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00일 전문가 좌담]

# 이현혜 한국양성평등진흥원 교수
‘NO를 왜 못하냐’는 교육이 아닌
NO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야
# 김룡 한샘 법무부서 이사
성희롱ㆍ성폭력 줄어드는 대신
행동으로 괴롭히는 행위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져
이현혜 한국양성평등진흥원 교수, 김룡 한샘 법무부서 이사,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이세연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왼쪽부터)가 지난달 17일 서울 컨퍼런스 하우스 달개비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애프터 미투 과제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직장과 학교 등 개인이 속한 조직에서 지위를 앞세워 벌어지는 성적인 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미투(#Me Too)운동 열풍이 올 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계, 정치권, 기업, 체육계 등 사회 전반에서 벌어졌던 미투 운동이 불러온 것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갑질’에 대한 한결같은 우려와 개선의 목소리였다. 미투는 결코 시한이 정해진 사회운동이 아니다. 비합리적인 폭력이 존재하는 한 생명력은 무한하다. 서지현 검사가 1월 29일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이 불붙은 지 9일로 100일. 이제 미투운동 열풍 이후를 의미하는 이른바 ‘애프터 미투(After Me Too)’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다. 평범한 ‘우리’가 가장 취약하게 성적인 폭력에 희생될 수 있는 일터(기업) 문화의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난해 신입 직원의 성폭력 피해 사태를 겪은 한샘의 사례를 들어 진정 우리 기업들이 각종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일터로 거듭날 수 있는 방책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지난달 17일 서울 ‘컨퍼런스 하우스 달개비’에서 진행된 좌담회에는 이현혜 한국양성평등진흥원 교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세연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 김룡 한샘 법무부서 이사(성평등위원회 위원장)가 참여했다.

사회(박소영 기자)=직장에서는 미투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어떤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는가. 애프터 미투 캠페인의 방향성을 제시해달라.

이세연=미투 운동을 통해 법제도들이 점차 많이 정비될 것으로 본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최근 개정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각종 판례들이 쌓이면서 성폭력 처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더 이상 성폭력, 성희롱에 대해 좌시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게 나아갈 것이다.

이현혜=미투 운동은 문화운동으로 정의하고 싶다. 우리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보여진다. 첫째, 우리 사회가 가진 성의식,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사람들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다. 둘째, 예전과 달리 이제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성폭력이 개인이 잘못 대처해 벌어지는 것이라기 보다 이게 본질적으로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드러냈다. 이처럼 사회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문화운동이었고, 따라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기 때문에 ‘애프터 미투’를 중대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미투 운동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달라져야 할 것들이다. 일터와 현장에서 느껴지는 애프터 미투의 과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현혜=기업, 정부 기관 등을 대상으로 2002년부터 성폭력예방 교육을 다니고 있다. 미투 이전에는 강사들에 화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편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대부분 이런 자리가 의무교육이다보니 ‘바쁜 시간에 왜 이런 걸 듣게 하느냐’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이런 강의를 나가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최근엔 달라졌다. 강연 자리에 나온 분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대부분 기관장, 조직의 장이 자리에 나와 분위기가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서로 모순되는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성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 본인이 잠재적 가해자라 느끼면 동시에 불편함을 드러낸다. 이런 게 펜스룰로 나타나는 것 같다.

김룡= 미투 이후 사회는 개인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나아가 문화의 개선을 이뤄야 한다. ‘잘못한 게 없는지 돌아봐야 해’라고 일시적인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과거 피해자 가족을 만났는데 ‘이 친구는 가족의 수치이다’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꾸짖는 말을 했다. 이제 피해자의 피해를 개인적, 나아가 사회적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인권 존중이 바탕이 돼야 한다. 당장 기업내에서 이뤄져야 할 급선무는 2차 가해를 차단하는 것이다. 성희롱, 성폭력이 아니라 행동으로 괴롭히는 행위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성폭력이 줄어드는 대신 ‘풍선효과’가 빚어진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일종의 애프터 미투 부작용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현혜=동의한다. 교육장에서 성희롱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많이 본다. 그래서 언어적인 폭력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직장내 성희롱을 포함해 모든 폭력의 범주를 어디까지 넓힐지를 생각해야 한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 직장 내 모든 괴롭힘을 같이 다루고 근원적으로 성차별적 언동을 막는 게 예방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미경=성폭력이 문제라고 다들 말하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적 언동에 대해 둔감하다. 성폭력은 하나의 유리잔 안에서 홀로 만들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 성차별적 문화가 어울려 성폭력을 만든다. 이것을 이해하고 경각심을 두루 갖기까지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 이후 ‘내가 피해자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성폭력을 공개한 피해자가 온라인상 인권침해 등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아직 많다. 상담 통계를 보면 수사 재판과정에서 성폭력 2차 피해를 겪는 경우가 25%에 달한다. 유명인에 그치지 않고 보통사람의 공개에도 관심을 갖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2차 피해의 문제를 짚어야 할 때다.

