 전시마다 유철수란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시인이자 사진가인 박노해를 비롯해 윤주영 전 문화공보부 장관, 한정식, 김기찬, 한영수, 최민식, 홍순태, 이완교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젊은 작가 중엔 4대강을 찍은 박홍순, 집시 사진으로 유명한 성남훈, 제주 해녀 사진으로 알려진 김흥구 작가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동강사진박물관, 한미사진미술관 등 한국 사진 아카이브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곳의 소장용 작품도 대부분 그가 작업한다. “누구든지 아날로그 인화를 의뢰하면 해주는” 사람은 현재로선 유 대표가 유일하다.

작업대 앞에 앉은 유철수 대표. 짧으면 5초의 찰나적인 작업이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한번 암실에 들어가면 기본 2,3시간은 있어야 한다. 배우한 기자
굵직한 사진 전시마다 거론되는 이름

멸망한 행성에 홀로 남은 사람처럼 그는 왜 여기 남은 걸까. 유 대표에 따르면 그는 사진과 인화 모두에 “빚이 있는” 사람이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온 그는 한때 사진계에서 유명했던 현상소 ‘마젠타’의 ‘흑백 실장’(흑백사진 프린트 전문 기사) 출신이다. 졸업 후 들어간 사진 스튜디오가 IMF사태 때 문을 닫으면서 “벌이에 대한 공백을 메우고자” 들어간 마젠타에서 그는 2008년까지 10년 가까이 일했다. “제가 작가적 기질이 넘쳐나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사진 전공자들은 사진기를 손에서 놓는 걸 좀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언젠간 내 작업을 해야지’란 생각을 빚처럼 지닌 채 10년을 일한 거예요.”

사진의 흐름이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그 유명한 마젠타도 문을 닫았다. 가지고 있는 장비를 이고지고 현재 경기 고양시의 지하 작업실로 옮겨온 게 2009년. 작업실 이름은 흑백사진연구소로 지었지만, 인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이어갈 마음은 없었다. ‘이제 정말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를 다시 눌러 앉힌 이가 박노해 시인이다.

2010년 열린 박노해 시인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이 전시를 계기로 유철수 대표는 다시 암실로 돌아왔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페루, 2010년, Gelatin Silver Print. Archival Selenium Toning. 나눔문화 제공

2010년 가을 열린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시에 걸릴 길이 1m 의 대형 사진을 정통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하는 작업을 유 대표에게 맡긴 것.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크기를 하는 곳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없다 했더니,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 하더군요. ‘자신은 있는데 시설이 없다’ 했더니 그럼 시설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어요.”

박 시인은 사비로 유 대표의 작업실에 고가의 인화장비를 사서 들였다. 그때까지 수도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던 작업실에서 그는 흑백사진 120점을 인화해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전시실 하나를 꽉 채웠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는 다시 암실로 돌아왔다. “이런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작업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말하는 사진작가와 프린터의 관계는 “믿음이란 규칙 위에 선” 협업 관계다. “흑백사진이지만 블랙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비 오는 날의 블랙이라든지 빛을 전부 흡수한 블랙이라든지. 작가가 사진에서 원하는 느낌이나 감정을 말하면 제가 그 감정을 느낄 때까지 작업하는 거예요. 이 모든 소통이 언어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사진 한 장을 가지고 한 달, 두 달 핑퐁처럼 의견을 주고 받다 보면 디지털 시대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는 “인화는 작가가 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작가가 찍는 순간에 모든 걸 본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100분의 1초에 포착된 상황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어요. 작가는 그 상황에서 대표적인 것 하나를 찍고 후에 계속 다른 것들을 찾아가요. 그 과정에서 사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게 프린터의 역할입니다. 한 사람이 뛸 때보다 두 사람이 뛸 때 훨씬 멀리 갈 수 있어요.”

사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게 프린터의 역할
유철수 대표가 찍고 핸드메이드 기법으로 프린트한 사진. 그는 올 가을 제자들과 함께 작가로서 첫 전시를 연다.

모든 변수에 답변이 마련된 디지털과 달리, 아날로그 인화는 정답도 한계도 없는 창작 작업이다. 그럼에도 유 대표가 회의를 표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수요가 없는 건 물론이고 의외로 업계의 가격저항도 크다. 인화비용은 사진 크기에 따라 10만원에서 60만원선. 이중 30%가 재료비다.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과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는 위험성까지 따지면 생계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유 대표는 중앙대와 KT&G상상마당에서 강사 일을 겸하고 있다. “프린터를 직업으로 내세우지만 이걸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들어요. 시장의 원리 보다는 몇몇 마니아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분야거든요.”

박 시인으로부터 설비 원조를 받았을 때 그는 “10년은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인화에 진 ‘빚’을 청산했으니 이제 사진에 진 ‘빚’으로 돌아가도 될까. 그는 올 가을 제자들과 함께 사진 전시를 연다. 작가로서 여는 첫 전시로, 직접 찍은 사진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해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과 인화, 양쪽에 진 빚을 모두 갚는 그만의 방식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다양한 아날로그 기법으로 프린트해 보여주려고 합니다. 대중에게 아날로그 작업을 알리는 한편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어떻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도모해보려는 거예요. 디지털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아날로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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