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대표 계기 생활정치 중요성 터득
'옆집사람이 출마하는 구의원 프로젝트'동참
'권력게임 아닌 내 삶을 바꾸는 정치' 도전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손으로 뽑기보다 내발로 직접 출마하자'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에 동참한 사람들이 지난 1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에 모여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 끝이 12년 차 기자 삶을 접고 생활정치 도전에 나선 82년생 차윤주씨.

2015년 1월 어느 날 '난방 열사' 김부선이 서울시청 기자실에 난입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생면부지의 그가 아파트 난방비 비리 투쟁의 외로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릴 때 "난 참 속 편하게 사는구나"라는 마음의 빚을 가진 게 문제였다. 하필 그 즈음 살던 아파트의 황당한 관리 실태를 목격했고 얼마 안돼 동대표 선출 공고를 보게 됐다. "그래 이거다. 내 삶의 터전, 주변의 작은 공동체도 바꾸지 못하면서 뭔 일을 한다고..." 서른 세 살, 그럭저럭 잘나가던 기자의 기개와 젊음만으로 덤볐던 그의 도전은 60대가 독점 해오던 동대표 선거에 새 바람을 일으켰고 70% 가까운 지지로 당선됐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려는 그의 노력은 곳곳에서 저항과 반발을 낳으며 고소ㆍ고발전으로 치달아 취재차 드나들던 경찰서에 피의자로 불려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회계 투명성 등 나름 개혁을 이뤄냈다고 자부했지만 후임 동대표가 그가 이룬 성취를 되돌리는 것을 보고 깊은 좌절감을 맛봤다. 운명인가, 계시인가. 지난해 가을 자주 들르던 서점에서 촛불혁명의 경험과 열정을 토대로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구프)'를 기획하고 동참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투표 등 소극적 주권 행사에 머물지 말고 우리가 직접 작은 정치부터 시작해 보자"는 취지에 공감한 10여명이 모였다. 보통시민인 그들에게 기존 정당이 문을 열어줄 리 없지만, 낡고 고루한 그 문을 두드릴 생각도 없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올해 초 몇몇 정치 소셜벤처의 도움으로 공직선거법 등 선거관련법과 유세ㆍ홍보 등 선거 실무를 익히며 의지를 더욱 불태웠고 5명이 6ㆍ13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구의원은 25세 이상으로 출마 지역에 60일 이상 거주한 주민으로서 200만원의 기탁금만 내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고 연봉은 연 4,500만원 안팎이라는 사실, 그리고 서울의 경우 2014년 치러진 6대 지방선거의 구의원 당선자 419명 중 무소속은 3명에 그칠 정도로 새 피의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현실도 알게 됐다. 또 서울시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소수 정당과 정치 신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2014년 2명 선출 111개, 3인 선출 48개, 4인 선출 0개였던 기초의원 선거구를 각각 91개ㆍ53개ㆍ7개로 바꾸는 개혁안을 제출했으나 시의회의 90%를 점한 민주당과 한국당이 담합해 원점으로 되돌린 것도 알았다.

그래서 겁도 났다. 각종 선거 등 정치 현장을 취재하긴 했지만 관전자나 전달자로 즐겼을 뿐이고 정당 활동이나 그 흔한 풀뿌리 시민운동 경력도 없었다. 그러나 내 동네와 이웃 공동체를 더 좋고 편한 곳, 더 즐겁고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데 그런 스펙이 꼭 필요한가, 큰 권력의 비리에 분노하려면 내 삶과 직결된 주변 작은 권력의 불합리와 비리부터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 단위 선출직 공직인 구의원이야말로 중앙정치와 무관한 옆집 사람이 하는 게 옳지 않은가. 많은 자문자답 끝에 그는 3월 초 12년 차 기자로 일해오던 회사에 사표를, 열흘 뒤 줄곧 살아온 마포구 나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날부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매 순간 기쁘고 슬프고 보람차고 고달픈 감정이 교차하는 일정을 한 달 이상 계속해 오고 있다. 누구는 선거 비용 한도가 3,000만원 남짓하니 SNS 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선거운동에 전념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굳이 눈맞춤과 접촉을 중시하는 전통적 방법을 택했다. 정치는 결국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하철 출ㆍ퇴근길 인사하기, 경로당 등 각종 단체 방문 및 행사 참석하기, 주말 종교시설 찾기, 표밭 성향 분석하기 등등 매일이 전쟁이다. 그런 사이에 "동네를 위해 뭐 한 게 있다고…"라는 냉소와 명함마저 뿌리치는 외면도 즐길 만큼 넉살과 맷집도 늘었다.

'치'자 돌림으로는 멸치ㆍ꽁치 반열에도 끼지 못한다고 비난받는 정치를 생활 단위에서 새로 낚겠다며 나선 그는 1982년생 차윤주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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