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셀프’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스스로 가져다 마시는 일을 노동의 관점에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응당 해야 할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일손을 덜어 준다는 윤리적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 곧 주부(가사노동) 노동자(통근) 소비자(셀프서비스) 등에게 전가된 무급노동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상 없는 자발적 활동이 기업 이윤의 구조적 기반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얼마 전 미국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는 그림자 노동이 우리의 시간을 점령해 가는 사례를 다양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그림자 노동의 역습’, 민음사). 그가 제시한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발생한 문제 대부분은 회사가 비용을 들여 해결해 주지 않는다. 사용자가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접속해 스스로 해결한다. 기프트카드 사례는 나도 경험한 터라 공감이 더 했다. 온라인으로 선물 받은 문화상품권을 몇 달째 잊고 있다.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등 무언가 일을 해야 사용할 수 있는데, 익숙치 않은 이들에겐 쉽지 않다. 무엇보다 카드 발행사는 이미 이득을 얻었지만 소비자는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판매된 기프트카드의 경우 27%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는 데,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소셜미디어 활동은 그림자 노동이 기업 이윤의 직접적 원천임을 잘 드러낸다. 13억명이 넘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는 이메일 주소와 같은 자신의 프로필은 물론 음식, 영화, 스포츠, 여행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선호가 담겨 있다. 사용자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한다. 그 관계망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이나 ‘친구 맺기’를 통한 공유 확산 가능성을 고려하면 기업엔 보고(寶庫)다. 렘버트는 애널리스트 제레미아 오양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면서 사용자 자신이 상품이 되는 페이스북 사업모델을 적절히 분석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콘텐츠를 만들게 한다. 콘텐츠를 만들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사용자다. 그러다가 이것을 보고 광고비를 투자하려는 브랜드가 등장한다. 상품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는 자발적 놀이일 뿐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보상을 바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함으로써 기업을 평가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며 소비자 간 연대를 높여 ‘착한 기업’을 재생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자발적 활동이 실제로는 거대 자본에 의해 강제되고 있다는 점이 그림자 노동이 드러내는 은폐된 실상이다. 이반 일리치가 그림자 노동에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도 무보수 노동의 착취 문제를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겉으로는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이 실제로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이윤을 얻는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보완물’로 강요되고 있는 구조, 곧 ‘특이한 예속’이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조건이라는 점을 보이고자 함이었다.

매장마다 터치스크린이 늘고 있고, 출근해서 일을 준비하는 시간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림자 노동의 직접적 문제다. 문제의식을 좀 더 밀고 나가면 기업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통상 기업은 사(私)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윤추구는 절대 목적이자 자유라는 생각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은 이미 대가를 받지 않고 활동하는 많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어 가능하다. 안정적 거래를 위해 마련된 법과 제도 등 사회가 제공하는 지원체제는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은 그만큼 공공적인 것이다. 직원을 종 부리듯 하는 경영자의 퇴행적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업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주체로 바꾸는 데 필요한 인식이 이것일지 모른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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