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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적폐청산과 개혁정치의 딜레마

입력
2018.04.26 18:4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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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신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문재인 정권이 맡은 역사적 사명이다. 집권 이후 1년 동안 인사, 교육, 고용 분야 등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적폐청산과 신체제 건설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뜨겁기 때문일 터이다.

문재인 표 개혁정치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은 촛불시민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적폐청산을 과감히 밀어붙일 수 있었고 또 적지 않은 성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촛불의 열기가 식어가고 개혁세력이 반복해서 정책적ㆍ도덕적 허점을 드러내면서 한동안 수세에 몰렸던 기득권세력이 전열을 가다듬으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임과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은 기존의 정치지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당분간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정치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한반도 비핵화의 순탄한 진행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바, 비핵화프로세스는 언제라도 개혁정치의 악재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웬만한 국내 정치적 악재를 덮어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정권의 사활을 거는 각오로 개혁정치의 성공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적폐청산과 개혁정치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위험한 정치양식이기 때문이다.

개혁정치는 당연히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기득권세력의 불만과 저항을 초래한다. 이것이 개혁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빤한 이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걸림돌은 개혁정치에 내재하는 딜레마다. 특히 개혁의 주된 목표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입헌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일 경우 딜레마는 극대화된다.

민주적 개혁정치가 봉착하는 난관은 입헌민주주의 규범과 연관되어 있다. 개혁정치가 아무리 과도기적 정치양식이라 해도 입헌민주주의의 규범을 경시할 수는 없다. 개혁의 방법과 수단이 입헌민주주의 규범에 저촉될 경우 개혁의 명분과 정당성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반개혁 세력에게 강력한 저항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 권위주의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은 이런 딜레마에 빠질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거대 기업 및 언론과 지배 카르텔을 형성하여 저항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저항과 불만이 임계점을 넘으면 혁명으로 붕괴될 개연성은 그 만큼 높다.

법의 지배에 충실한 개혁정치는 기득권층과 반대 세력에게도 동등한 헌법적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개혁정치의 발목을 잡는다. 반개혁 저항세력이 헌법적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활용하며 정치사회 개혁을 효과적으로 훼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희정 민병두 정봉주 등이 연루된 미투 사태와 김기식 및 드루킹 파문으로 드러났듯이 개혁세력이 과거의 적폐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는 한, 저항세력은 개혁세력의 과거 행적과 도덕성을 공격함으로써 개혁의 정당성과 추진력을 약화시켜버릴 수 있다. 나아가 법의 지배가 아직 확고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혁에 동조하지 않는 법관들이 어렵사리 성취한 민주적 성과를 사법적 절차를 통해 폐기시켜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민주적 개혁정치는 권위주의적 개혁정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딜레마를 야기한다. 개혁을 위해 권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지만 권력 분산을 추진해야 하고, 저항세력을 억누를 필요가 있지만 그들의 시민권과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하며, 효율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법을 우회할 필요가 있지만 헌법과 법률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것이다. 개혁세력이 겪는 이런 딜레마는 반개혁 세력의 상황과 대조된다. 반개혁 세력은 지난 날 그들이 무시했던 입헌민주주의 규범의 보호를 받으며 개혁정치를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개혁세력은 그나마 개혁에 공감하는 다수 대중의 단합된 힘과 지지에 기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또한 개혁정치의 피로가 쌓임에 따라 적극적 지지자에서 소극적 지지자로 그리고 마침내 반대세력으로 전향할 개연성이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치의 환경은 노무현 정권 때에 비하면 훨씬 더 우호적이다. 아직 촛불혁명의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또 적폐청산과 신체제 건설에 대한 국민의 여망도 여전히 높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비핵화 프로세스도 개혁정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표 개혁정치가 성공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개혁정치의 실패에 대한 책임과 대가도 그 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정의로운 입헌민주공화국을 확고히 정착시킬 수 있는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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