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부인, 이혼 소송 중
한밤 아파트서 나와 자취 감춰
남편은 대학 컴퓨터공학부 교수
사이버수사자문위 출신 전문가
경찰 추궁에 거리낌없이 부인
인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교수 강모씨가 2011년 5월26일 범행장소인 부산 해운대구의 한 주차장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누나가 사라졌어요.”

2011년 4월 5일 부산 북부경찰서에 실종 사건이 접수됐다. “(별거 중인) 남편을 만나겠다고 나갔는데, 아직.” 실종자 남동생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과 말을 잇는 순간마다 잠깐의 침묵. 그때마다 표정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실종자는 50세 A씨. 3일 전인 2일 오후 10시쯤 부산 북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외출하곤 자취를 감췄다. 검은색 원피스와 회색 코트를 걸친 그는 갈색 숄더백을 들고 현관에서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평소와 다를 게 없던 일상. 경찰이 남편 강모(52)씨를 급히 찾았다.

2010년 3월 혼인한 A씨와 강씨는 주변 사람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 A씨 역시 초혼은 아니었으나 강씨 결혼은 이번이 네 번째. 학원을 운영하면서 꽤나 많은 재산을 모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재력가던 A씨에게 강씨가 끈질기게 구애했다는 게 알려지며 “남자가 돈 보고 여자에게 접근한 것”이라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결혼 후 둘 사이는 원만하지 않았다. 경제적 문제, 성격 차이 등 갈등이 이어졌다. 반년 만에 부인은 이혼을 신청했다. 아파트와 자동차 구입 등 결혼 비용 4억원을 A씨가 모두 부담했다는 사실도 이때 알려졌다. 몇 개월간 별거했던 부부는 재판이 아니라, 협의를 통한 이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강씨가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위자료 액수 등 갈등의 골이 다시 깊어졌다는 뜻이었다.

“부인이 실종되기 직전, 통화 하셨죠?” 강씨는 경찰 질문에 아무 표정이 없었다. “없습니다.” 대답은 짧고, 목소리는 낮았다. “문자를 하신 게 기록으로 다 나와 있습니다.” 경찰이 통신기록을 들이밀었다. 실종 신고 직후 통신사실을 조회, 둘이 문자를 주고 받았다는 기록을 확보해둔 터였다.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질문 강도가 높아졌다. 수세에 몰린 용의자는 이런 경찰 추궁에 으레 사실을 털어놓기 마련이었다.

강씨는 웃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제가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입니다. ‘문자’와 ‘통화’는 다른 개념 아닌가요?“ 역습이었다. “‘연락했냐’고 물으셨다면 분명 ‘그렇다’고 답했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을 똑바로 하셨어야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경찰이 강씨 개인 자료를 뒤적였다. ‘보통내기가 아니네. 만만치 않겠어.’ 경남 모 대학 컴퓨터공학부 교수, 강씨 직업이다. 경력이 화려했다. 한국컴퓨터범죄연구학회장, 경찰과 검찰 사이버범죄수사 자문위원 역임 등. ‘범죄’에 능통한 ‘범죄 전문가’였다.

강씨가 말을 이어갔다. “물론 이혼 소송 중이었으니까요. 저희가 나이도 있고, 자녀도 있으니 원만하게 끝내려면 아무래도 협의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차원이었습니다.“ 거리낌 없는 강씨 말에 경찰은 그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마 가출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소송 과정에서 부인이 거짓말을 한 게 있는데. 그건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탄로날까 잠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걱정은 되지만 좀 있으면 나타날 겁니다.”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마치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안다’는 듯.

해운대 택시 하차 확인했지만
경찰 “부인과 같은 휴대폰 기지국”
남편은 “잘못 인식 많다” 빠져나가
당일 술집 결제로 알리바이까지
실종 13일 만에 공개수사 전환
2011년 5월 22일 경찰 관계자가 부인 시신 유기에 이용된 강씨 차량에 수사 중임을 알리는 테이프를 부착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경찰은 A씨 행적을 쫓는데 분주했다. 강씨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A씨가 단순 실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폐쇄회로(CC)TV와 통화기록 분석에 집중, 마침 단서가 발견됐다. 2일 오후 10시4분 아파트에서 나와 콜택시를 탄 것. 기사가 ‘사건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 그 여성 분요? 해운대에서 9시에 누굴 만나기로 했었는데 너무 늦었다고 30분 넘는 거릴 15분 안에 갈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급해 보였어요.” 기사가 전해준 대로라면, A씨가 그 곳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만은 분명했다.

A씨가 오후 10시46분 해운대 해수욕장 한 콘도 앞에 내린 게 확인됐다. 행적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경찰은 해운대와 인근 낙동강, 금정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만에 하나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산 시내 병원 기록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바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강씨 조사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었다. “부인이 택시에서 내린 직후 확인된 휴대폰 기지국 위치가 강 교수님과 같은 기지국 관할 구역이더군요. 같이 계셨던 것 아닙니까?” 강씨는 답했다. “형사님, 뭘 잘 모르시네요. 기지국은 넓게는 반경 1㎞ 이상을 커버합니다, 인근 기지국끼리 중첩되면 위치를 잘못 인식할 때도 있고요.”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미 세차된 강씨 소유 차량 뒷좌석 시트 봉합 면과 팔걸이 안쪽 등에서는 A씨 혈흔이 검출됐다. 강씨는 이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아 그거요? 얼마 전에 아내가 차를 타고 가다 코피를 흘렸어요. 그게 묻었나 보네요.”

