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촌서 만난 ‘배구 여제’
런던 3·4위전… 리우 8강서 고배
3국 리그 제패한 세계적 선수지만
단 하나, 올림픽 메달은 못 가져
한국 ‘식빵언니’ 중국 ‘김형’ 별명
“학창시절 키 작아 만년 벤치 신세
나태해질 때면 자서전 앞쪽 펴죠”
김연경이 지난 달 30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배구장에 있는 대형 태극기 앞에서 손에 든 공을 바라보고 있다. 진천=류효진 기자

“아시아 1위라는 말은 들었지만 세계 1위는 못 들어봤다. 그 말을 듣고 싶다.”

김연경(30)은 2011년 5월, 세계 최고로 꼽히는 터키 프로배구 페네르바체 입단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건방져 보일까 걱정된다”면서도 “까짓것, 한 번 도전해 보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달 30일 여자배구대표팀에 소집된 김연경을 만나러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으로 가는 길에 7년 전 당당했던 그 표정이 떠올랐다.

김연경은 공언대로 세계 여자 배구를 평정했다. 그는 한국(흥국생명), 일본(JT마블러스) 터키(페네르바체)에서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모든 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를 한 번 이상 거머쥐었다. 연봉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연경은 지난 시즌 중국 상하이에서 뛰며 챔프전에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만년 중위권이던 팀을 정규시즌 우승, 챔프전 준우승으로 이끌어 오히려 진가를 인정받았다. ‘배구여제’라는 수식어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많은 별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바로 ‘배구여제’다”고 미소 지었다.

배구 선수로서 영광을 고루 맛 본 그가 못 이룬 꿈이 올림픽 메달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는 ‘숙적’ 일본에 패했고 2016년 리우올림픽 때는 8강에서 고배를 들었다. 상하이와 계약기간이 끝난 김연경에게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터키나 중국 리그 중 하나로 좁혀졌는데 소속 팀과 대표팀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그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데 최대한 지장 받지 않는 팀으로 택할 계획이다. 김연경은 “지금은 도쿄(올림픽)만 바라보고 산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덧 그도 서른이 넘었다. 김연경은 “옛날에는 점프하면 체육관 천장에 손이 닿을 것처럼 통통 튀곤 했는데 그런 느낌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웃었다. 대신 홍삼 등 보충제를 제 때 챙겨먹고 보강 운동에 더 신경 쓴다. 중국 리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표팀 소집 전 주어진 1주일 남짓 황금 휴가 때도 개인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연경은 언제나 꾸임없고 솔직한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 서이라와 한 컷.(위) 대표팀 소집 전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아래 왼쪽) 중국 상하이 동료들과의 다정한 모습. 김연경 인스타그램

대스타답지 않게 유쾌하고 꾸밈없는 게 그의 매력이다. 기자들 앞이나 공식 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승민(36)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코트 안에서 김연경은 전 세계를 두렵게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늘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이 그의 터키, 중국 리그 생활을 조명했고, 솔직한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김연경이 처음 중국에 갔을 때 팀 동료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하지만 코트에서 먼저 장난치고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에 편견의 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이후부터 그는 ‘웃긴 언니’ ‘김형’으로 통했다.

반면 경기장만 들어가면 ‘열정의 화신’으로 변한다. 김연경은 2년 전 한일전에서 공격 범실을 한 뒤 저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내뱉었는데 카메라에 생생히 잡혀 곤욕을 치렀다. 김연경도 반성했고 가족들도 크게 걱정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 욕을 ‘식빵’으로 에둘러 표현해 ‘식빵 언니’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평소 그가 점수를 많이 따 놓은 덕이다. 김연경은 “그 일 이후 정말 조심하는데 그래도 또 경기 중에는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된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밝게 웃으며 인터뷰하는 김연경. 진천=류효진 기자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연경 인터뷰 류효진기자

‘여자배구의 메시나 호날두’로 불리는 그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192cm의 장신이지만 학창시절 또래보다 작은 키 때문에 세터, 레프트, 라이트 등을 두루 소화하는 ‘땜질용’ 선수였다. 후배들이 주전으로 뛸 때도 만년 후보였다. 김연경은 ‘왜 키가 안 클까’ 푸념하는 대신 ‘이 키로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리시브와 수비 훈련에 매달렸다. 한일전산여고에 진학하면서 키자 쑥쑥 자라 지금의 192cm가 되며 비로소 빛을 봤는데 후보 시절 쌓아놓은 탄탄한 기본기 덕에 수비력을 갖춘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다.

요즘도 가끔 나태해질 때면 김연경은 지난 해 말 펴낸 자서전을 뒤적인다. 그는 “책에서 만년 벤치 신세였던 때를 찾아본다. 울컥 하다가도 내가 너무 옛날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털어놨다.

진천=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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