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극 70년 맞은 배우 김선미씨
배우 총출연 춘향전 무대 오르고
일반인 상대로 발성ㆍ연기 가르쳐
2000년대부터 고정 팬 감소
여자만 출연해 동성애 논란도
“문화재 지정돼 제대로 전승돼야”
한껏 ‘오버’하는 특성 때문에 국극 배우는 직접 무대 화장을 한다. 김선미 배우는 “화장하는 것만 해도 배우 연륜을 알 수 있는 게 국극이다. 배역에 맞는 얼굴 화장을 연습하면서 ‘제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영상팀

중국에 ‘남자만 출연하는 전통극’(경극)이 있다면, 한국에는 ‘여자만 출연하는 전통극’이 있다. 1950~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국극이다. 노래와 춤, 연기를 합친 국극은 1948년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된 민족 오페라 ‘옥중화’를 시작으로 ‘햇님과 달님’ ‘견우직녀’ ‘춘향전’ 등 히트작을 쏟아냈다. 창극의 한 분파로 분류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여자만 출연한다는 점. 당대 주역 남장 배우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못지 않았는데, 고 조금앵 선생이 팬이었던 여학생의 청으로 가상 결혼식을 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국극 탄생 70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배우들이 발성과 연기, 춤을 가르쳐주는 ‘여성국극 시민예술가 양성과정’(종로문화재단)이 이달부터 12월 말까지 9개월 간 진행된다. 올 여름에는 국극 배우들이 총출연하는 70주년 기념공연 ‘춘향전’이 무대에 오른다. 12일 서울 와룡동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에서 만난 김선미(40)배우는 “국극 배우들이 공개모집해 일반인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극은 서양의 뮤지컬처럼 노래, 연기, 춤이 어울린 장르다. 국내 뮤지컬 배우 상당수가 성악과 출신인 것처럼 국극 배우 상당수가 판소리를 전공했다. 김선미 배우도 마찬가지. 전라북도인간문화재 수궁가 예능 보유자인 고 홍정택 명창의 손녀인 그는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한 건 8세”라고 말했다. “외가가 전부 소리하는 집안이라 자연스럽게 접했죠. 국극 무대에서 선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견우와 직녀’에서 사슴 역할 맡으면서였어요.” 대학에 입학해 다시 국극 무대에 섰지만 본격적으로 ‘국극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30대 초반이었다. “판소리는 소리와 아니리 형식으로 진행되니까 관객과 흥을 주고받는 게 덜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국극을 하다보니 판소리로 표현 못한 감정이 연기로 채워지더라고요.”

국극 '춘향전'에 주인공 춘향으로 출연한 김선미(왼쪽) 배우.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제공

판소리에서 내는 소리가 “톡톡하고 통이 크다”면 국극에서 내는 소리는 “톤을 깎은 부드러운 발성”이란다. 뮤지컬 배우 상당수가 성악과 출신인 것처럼, 국극에서 부르는 노래가 좀더 대중화된 편안한 음색을 내지만 역시 판소리의 기본기가 있어야 소화할 수 있다.

한때 ‘한국 팬덤 문화의 시초’라 불렸지만 김씨가 국극에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던 2000년대는 한참 사양길에 접어든 이후, 당연히 고민도 많았다. 김씨는 “정말 소리 공부 방편이라고만 생각하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국극은 시대에 맞춰 번안하는 게 관건인데 예전에는 국극 대본 쓰는 작가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전담 작가를 보기 힘들어 창작극을 내기가 어려워요. 고정 팬 상당수가 연로한 분들인데 젊은 관객들과 같이 즐길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죠.”

그럼에도 국극 배우를 그만두지 못하는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매력” 때문이다. “여성이 어필하는 남자와 다른 부드러운 남성성이 있어요. 체격이 작아서 주로 여자 주인공을 맡는데 후배들이 남자 역을 맡아 연기 맞출 때 ‘아, 이래서 여자 팬들이 많았구나’ 할 때가 있죠.” 국극 팬과 배우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이 ‘묘한 매력’이 아이러니하게도 국극 쇠퇴의 원인이 됐다. 여장 남자와 여주인공의 사랑이 ‘동성애 코드’로 해석되며 세간의 비난을 받은 것. 1960~70년대 국내 주요 무형문화재 제도, 국립단체 설립 과정에서 국극이 외면 받은 배경이다. 김씨는 “판소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는 반면, 국극은 별다른 보존 제도가 없다. 제가 20대부터 알던 선배 중에서 많이 돌아가셨고,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지금이라도 문화재로 지정돼 제대로 전승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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