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디지털 리마스터링 26일 재개봉

영화 '박하사탕’ 재개봉을 맞은 배우 설경구. 쇼박스 제공

“배우로 살아 오면서 ‘당신의 인생작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똑같이 답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이라고요. 앞으로도 어떤 영화를 찍든 ‘박하사탕’이 제 대표작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 18년 만에 영화 ‘박하사탕’을 다시 마주하며 배우 설경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정을 고백했다. 마치 신앙처럼 크고도 깊은 마음이었다. 그는 “그만큼 어머어마한 작품”이라고도 했다.

‘박하사탕’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26일 재개봉한다. 개봉일인 2000년 1월 1일부터 따지면 18년 4개월 만이다. CGV아트하우스가 한국영화 헌정 프로젝트 첫 작품으로 선정해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개봉을 지원했다. 재개봉을 기념해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GV) 행사에 나선 설경구는 “이런 순간을 맞은 게 너무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하사탕’은 신작 ‘버닝’으로 다음달 칸국제영화제를 찾는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본래 지칭하는 대상보다 영화 제목이 먼저 떠오를 만큼 21세기 한국 영화사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충무로는 이 영화로 설경구라는 걸출한 배우를 얻었다.

하지만 설경구는 “출연을 많이 주저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여러 사람 인생을 망치게 될 거 같았어요. 저와 문소리씨는 무명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감독님이 큰 모험을 하셨죠. 제가 발탁된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철로에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설경구 이름 앞에 ‘인장’으로 새겨졌다. 그 절규와 함께 영화는 20년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영호의 삶에 녹여낸다. 배우에겐 “감당하기 힘든 숙제”였다.

“촬영 전에는 감독님을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막상 촬영 시작한 뒤로는 감독님 뒤로 숨어 다녔어요. 눈도 마주치기 싫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군산에서 촬영하던 때였던가, 한번은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사과했어요. 나는 한다고 했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그게 내 최선이라고.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더는 촬영을 못할 거 같았어요.”

26일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 ‘박하사탕’의 한 장면.

낙담한 그를 일으켜 세운 이는 역시 이 감독이었다. GV에 함께한 이 감독은 “현장에 많은 스태프가 있지만 나는 오직 당신만 의지하고 있고, 당신만이 나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고 격려했다”며 “단순히 용기를 주기 위한 덕담이 아니라 내 마음이 실제로 그랬다”고 말했다. 또 “칭찬을 하면 배우가 그에 맞추려 할 수도 있기에 말을 아꼈던 것”이라며 “설경구라는 미지의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 유명한 철길 장면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철도청 협조를 받아 안전을 확보한 상태였지만,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일 정도로” 설경구가 극에 몰입해 있어 혹시 사고가 날까 봐 스태프가 설경구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말로만 듣던, 내면 연기를 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메소드 배우는 아니다”라면서도 “극에서 빠져나기 힘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촬영한지 20년이 지났어도 마찬가지다. “재개봉 GV 하기 전에 시사회를 뒤편에서라도 잠깐 볼까 한참 망설였는데 결국 못 봤습니다.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어요. 1999년 부산영화제에서도 외국기자 대상 시사회에서 잠깐 봤는데 통곡하면서 나왔어요. 인터뷰 하면서도 ‘박하사탕’ 얘기만 나오면 울어요. 기분 풀려고 노래방 가서도 울었고요. 여운이 정말 오래 가더군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도 울컥하는 기분이에요.”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박하사탕’으로 충무로 간판 배우가 된 설경구는 최근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불한당원’이라 불리는 열혈 마니아 관객의 지지를 얻으면서 ‘아이돌급 팬덤’을 몰고 다니고 있다. 이날 행사에도 불한당원들이 출동해 열띤 환호를 보냈다. 끊임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객석 곳곳에서 손팻말도 출렁였다.

“신작 개봉 때가 아니면 가까이서 팬을 만날 일도 없는데 ‘박하사탕’ 덕분에 이런 자리가 생겨서 더 기쁘고 반갑습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영화를 찍은 배우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더욱 힘내서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