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롯데뮤지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 미술계 최대 이슈

사립 미술관계 지각변동
용산 신사옥서 어제 개관기념전
세계 200대 컬렉터 서경배 회장에
리움 전 학예실장이 관장 맡아
개점휴업 리움의 자리를 대체
올해 1월 문 연 롯데뮤지엄보다
소장품·공간 크기 등에서 앞서
리움·아모레퍼시픽뿐 아니라
다른 미술관·갤러리도 모여들어
용산에 새로운 아트벨트 형성
3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아모레퍼시픽 신본사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기념전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 간담회에서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가 자신의 작품 '줌 파빌리언(Zoom Pavilion)'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신본사로 이전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3일 개관기념전 ‘디시전 포레스트(Decision Forest)’로 문을 열었다. 창업자인 서성환(1924~2003) 회장과 막내 아들 서경배 현 회장의 대를 이은 컬렉션으로 개관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곳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학예실장 출신인 전승창 관장은 “5,000여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재개관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사립 미술관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3일 개관기념전으로 문 열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유독 눈길을 모은 것은 리움의 빈자리 때문이다. 지난해 미술웹진 ‘스마트 케이’는 미술계 10대 뉴스 첫 번째로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점 휴업’을 꼽았다. 지난해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3월 홍라희 관장이 전격 퇴임하면서 리움은 1년 넘게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내 최대의 사립 미술관이자 막강한 컬렉션 파워를 자랑하던 리움이 장시간 휴업 상태에 놓이면서 미술계에는 그 자리를 채울 주자를 찾는 움직임이 분주했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신본사의 루프 가든. 건물 중간을 비워내 야외 정원을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먼저 눈길을 끈 곳은 올 1월 개관한 롯데뮤지엄이다. 롯데뮤지엄은 2015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롯데물산ㆍ롯데쇼핑ㆍ호텔롯데 등 3개 계열사가 2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한다. 서울 송파구에 우뚝 선 롯데월드타워 7층 전체를 사용하는 롯데뮤지엄은, 앞서 개관한 롯데콘서트홀, 뮤지컬 전용 공연장인 샤롯데씨어터와 함께 잠실의 ‘아트 트라이앵글’이 완성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개관 당시 롯데뮤지엄 측은 “매년 3,4회 세계적인 거장의 기획전은 물론 국내 신진작가를 아우르며 역동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롯데가 공연과 미술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문화콘텐츠사업의 주요 거점을 확보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리움의 빈 자리를 대체하기에는 애초에 방향부터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단 소장품 여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17 전국 문화 기반시설’에 따르면 리움의 소장품은 1만5,000점으로 서울 소재 사립미술관 중 압도적이다. 이 중엔 금동미륵반가상(국보 118호), 가야금관(국보 138호) 등 국보도 다수 포함돼 있다. 반면 신동빈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롯데문화재단의 컬렉션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공간의 한계도 있다. 전층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건물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층고를 5m 이상 높이지 못했다. 설치작품이 많은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선보이기엔 약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미술평론가는 “도서관과 독서실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롯데는 미술관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소장품이 없으니 사실상 전시관”이라며 “장서(소장품)가 없으니 앞으로 기획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색깔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1월 서울 송파구 잠실롯데월드타워 7층에 개관한 롯데뮤지엄 내부 그래픽. 롯데뮤지엄 제공
롯데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알렉스 카츠 전시. 롯데뮤지엄 제공
리움 ‘개점 휴업’ 따른 힘의 공백 메울까

이런 상황에서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서경배 회장은 2016년 미국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알아주는 미술 애호가다. 전승창 관장이 리움 학예실장 출신이란 것도 이목을 끄는 요소다.