실종 당일, 알리바이도 내세웠다. “지인들과 술자리가 있었어요. 술을 좀 많이 먹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아마 10~12시 사이에 나왔던 것 같네요. 이후엔 집 근처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어요.” 실제 그는 3일 오전 3시쯤 주점에서 4만원을 결제했고, 인근 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 20만원을 인출했다. 이후 오전 5시쯤 주점에서 다시 3만3,000원을 결제한 뒤 5시24분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서 확인됐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13일이 지난 15일,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만약 ‘의심대로’ A씨가 죽었다면, 강씨에 의한 타살이었다면, 시신이 우선 발견돼야 했다. A씨 얼굴이 실린 전단 6,000장이 뿌려졌지만 2주가 지나도록 성과는 없었다. 수사팀은 점차 지쳐갔다.

5월 21일, 실종 49일째.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대교 인근 낙동강. 환경정화 활동을 나섰던 모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 눈에 수상한 물체 하나가 포착됐다. 높이 1m, 폭 50㎝ 등산용 검은 가방.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누군가 말했다. “사람인 것 같은데.” A씨였다.

경찰은 즉각 강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단순 실종이 아닌 사망 사건.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 동안 수사로 확보해 놓은 각종 단서들이 있었다. 난공불락처럼 버티던 강씨도 24일 사흘간 집중 조사 끝에 범행을 마침내 시인했다. 그리고 강씨는 사건에 새로운 인물을 한 명 등장시켰다. 2004년 손님으로 처음 만나 관계를 이어 온 대리운전기사, 내연녀 최모(49)씨였다.

강씨는 ‘이혼 소송 과정에서 교수라는 자신의 사회적 위신이 손상되는 게 걱정됐다’고 했다. 소송 전망도 그렇게 밝지 않았다. 평판은 평판대로 안 좋아지고, 소송으로 거액의 위자료도 잃게 될 처지.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숨겨 단순 실종 사건으로 처리해야겠다는 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부인 시신 발견하자 결국 시인
이혼소송으로 위신 손상 걱정에
대리기사인 내연녀와 짜고 범행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지우려
본사 찾아 “삭제” 요구도 드러나

문제는 남편인 자신에게 돌아올 용의자로서의 의심이었다. 최선은 ‘누군가 A씨를 살해해주는 것’이었고, 차선은 ‘살해를 한 뒤 알리바이를 조작해주거나 시신을 은닉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 선택이 바로 최씨였다. “아내와 절반씩 지분이 나뉜 집의 반을 줄 테니 죽여 달라”는 제안이 먼저 갔고, “내가 계획하고 너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네가 결혼하자고 하면 해줄 것이고 돈을 달라면 다 주겠다”는 제의가 이뤄졌다. 최씨 선택은 후자였다. “14억원 정도 복권에 당첨됐다고 생각하고 아이들 집 한 칸씩 사주고. 커피전문점 차려서 당신이 관리하도록 해주겠다”는 말도 최씨에겐 달콤한 유혹이었다.

범행은 답사부터였다. 강씨가 A씨를 유인해 살해하면 최씨가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합류해 시신과 유류품을 넘겨 받아 숨기자는 시나리오도 만들었다. 3월 24일 가거대교, 마창대교를 둘러보면서 CCTV 위치를 확인하고 4월 1일에는 을숙도대교를 답사했다. 최종 시신 은닉 장소는 을숙도대교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날(2일) 오후 11시. A씨가 해운대 백사장에서 나타났다. “만나자”는 강씨 연락을 받은 지 10시간 만이었다. 인근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으로 자리를 옮긴 강씨는 A씨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트렁크에 미리 준비해뒀던 쇠사슬, 마대, 나이론 끈, 쇠고리를 꺼냈고 시신을 가방에 담았다. 시신은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서 있던 최씨 차에 옮겨 실었다. 강씨는 약속대로 최씨에게 이후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사전 답사를 마친 을숙도대교 감전IC 방면 200m 지점에서 시신을 낙동강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강씨는 이 같은 범행을 시인하면서도 “내연녀가 살해한 것이다” “나는 유기만 도와줬다”고 발뺌했다. “사전 공모를 하진 않았다” “우발적이었다” 등 형량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사적이었다. 경찰은 강씨가 범행 2시간 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카카오톡 계정을 삭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후 그는 카카오톡 본사를 찾아가 IT업계에서의 자신 지위를 들먹이며 “최씨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휴대폰도 변경했고, 다른 사람 유심을 사용했다. 하드디스크도 삭제했다. 경찰이 복구한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는 “(시신을 담을) 가방 구하러 다니고 있다”(강씨· 3월 27일), “(시신을 유기할) 대교에 갔다 왔다. 밤 늦은 시간에 같이 가보자”(최씨· 28일) 등 둘이 공모한 흔적이 다수였다. 범행 전날(1일), 부인을 죽이려다 실패한 정황도 드러났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증거 없애는데 활용하는 지식인 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수사팀은 혀를 내둘렀다.

2011년 11월 1심 재판부는 강씨와 최씨에게 각각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를 적용, 징역 30년과 징역 10년을 각각 결정했다. 대법원은 2012년 7월 이들에게 징역 22년(강씨), 징역 5년(최씨)의 형량을 최종 선고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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