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사를 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짐을 풀지 못했다. 이사한 곳은 30년 된 집으로,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낡아 있었다. 이사 다음 날, 갑자기 천장이 내려앉았고 너무 오래되어 망가진 싱크대와 욕실까지 성한 곳이 없다. 서둘러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과 직접 수리를 하고 있지만, 점점 고칠 곳도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건 기본이고,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공사판 한가운데에 신문을 깔아 놓고 쓰는 중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20대에만 예닐곱 번 이사를 했고, 주로 지하, 반지하, 옥탑 등 저렴한 곳에 살았다. 지하와 반지하에 살면서 잠을 잘 때는 매일 거대한 관 속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온갖 곰팡이와 사투를 벌여야 했으며, 우울증에 걸렸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결국 이사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운이 좋아서 ‘좋은’ 집주인을 만난 적도 있다. 그 덕에 보증금 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의 주거 안정성을 집주인의 성심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에서는 주거 안정화를 위해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그마저도 높은 장벽이다. 막상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택청약이 있어야 하고, 목돈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은 필수다. 학자금 대출도 버거운 상황에서 소득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거나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들에게 몇천만 원의 보증금은 부담스럽다.

대개 빈곤할수록 열악한 환경에 살 수밖에 없다. 낮은 보증금에 따라 집을 구하면, 그런 집은 낡았거나, 소음이 있거나, 협소하다. 열악한 곳에 입주하면 보수 비용이 발생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빚을 내야 한다. 체념하고 산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비와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한다. 빈곤과 불안정한 주거 환경의 순환을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주거 안정은 생활 안정, 건강과 직결되기에 중요하다. 주거가 불안해질수록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일이며, 학업이며, 일상생활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한국은 주거 문제를 기본권이라기보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주거에 대한 정보나 선택권에 대한 권력이 세입자(임차인)보다 집주인(임대인)에게 기울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집주인에게 유리한 제도와 관습으로 주거시장이 형성된다.

집을 고르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아무리 꼼꼼하게 집 상태를 확인하더라도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 내외다. 타인의 사적 공간이기에 더 조심스럽고, 집을 둘러보더라도 가구에 가려져서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집주인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집이 나가길 바라기에 문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뿐인가. 부동산 중개업자는 빠른 계약을 권한다. 그러니 세입자가 집 상태를 온전히 파악하고 계약서에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입자가 책임을 떠안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집’이 과도하게 시장 의존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부동산 정책은 개인의 사적 재산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탓에 집을 소유한 이에게 유리하고,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 만약 주거 정책이 공급량을 늘리는 데 급급하기보다 거주자들의 삶을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면, 만약 집주인에게 집 관리와 시설 상태를 세입자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제도가 있다면, 오늘 나는 공사 대신 새로운 삶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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