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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서로’는 ‘끼리’가 아니다

입력
2018.05.09 15:3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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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사랑입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고 당부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것만으로 부족할 수가 있고, 심지어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서로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경우이고, 자기들끼리만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저는 제 조카들 중 마지막 조카의 결혼을 주례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의 주례사로 당연히 서로 사랑하라는 당부를 하고, 이어서 부부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확장된 사랑을 하라는 당부도 하였습니다. 요즘 와서 많이 문제가 되는 것이 부부 간의 사랑에 다른 가족이나 친지가 끼이지 않기를 바라고, 핵가족이 되면서 이제는 부모도 자기 가족의 사랑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부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연애를 할 때는 둘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그쳐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아내의 부모 친척과 남편의 부모 친척까지 사랑해야 되는 것이고, 사랑이 더 완전하면 할수록 더 넓게 서로 사랑을 하게 되지요.

오래 전에 큰 선거를 앞두고 어떤 분의 말이 문제가 되고 회자가 된 적이 있었지요.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 말입니다. 우리 경상도 사람끼리는 남이 아니라는 뜻이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을 뽑아 줘야 한다는 얘기였는데 그분의 ‘우리’ 안에는 경상도 사람만 우리이고 전라도나 충청도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지요. 예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 중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가르침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 아버지는 경상도 사람만의 우리 아버지, 전라도 사람들의 우리 아버지이고, 남한 사람만의 우리 아버지이지요. 그래서 오랫동안 북한에 인도적인 사업을 해온 저는 이 기도를 이렇게 바꿔 저도 바치고 다른 분에게도 소개했습니다.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아버지이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입니다.

이번에 우리 남북정상이 극적으로 만남으로써 본래 우리는 한 민족이고, 남과 북이 하나의 우리임을 감격스럽게 체험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경기에 한 팀으로 출전하고, 문화 교류가 이어지는 등 화해가 이뤄지고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에 감도는 좋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이 원수 되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끼리만 서로 사랑하는 거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안중근 의사를 생각합니다. 갈수록 저는 안중근 의사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의 위대함은 일본이 대동아공영이라는 거짓 명분하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를 침공할 때 안중근 의사는 동양의 평화를 주장하였다는 점이고, 이등박문을 암살한 것도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라 이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주장한 점이지요.

요즘 남북이 서로 힘을 합쳐 대결국면을 해소하려 하면서 ‘차이나 패싱’이니 ‘재팬 패싱’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렇게 속 좁게 굴어서는 안 되고 안중근 의사의 주장대로 같이 평화롭게 가는 길을 우리는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전 협정을 끝내고, 종전 협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종전 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가 증명하듯이 우리의 평화는 우리 민족끼리 평화로운 것만으로 보장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중국과 일본을 빼고 우리 민족끼리만 평화롭게 지내려 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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