이세연=온라인에서 계속되는 2차 피해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다. 유튜브, 구글 등에 사건명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으로 피해자 관련 이미지와 동영상이 따라 나온다. 심지어 해당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걷다 보면 ‘무슨 사건의 피해자 아닌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가해자쪽이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 피해자는 심적으로 물적으로 피해를 본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명예훼손이 아니다’는 증명을 받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신원과 얼굴을 다 드러내야 한다. 미투가 이어져 많은 폭력의 유형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제도와 법적인 부분의 보완이 이뤄지는 게 순서다.

#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와
성차별적 문화가 성폭력 만들어
경각심 갖기까진 많은 노력 필요
# 이세연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
종합선물세트식 대책으론
피해자 구제가 더 늦어져
긍정적 조치에 대한 연구 따라야
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는 여성 국회의원 모임' 간담회에 참석한 미투 운동 확산의 기폭제 서지현 검사가 발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사회=직장내 성폭력 등으로 미투가 필요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개인보다 조직에서 각종 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다. 상하관계에 따른 폭력을 막아줄 특정한 조직내 문화와 시스템 개편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가 조사과정에서 또다른 피해를 입고, 조직을 떠나는 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부실한 현재 기업들의 폭력사태 조사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

김룡=직장에선 보통 성폭력 사건이 터질 경우 ‘형사절차가 진행되면 회사내 절차가 중지된다’는 유무언의 룰이 있다. 수사기관의 절차는 생각보다 길다. 따라서 폭력에 의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회사가 손을 놓은 경우 피해자는 폭력 사실을 공표하고 나서 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폭력을 놓고 분쟁이 벌어지면 형사고소가 이뤄지더라도 사내 절차가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있어야 한다. 형사적 판단과 회사의 판단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샘의 경우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 후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회사 내 조사가 진행될 때 객관성을 잃을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어 외부조사기관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내 절차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이름과 관계없는 이니셜로 표기하는 등 세밀한 피해자 인권보호도 필요하다. 시스템 안에서 폭력 사고 예방을 강화하도록 성인지교육을 강화했다.

이미경=직장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비단 한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어떤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가 법정으로 가지 않고 직장과 공동체 내에서 문제 해결을 보도록 체계를 갖추는 게 여러모로 좋다. 이를 가로막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뢰를 줄 수 없는 고충처리기구들이다. 대부분 집단내 고충처리기구 구성원들은 2년 계약직이다. 이들이 굳건한 가치관을 갖고 폭력사건을 처리하기 어려운 위치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구성원들 앞에서 피해자들은 ‘회사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피해자들은 ‘문제제기를 해도 우리 회사에서 제대로 (구제 절차가) 진행되리라는 신뢰가 없다’고 말한다. 반면 어떤 회사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써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 너 나가’라는 식으로 굉장히 강경한 대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가해자만 괴물로 취급해서 ‘괴물만 우리 조직에서 떼어내면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제다. 그런 행위가 가능했던 사내의 구조와 문화를 봐야 한다.

김룡= 급선무는 사내 조사 부서의 강화이다. 한샘은 성폭력 등과 관련한 상담창구, 핫라인이 갖춰져 있는데 신고가 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사건을 회사에서 공론화하지 않는다. 충분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는 단계를 두고, 조사부서가 사내ㆍ외 변호사와 디지털 포렌식이 가능한 전문기관을 섭외해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진행될지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래서 지금 피해상황이 사내에 알려질 경우 ‘증거가 없어서 장기화될 가능성’, ‘상대방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얘기해준다. 피해자의 의견을 되도록 완벽하게 청취해 증거를 확보하고 피해자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관련 사건을 진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회=직장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폭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미투 운동이모든 종류의 폭력을 줄이는 기폭제가 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정부, 사회나 직장 및 단체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꼽아본다면.

이세연=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자가 견뎠던 여러 보호조치, 조사과정이나 조사 이후, 징계과정에서 변화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사전예방에 있어 효과가 있었단 평가가 없다. 효과가 있었던 제도에 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정부부처에서 여러 제도를 개선하고 만들고 있지만 종합선물세트식으로 하다 보면 피해자 구제가 더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겪었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조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현혜=폭력예방 교육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자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더라. 그중 하나가 ‘왜 당신이 명료하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냐’라는 걸 여전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다. ‘NO’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먼저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과연 스스로 상대방이 ‘NO’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태도나 문화를 갖고 있느냐에 대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김룡=원가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통 기업이라면 사내 문화개선 부분, 상호존중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을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샘은 적어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호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일 등이 오히려 더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기업의 성과를 최대한 낼 수 있는 빠른 길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

이미경= 우리 사회는 이전에도 사실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한 여러 법과 제도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이는 외국에서 배워갈 정도로 상당 부분 성과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대중의 인식은 이를 따라오지 못했고, 매우 더디게 변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회와 조직과 관련된 부분은 이미 많이 이야기 됐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아주 쉽게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봤으면 한다. 가령 ‘도둑촬영 돼서 떠도는 영상을 나는 보지 않겠다’, ‘지하철 내에서 성추행 하는 걸 봤을 때 그냥 눈 감고 외면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변화를 위한,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실천해 가는 게 미투 운동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준이 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이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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