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세계에 인간적 면모 부각
북한 평화 공세에 비핵화 휩쓸린 인상
한미 군사동맹 약화로 이어지면
북한, 비핵화 합의 파기 유혹 느낄 수도
평화협정 남북미 주도… 중국 소외
미중 간 경쟁 유발하려는 북한의 전략
지난해 1월 본보와 인터뷰 중인 윤덕민 당시 국립외교원장. 배우한 기자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핵을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윤덕민(59) 한국외대 석좌교수의 진단이다. 지난해 7월까지 4년간 국내 최고의 외교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윤 석좌교수는 29일 본보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번 정상회담 내용이 쏠려 있었던 반면, 핵심 의제였던 비핵화는 판문점 선언 마지막에야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자칫 비핵화 논의가 북한의 평화공세에 휩쓸려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윤 석좌교수는 남북이 판문점 선언에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합의한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대신 남한도 미국의 핵우산 제공과 전략자산 전개를 폐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측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오려는 셈법이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지만 지금이 오히려 대북 억지력 강화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이 약화되는 듯한 시그널을 북한에 줘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비핵화에만 관심이 쏠려 확고한 한미 군사동맹이 느슨해지기라도 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시간을 끌다가 비핵화 합의를 파기해도 괜찮겠구나’라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한반도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과 관련, 윤 석좌교수는 “판문점 선언을 보면 중국이 밀려난 듯한 분위기여서 일정 부분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이는 의외로 남측이 아닌 북측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국을 끊임없이 긴장시켜 미중 간 경쟁을 유발하며 전략적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북한의 속내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_과거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비교해 달라.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보고 싶다. 일단 형식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의의 위력이 드러났다. 두 정상의 표정과 말이 전세계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화해와 협력 국면으로 전환하자는 남북의 의지가 눈과 귀로 직접 전달되는 느낌이랄까. 앞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평범하고 인간적 면모도 드러나 비주얼 정치 측면에서 효과를 거뒀다. 반면 내용은 예상했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남북관계 발전 분야는 2007년 10ㆍ4정상선언이 되풀이됐고, 핵심 의제였던 북핵 문제는 판문점 선언에서 뒤편으로 밀렸다.”

_’완전한 비핵화’로는 부족한가.

“물론 완전한 비핵화를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적시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비핵화를 어떤 프로세스로 가져간다는 구체적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남북 간 핵 물질 보유와 배비(배치하여 설비함)의 문제까지 언급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하는 문구라도 있었어야 했다. 북한이 이처럼 구체적 언급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논리가 잘 스며 있다."

_어디에 스며있나

“비핵화를 위해 남북이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북핵 폐기를 위해 남측도 해야 할 게 있다는 뜻이다. 결국 미국의 핵우산과 전략자산 제거, 주한미군 역할문제 등을 제기하기 위한 사전 장치를 걸어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ㆍ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우군을 확보한다는 북한의 전략이 드러나 있다.”

_종전선언 시기를 ‘올해 안’이라고 못박았는데.

“이르다. 올해라고 못박은 것은 빨리 종전선언을 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을 이완시켜 정전협정 체결까지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달성 시한은 잡지 않았다. 한국의 평화와 안정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비핵화와 대남군사적 위협의 실질적 제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 제거와 평화체제 전환이 맞물리면서 가야 하는데 지금의 논리 구조는 ‘평화체제 구축을 먼저하고 비핵화는 나중에 한다’는 것이다.”

_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아직까지 예상했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통한 직접 대화로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도 결국 이 같은 프로세스 안에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_중국은 이번 회담을 어떻게 봤을까.

“충격을 받았다고 본다. 중국은 미국, 북한과 함께 정전협정의 당사국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를 ‘3자(남북미) 또는 4자(남북미중)’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3자인데, 중국이 원하면 4자로 간다는 식의 표현이다.”

_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표현인데, 알고도 그런 걸까.

“미중 간 경쟁을 유발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이다. 한반도 외교전에서 중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소외되지 않기 위해 북한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손해 볼 게 없다.”

_우리 정부의 다음 역할은.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을 향하는 북핵 위협을 해결하는데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회담 결과가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을 해소하는데 그친다면 한국 외교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대남 핵무기는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연히 이 같은 부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미 양국의 ‘플랜 B’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_’플랜 B’가 무엇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경계하면서 가자는 것이다. 비핵화는 몇 년이 걸릴 지 모른다. 지금 분위기에 들떠 일을 추진했다가 북한이 또다시 비핵화 합의를 깰 경우 어찌할 텐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북핵에 대한 억지력을 비핵화 마지막까지 가져 가야 한다. 대북제재의 틀을 강화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미국의 대남 핵우산을 보장하기 위한 신뢰성도 계속해서 높여나가야 한다.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미동맹을 분리해서 접근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윤덕민 전 원장은

외교관 양성의 산실인 국립외교원에서 1991년부터 27년 간 평생 외길을 걸었다. 합리적 보수성향의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한반도의 정세변화와 핵심 이슈를 명쾌하게 분석해 온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2013년 5월 원장에 취임해 이례적으로 연임을 거쳐 4년간 재임하며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와 일본 게이오 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북 고위급회담 특별자문위원과 대통령 외교안보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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