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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예금하겠다” 말에 속아 50억 수표부터 내 준 황당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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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예금하겠다” 말에 속아 50억 수표부터 내 준 황당농협

입력
2018.05.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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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회사” 사칭 사기꾼들, 구미S농협에 접근

사채업자에게 빌린 20억짜리 자기앞수표로

“거액 거래” 환심산 뒤 50억 수표 발행 요구

농협, 수표ㆍ지급보증서ㆍ농협인감증명서까지 전달

사기꾼, 다른 농협에서 5억 이하 수표로 교환

또 다른 농협서 현금인출하거나 수표로 유통

허술한 조합장 인감ㆍ직인 관리 시스템

타행수표 진위확인 소홀 등 문제점 노출

인출해간 50억 책임소재 법정공방 불가피

경북 구미의 S농협이 금융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진 가운데 농협 창구에 고객들이 없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경북 구미의 S농협이 금융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진 가운데 농협 창구에 고객들이 없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50억 자기앞수표 발행 사기사건에 휘말린 구미S농협 J지점 전경.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50억 자기앞수표 발행 사기사건에 휘말린 구미S농협 J지점 전경.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경북 구미에서 한 농협이 “거액의 예금을 하겠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 현금을 받거나 예금도 없이 불확실한 지급보증서를 이용해 일부 현금으로 인출해간 황당한 금융사고가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일당은 이렇게 받아간 수표를 다른 농협에서 1억~5억원짜리로 쪼갠 뒤 또 다른 농협에 가서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제3자에게 교부하는 등 유통시킨 뒤 잠적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일당 중 1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지만, 피해회복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해당 농협의 부실이 우려된다.

농협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구미시의 9개 지역농협 중 하나인 S농협은 지난 2월 유명상조회사인 B상조 직원을 사칭한 남녀 2인조 사기꾼에게 현금을 받거나 예금도 하지 않았는데 50억 원의 자기앞수표를 발행했다. 수표는 5억원권 3장, 1억원권 5장, 30억원권 1장이다.

남녀 사기꾼은 S농협 J지점을 방문, 지점장에게 다른 금융기관에서 발행한 20억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보여주며 “앞으로 거액의 거래를 하겠다”며 안면을 텄다. 이어 “사업상 필요하다”며 실제 교환에 돌리지 않는 조건으로 수표와 S농협 명의의 지급보증서, S농협인감증명서까지 건넸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점장은 조합장 승인 없이 임의로 서류를 작성, 수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점장에게 보여준 20억원짜리 자기앞수표는 사채업자로부터 수수료를 주고 잠시 빌린 것으로 밝혀졌다.

수표를 받아간 일당은 먼저 20억 원을 구미지역 다른 농협에서 지난 2월쯤 현금으로 인출했다. 이어 30억원짜리 수표는 1억~5억원으로 교환한 뒤 제3자에게 거래대금 등의 명목으로 교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말 사기꾼들에게 받은 수표를 발행농협에 현금으로 지급을 요청하는 과정에 드러났다. S농협은 지급을 거절했고,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 동안 S농협은 농협중앙회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S농협은 제1금융권인 농협은행과 달리 농협중앙회 산하 지역농협의 하나로 상호금융을 취급하는 제2금융권이다.

경찰은 용의자 중 1명을 서울에서 붙잡아 수표 발행 과정과 인출해간 현금의 사용처, 제3자에게 유통시킨 수표의 규모 등 사건전모를 수사 중이다. 또 S농협 J지점장과 감사가 수표 무단발행과정에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에 따라 이들을 소환해 공모여부도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S농협 측은 "피해자가 수표만 가지고 농협에 돈을 내놓으라고 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농협의 피해는 없는 상황”이라며 “농협에서 지급보증서라는 것은 쓸 수가 없고 직원이 문서를 위조해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앞수표는 현금이나 마찬가지로, 최종적인 지급책임은 최초 수표발행기관인 S농협에 있다는 게 금융권과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S농협이 현금을 지급한 농협이나 수표 상태로 소지한 피해자에게 지급을 거절할 경우 대규모 법적공방이 불가피하다. 50억원 전액이 S농협 손실로 잡힐 경우 해당 농협의 부실도 우려된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관련 인물들의 진술이 엇갈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라며 "추가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자금 흐름 출처를 파악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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