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본격화하면
1인당 3만달러 시대 경제도약 가능해
북의 비핵화와 함께 경협 확대 대비를

경의선 철도로 출퇴근하면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경기 일산에서 서울역으로 오는 최단 경로라 40분이면 넉넉하게 사무실에 도착한다. 철도 지하구간이 없어서 차창 밖으로 도시와 변두리 경치를 맛보며 4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 내린 겨울 들녘 풍경이 그만이다.

경의선 역사 근처에 살다 보니 남북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행여 무력 분쟁이라도 벌어지면 이 지역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반면 관계개선 희망이 보이면 마음이 들뜨는 것도 이 지역 ‘지정학적’ 특성 영향이다. 특히 접경 지역인 파주시가 가까운 아파트단지의 고층에서는 맑은 날 멀찌감치 북한 지역이 보인다. 주체사상 창시자라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 이 지역 견본주택을 방문한 적도 있다.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평화가 정착된다면 지역이 발전하고 집값이 오르리라는 기대감도 숨길 수 없다. 이미 민간인통제선 안쪽으로 부동산 거래가 늘고 땅값이 오른다는 얘기가 들린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의선 개량 사업 추진 가능성이 높다. 이 노선은 2004년부터 2007년 말까지 200회 이상 운행하다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낡은 북한 철도시설 개선을 위해 2,000억원 정도를 투입하면 평균 50km의 속도로 다닐 수 있고, 개량하면 시속 100km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도둑처럼 온다’는 통일은 가까워진 것일까. 88올림픽 서울 개최가 확정된 이후 ‘문명동진론’이 유행했다. 유럽에서 미국과 일본을 거쳐 문명의 중심이 한반도 등 지구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토속 종교의 예언으로, 아널드 토인비의 문명이동론, 한반도 통일 논의 등과 엉키면서 증폭된 것이다. 경 제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를 주목하면서 그런 황당한 예언이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학계에서 나온 통일 예상 시나리오는 이랬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집권하면 체제 장악력이 떨어지고,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 교류가 활발해진다. 그 결과 북한 정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 경제력이 강해진 남쪽 정부와 손을 맞잡아 통일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에도 이후 통일은 더 멀어져 갔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햇볕정책도 ‘달러 퍼주기’라는 비판만 잔뜩 받았다. 오히려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등장한 김정은 정권은 초기에는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호전성을 보이더니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통일을 당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급격한 통일보다는 일단 항구적 평화 쪽으로 목표가 옮겨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 개발을 매개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는 방식이 최선이라는데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특히 개성공단과 같은 것을 여러 개 건설하는 것이 통일 효과에 버금간다는 중소기업인들의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은 우리에게도 실질적 이득이 있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과는 달리 일방적 퍼주기 논란을 비켜 갈 수 있다. 중국 베트남 등에 진출한 많은 기업도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돌아올 의향이 있다고 한다. 결국 개인소득 3만달러를 넘어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는 외길이 아닐까 싶다. 골드만삭스는 남북통일이 되면 수십 년 뒤 일본과 독일을 추월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희망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난제가 많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핵심 의제가 해결돼야 한다. 물론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도 필요하다. 이성과 합리만으로는 여전히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지만 30년 전 유행하던 문명동진론이 꽃피우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평화를 갈망하는 한반도의 기운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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