1993년 호암 미술관에 입사한 전 관장은 2012년 아모레퍼시픽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리움에서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3일 기자간담회에서 전 관장이 밝힌 아모레퍼시픽의 소장품 수는 약 5,000점. 대부분 선대 회장이 수집한 것들로, 서경배 회장의 개인 소장품은 제외한 개수다. 전 관장은 “(서 회장은) 미술관이 뭘 수집하는지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며 “미술관의 방향과 (작품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외부 자문과 내부 회의를 거쳐 작품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 회장의 개인 소장품에 대해선 관장도 정확히 모른다는 입장이다. 전 관장은 “(서 회장이) 전시에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지만 솔직히 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며 앞으로 미술관이 선보일 소장품 전에는 주로 선대 회장의 수집품이 나올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서성환 회장의 수집품은 도자기, 그림, 병풍을 비롯해 비녀, 노리개, 부채 등 옛 여성 장신구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려 수월관음도와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미술관은 소장품이 포함된 기획전시를 1년에 4차례 가량 열 계획이다. 10월에 열릴 ‘조선 병풍전(가제)’이 그 예다. 전 관장은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미술관이니 당연히 다양한 소장품을 선보일 테지만, 소장품으로만 채운 상설전시 보다는 기획전에 소장품을 포함시켜 미술관의 색깔을 잡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3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아모레퍼시픽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기념전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작 '블루 선(Blue Sun)'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지하 7층, 지상 22층, 연면적 18만8,902.07㎡(약 5만7,150평) 규모의 아모레퍼시픽 신본사 건물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전시장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 마련됐다. 개관전으로 기획한 ‘디시전 포레스트’에선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출신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작품 29점을 모았다. 대형 인터랙티브 작품을 통해 관람객과 교감하는 것을 즐겨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70톤의 모래를 쏟아 부은 인공 해변 ‘샌드 박스’, 폐쇄회로(CC)TV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유희로 바꾼 ‘줌 파빌리언’ 등을 선보였다. 전 관장은 “관객이 참여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이 작가의 특징”이라며 “미술관의 중심 가치가 관람객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관전 작가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대형 미술관의 탄생에 업계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미술관을 둘러본 뒤 “조명이나 전시 방식 등에서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오히려 과해진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로 외관과 내용을 모두 갖춘 미술관이 나온 건 오랜만”이라며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미술관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공사립 미술관의 귀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대기업 미술관이 오너 일가의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비쳤다. 그는 “기업은 미술에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기업도 최상의 효과를 볼 것”이라며 “젊은 작가들이 가장 목마른 것이 전시장과 작업실이다. 대기업이 유휴공간을 레지던스 등으로 제공하면 한국 미술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용산, 서울의 새로운 아트신으로 부상
대림미술관이 2015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디뮤지엄. 젊은 감성을 건드리는 기획전으로 SNS상에서 젊은 층의 호응을 끌고 있다. 디뮤지엄 제공

올 상반기 롯데와 아모레퍼시픽이 각각 미술관을 열면서 서울의 미술 지형도도 바뀌고 있다. 전통의 예술구였던 종로와 강남 대신 용산이 새로운 아트신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특히 한남동-이태원-경리단 일대는 리움과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양대 산맥을 필두로 대림미술관의 디뮤지엄과 구슬모아당구장까지, 탄탄한 아트 벨트가 형성됐다.

가나아트센터는 지난달 25일 한남동 복합문화단지 사운즈 한남 11호에 분관 격인 가나아트 한남의 문을 열었다. 평창동 본 전시장과 달리, 한남동에서는 새롭고 실험적인 미술을 주로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그 옆 12호에는 크리스티, 소더비와 함께 세계 3대 경매사로 꼽히는 필립스가 둥지를 틀었다. 세계적인 화랑 페이스갤러리 서울 지점도 지난해 3월부터 리움 근처에 문을 열었다.

경리단과 소월길 일대에도 최근 갤러리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에 있던 박여숙 화랑은 올 하반기 소월길에 지은 신사옥으로 이전한다. 이 밖에도 갤러리 조은, 필 갤러리, 알부스 갤러리 등이 근 2년 사이 이 일대에 문을 열었다. 화랑과 갤러리들은 유행을 감지하고 새로운 관람객을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용산을 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