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배우' 심희섭

다수 드라마 통해 섬세한 감정연기
영화 '변호인'서도 내부고발자 역
분위기 뒤집는 강렬한 인상 남겨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 보다는
'연기 너무 좋았다' 칭찬 원해"
작품 크기ㆍ배역 중요도 안 따져
배우 심희섭은 “OCN ‘작은 신의 아이들’이 끝나서 이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기 시작해야 한다”고 농을 던지면서도 “부족했던 부분을 연구하고 충전을 잘 해 다음 작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독립영화 ‘1999, 면회’(2013) 속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상원(심희섭)은 여자 앞에서 머뭇거릴 만큼 숫기가 없고 말수도 적다. 그의 행동은 영화 내내 물에 물 탄 듯 싱겁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다.

심희섭(31)은 무채색의 배우다. 희미한 정체성이 그의 강점이다. 지난달 22일 종방한 OCN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그의 그런 특징이 제대로 발현됐다. 사연 있는 악인인 검사 주하민을 연기하며 선굵은 면모를 보였다. 주하민은 대통령 후보 국한주의 비서실장으로서 자신의 ‘주군’을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동시에 어릴 적 헤어진 형사 김단(김옥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인물이다. 심희섭은 내면에 아픔을 지닌 악인의 이중적인 면모를 담담한 얼굴로 그렸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연기할 때 감정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강약 조절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심희섭의 연기를 발판 삼아 ‘작은 신의 아이들’은 4~5%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심희섭은 ‘작은 신의 아이들’ 초반엔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처연한 눈빛으로 까닭 모를 슬픔을 표현했다. 후반부 김단과의 인연이 드러난 후에는 뜨거운 감정을 발산했다. “주하민은 주인공들을 짓밟기 위해 접근했다가 그들 사이에서 감정의 줄타기를 하게 돼요. 복합적인 캐릭터를 어디까지 표현할 것인지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정제된 연기를 선보였는데, 캐릭터의 이면을 읽고 응원해주신 시청자가 많아 다행이에요.”

심희섭은 영화 ‘변호인’에서 내부고발자 윤 중위 역을 맡아 불안해하면서도 양심을 지키려는 정직한 군인을 세심하게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NEW 제공
얼굴을 알고 이름은 몰랐던 ‘변호인’ 속 윤 중위

언뜻 보면 특징을 찾기 힘든데, 묘하게 잔상이 남는다. 2013년 영화 ‘1999, 면회’로 데뷔한 그는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 영화 ‘변호인’, ‘족구왕’(2013), ‘암살’(2015)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톱스타 선배들에 비하면 출연 비중은 작았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첫 상업영화인 ‘변호인’에서 심희섭은 용공조작사건 공판에서 군의관의 고문을 증언하는 내부고발자 윤 중위를 연기했다. ‘암살’에서는 이중첩자 염석진(이정재)의 친일 행위를 밝히려는 반민특위 검사로 등장했다. 영화의 분위기를 뒤집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변호인’에 출연했을 때는 자신의 연기와 무관하게 3개월 내내 선배들의 촬영 현장을 따라 다녔다. 독립영화 촬영장에선 마주할 수 없었던 선배들의 농익은 연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가의 촬영 장비와 촬영 현장의 운영 형태까지 꼼꼼히 새겼다. “600만원에 대여한 카메라 한 대로 노인회관에서 먹고 자며 ‘1999, 면회’를 촬영했던” 그가 처음으로 “영화배우가 됐구나”하고 느낀 순간이다. 선배 배우 송강호의 연기 에너지와 집중력을 보며 더 넓고 깊게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심희섭은 OCN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냉혈한 주하민 검사를 연기하며 기존의 말갛고 순수한 이미지를 벗어났다. OCN 방송화면 캡처
“성공 욕심은 비우고 연기 욕심은 채워”

경기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으나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군 입대를 할 때까지도 연기에 큰 뜻을 두지 않았다. 제대 후에야 배우의 꿈을 품었고 독립영화 쪽에서 주로 활동했다. 최근 조금씩 얼굴을 알리며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으나 작품의 크기나 배역의 중요도를 따지진 않는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목표는 소박하다. “이 작품, 이 연기 너무 좋았다”는 칭찬을 듣는 것이 심희섭의 바람이다. 그는 촬영을 하면서 자신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을 연기를 통해 발견할 때 재미를 느낀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 감독과 소통하다 보면 원래 내용이 재가공되고 풍성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연기에 재미를 느낀다”며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한 작품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 참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도 “고정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을 장점으로 여긴다. 대중의 뇌리에 박힌 이미지로 역할에 제한이 생기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길 원한다. 말수가 적고 차분해 “속을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 성격이 그의 무채색 이미지와 걸맞다. “어떤 역할을 맡던 배우의 실제 성격과 생활이 연기에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전과 비슷한 역할이라도 확실하게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경험을 늘리는 시기라 좀 더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심희섭은 영화 ‘메이트’(2017)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최근 전주를 찾았다. ‘1999, 면회’ 이후 5년 만이다. 조금씩 성장하는 만큼 걱정도 늘고 있다. 그는 “배우로서 그릇을 만들어가는 시기”라고 현재를 진단했다.

“상대 배우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뛰어난 실력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 있어요. 열심히 하고 뿌린 만큼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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