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초창기였던 1999년 당시 네이버 로고와 2005년 페이스북 로고. 인터넷 캡처

1999년 여름 뙤약볕을 맞으며 서울 종로의 한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부채 같은 판촉물을 길게 늘어선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내용은 단순했다. 흰색 바탕에 날개 달린 모자 그림 하나와 녹색 글자로 적힌 ‘NAVER’ 정도였으니.

당시 검색엔진과 이메일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선두는 1997년 국내에 상륙한 야후였다. 한메일을 앞세운 토종 포털 다음이 야후를 무섭게 추격하던 때라 이름도 생소한 네이버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채는 극장 입장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직행.

인터넷 사업이 개화하던 그 시절 포털사이트 한 곳이 지금처럼 1년에 5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쓸어 담을 것으로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재화를 생산하거나 눈에 보이는 서비스를 창출하는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상의 공간에 이용자를 모은 뒤 끽해야 온라인 광고 게재 수준의 사업 모델로 보였는데 불과 십 수년 만에 ‘공룡’들이 탄생했다.

1999년 설립된 후발주자 네이버의 성장세는 무시무시했다. 야후를 꺾고 국내 포털 업계 정상에 등극한 다음까지 눌렀다. 2005년 한글 검색 시장에 진출한 구글과의 일전에서도 지지 않고 국내 시장을 완벽하게 사수했다. 라이코스나 네띠앙 같은 포털이 추억 속의 이름이 된 것과 비교하면 네이버가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네이버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검색 기능에 기반한 데다, 지식iN 블로그 지도 음악 영화 등 전 방위 콘텐츠를 보기 좋게 버무려 내는 나름의 내공을 축적하며 포털사이트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000년대 국내에 애플 아이폰이 등장하며 본격화한 모바일 시대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며 독보적으로 진화했다. 언론사의 뉴스를 거의 공짜로 가져다 효과적으로 활용한 능력도 네이버의 빼어난 장기였다.

네이버 측은 “뉴스 서비스의 사업성은 거의 없다”고 항변하지만 국내에서 뉴스는 50%가 디지털 형태로 소비되고, 디지털 뉴스 소비자의 77%는 포털사이트에 의존(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한국’)한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가 이용자를 오래 잡아두는 ‘락인(Lock-in) 효과’를 충분히 거두는 셈이다. 인터넷 광고는 이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광고료가 올라간다.

네이버는 뉴스 공급 초기부터 자의적인 선정 및 배열, 자극적인 제목 등으로 비판을 받았어도 서비스 이용자는 계속 늘었다. 2004년 도입한 댓글 달기 역시 끊임없이 조작 의혹을 불렀고 결국 ‘드루킹 사건’으로 의혹은 팩트가 됐다. 어떤 포털사이트보다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키워 온 뉴스 서비스와 댓글이 이제 네이버를 고난의 길로 인도했다.

가장 잘 하는 것에 발목이 잡힌 것은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이용자 22억명의 검색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페이스북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의 8,700만명 개인정보 유출로 2004년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를 관통 중이다. 글로벌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은 아직 딱 부러지는 사례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개인정보 유출 위험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는다.

획기적인 무료 서비스로 끌어 모은 사람들을 수익의 기반으로 삼았던 인터넷 사업 모델에는 금이 쩍 갔다. 포털사이트가 교묘하게 짜 놓은 테두리 안에서 지지고 볶거나 별 생각 없이 ‘동의’ 체크박스를 누르며 새로운 서비스를 즐겼던 이들을 더 이상 기대하면 안 된다. 토머스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속 이론을 빌리자면 패러다임의 변화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변화를 수용해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거꾸러질 수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는 ‘IT 세상’을 헤쳐왔으니 누구보다 잘 알 터, 영원한 강자는 없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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