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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교사ㆍ학생 관계의 사회심리학

입력
2018.05.08 18:5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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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교육 교사 의탁 경향 강한 소외계층 

 교사는 엇나가는 그들 자녀에 깊은 상처 

 힘들어도 소외 학생 보듬는게 교사 숙명 

계층 간 교육격차 연구에 매달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간 문제의 실상과 배경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나름대로 꽤 애를 썼다. 필자가 얻은 결론은 비교적 단순하다. 교사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다.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인 수사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꼭 그런 건 아니며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교사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기는 건 교사와 학생 간 관계만은 학생의 가정 배경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가정 배경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학생의 학업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부모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은 학생은 부모나 친구와 돈독한 관계를 맺는 데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부모 학력이나 소득 수준이 교사ㆍ학생 관계에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수집한 종단 자료를 사용해 필자가 확인한 내용은 이렇다.

우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중산층 아동에 비해 소외계층 아동의 교사ㆍ학생 관계가 조금 더 좋은 편이다. 하지만 4학년 이후에는 정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5, 6 학년 때는 그 격차가 제법 커진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선 짚이는 게 있다.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교과 내용이 갑자기 많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학습 부진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소외계층 아동과 교사 간 관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소외계층 아동이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비롯된 낙인감 때문에 교사에게 마음의 벽을 높일 개연성도 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2학년 때까지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의 교사ㆍ학생 관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3학년 이후에는 계층에 따른 교사ㆍ학생 관계의 격차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그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 배경을 헤아려 봤다. 무엇보다 부모의 ‘가방끈’ 길이가 긴 학생도 그렇지 않은 학생 못지않게 교사와 갈등을 겪게 될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체로 중산층 학부모는 교사의 권위나 전문성을 선선히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교육이 자녀 성적을 올리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 학부모라면 교사의 열정이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 더욱 인색할 것이다. 이런 태도는 대학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한층 더 노골화할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이 폄하되는 일에는 매우 예민하고, 학부모의 본분에 대한 생각도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따라서 수업이나 평가와 관련된 학부모의 지나친 참견과 월권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중산층 학생이 평소 교사에게 비판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부지불식간에 교사를 무시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상황을 상정해 보라. 교사 입장에서 중산층 학생과 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은 현실적 이유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궁극적인 승자가 되는 걸 꿈꾸는 중산층 학생으로선 교사의 가치나 효용이 다소 제한적이라 여길 수 있다. 무척 불편하고 안타깝지만 사교육 공화국에선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소외계층 학생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마치 자녀가 아프면 의사에게 모든 걸 맡기듯 소외계층 부모는 자녀 교육을 교사에게 대부분 의탁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교사로선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과 자신의 진정성 있는 도움조차 불편해하고 엇나가려는 학생 때문에 숱한 갈등과 회의에 빠질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교사는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걸 멈춰선 안 된다. 특히 소외계층 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수년간 남모를 아픔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해서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잡는 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교직이 한낱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바람에서 하는 얘기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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