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강력한 ‘합의 이행’ 의사 밝혀
비핵화, 선언문 말미 배치 문제없어
‘완전한 비핵화’ 미국 주문 조건 넣고
NLL 평화수역화 천명 중요한 의미
북미 관계 정상화로 새 안보 체계서
중국처럼 고도의 경제 성장 꾀할 듯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17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성남=배우한 기자

“현재 북한이 취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판문점 선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60)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9일 본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처럼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도중에 중단할 것’이라고 의심하지만 계속 비핵화를 시도해 나가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남북 정상이 보증한 바”라고 단언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제대로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일각의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남북 정상이 27일 서명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는 비핵화 합의가 세 문장으로 담겼다.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고 ▦북측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비핵화를 위해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으며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수석연구위원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선언적 목표 ▦현재 북한이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 ▦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지면서 논리적 완결성이 확보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비핵화와 남북 대결 종식이라는 두 가지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호평했다. 아울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한 합의 이행 의지를 피력하고, 이번 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두 정상이 동의한 점을 긍정적 측면으로 꼽았다.

_판문점 선언의 성과와 한계는.

“기대 이상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핵심 의제인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나름대로 최대치의 합의를 받아냈다. 또 남북 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하고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나 종전 선언 등 이를 위한 구체적 조치에 합의한 것도 큰 성과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연다고 천명하고 핵과 전쟁 없는 한반도를 약속했다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국민들을 안도하게 하는 거니까. 다만 아쉬운 건 비무장지대(DMZ)에서 감시초소(GP)를 철거한다든가 남북 양측에 상호 대표부를 설치한다든가 하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데, 차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

_과거 북한이 합의를 깨뜨린 적이 많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는 세 가지다. 첫째가 만족할 만한 합의 내용이고, 둘째가 이행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이 시종일관 과거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유감을 말했다. 만찬에서도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합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보여준 목표지향적 리더십 스타일도 이행 가능성을 키우는 요소다. 마지막 셋째는 김 위원장이 얘기하듯 이번 합의가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점이다. 이번 회담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_핵심 의제인 비핵화가 판문점 선언 맨 마지막에, 그것도 평화체제 구축의 하위 내용으로 들어가 있는데.

“큰 문제는 아니다. 북한이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의제로서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지만 형식 논리로 보면 남북관계 발전이 출발 단계가 되는 거니까.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본 전제가 된다는 것도 맞지 않나. 미국은 북한 비핵화 자체가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만 남북은 평화를 위해 비핵화가 필요한 거다.”

_’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남북 합의문에 처음 담겼다.

“미국이 원하고 주문했던 조건이 충족된 셈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서 더 중요한 건 북한이 그간 취해 온 일련의 현재적 조치들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두 정상이 두 번째 문장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계속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북한이 밝힌 셈이다. 마지막 문장의 ‘국제 협력’은 북미 정상회담, 나아가 남북미 협력을 말한다. 이렇게 비핵화 항목은 3층 구조를 갖고 있다. 선언이라는 층위와 북한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도정(道程)에 있다는 확인 층위, 그 길로 가려면 미국 등 국제사회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제언 층위 등 세 단계다.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고 그걸 달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는 식의 완결된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_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지 않나.

“한국 정부가 구체적 조치를 약속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이 의지를 밝힌 비핵화는 조건부다.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받아야 한다. 그건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이고, 대신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확실한 핵 포기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게 중요한데 이번 판문점 선언이 그걸 분명히 했다.”

_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해선 개성 연락사무소 운영이나 도로ㆍ철도 연결 등 시사적인 조치들만 포함됐는데.

“대북 제재가 여전한 만큼 남북관계 부분은 미완성 상태일 수밖에 없다. 경협은 현 상황에서의 추상적 선언 정도만 가능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열릴 가을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공동 번영이나 교류ㆍ협력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 같다.”

_군사적 긴장 완화 조항에서 주목할 부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수역화 부분이다. (북한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북방한계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 고유명사도 쓰지 않았다. 북한이 자기네 경계선 주장을 포기한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경계선을 놓고 무의미하게 논쟁을 지속하는 대신 경계선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수역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 같다. 상당히 의미가 있다.”

_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까.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체제 안전 보장 체계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군사 위협에 대항해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갖고 대신 빈곤함을 감수하는 게 기존 북한 체제 모델이었다면 김 위원장이 주민에게 주려는 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토대로 한 새 안보 체계 아래에서의 고도 경제 성장이다. 분쟁 유발자였던 북한이 일반적 동북아시아 국가들처럼 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지는 걸 원치 않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이 주변 정세가 안정되길 바라는 것도 경제에 올인하기 때문 아니냐.”

_협상 당사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김 위원장이 핵을 그냥 내놓은 게 아니다.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한미 정상회담과 남북 간 물밑 접촉을 통해 북미 간 의견 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정부가 계속 해나갈 필요가 있다. 북미는 상대를 존중하며 줄 건 대담하게 주고, 받을 건 확실하게 받는 조치들을 취했으면 좋겠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종석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거쳐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초기 4년 간 사실상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셈이다.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다. 현재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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