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일본 교토에 다녀왔다. 벚꽃이 흐드러져 꽃 대궐을 차린 듯했다. 교토에 가면 바쁜 일정을 쪼개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도시샤(同志社)대 이마데가와(今出川) 캠퍼스에 있는 정지용(1902.5.15-1950?)과 윤동주(1917.12.30-1945.2.16)의 시비(詩碑)다. 내가 특별히 시에 조예가 깊다거나, 두 시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캠퍼스 일대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흥미롭고, 적국의 천년고도(千年古都)에 유학한 식민지 청년의 고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도시샤대 이마데가와 캠퍼스는 일본 중세를 지배했던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가 설치된 곳이다. 길 하나 건너로 천황이 거처한 드넓은 고쇼(御所)가 위엄을 뽐내고, 담 하나 너머로는 조선통신사가 머문 정갈한 상국사(相國寺)가 품격을 자랑한다. 1875년 니지마 조(新島襄)가 미국 선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도시샤대는 기독교 사립학교로서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에비나 단조(海老名彈正)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캠퍼스 안의 창영관(彰榮館), 유종관(有終館), 예배당, 클라크기념관, 해리스 이화학관 등은 모두 130년 이상 된 건물로서 중요문화재다. 유서 깊은 캠퍼스 한가운데 가장 좋은 곳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서 있다. 조국을 잃은 두 유학생은 아름다운 캠퍼스를 드나들면서 가끔 낭만을 즐기고 자주 현실을 원망했다.

정지용은 1923년(22세)부터 1929년(28세)까지 도시샤대에서 수학했다. 윤동주보다 15년 연상이고, 20년 먼저 입학했다. 재학 기간도 윤동주(10개월 가량)보다 훨씬 길었다(6년). 그는 고향 옥천에 처를 놔두고 유학해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다. 휘문고보가 교사로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그의 학비를 대주었다. 그가 도시샤대를 택한 이유는 기독교에 이끌린 데다, 이 대학 영문과가 간사이(關西)에서 가장 유명했기 때문이다. 교토의 자유로운 학풍도 마음에 들었다. 정지용은 조선민예운동(朝鮮民藝運動)을 주창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강의(휘트먼과 블레이크 강독)를 듣고, ‘윌리엄 블레이크 시에서의 상상’이란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정지용은 교토에서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의 작품을 탐독하고 본뜨면서 시작(詩作)에 힘썼다. 기타하라는 일본 근대 시사(詩史)에서 불세출의 천재로 인정받는 시인이었다. 일본어에 새 목숨,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소운(1907-1981)도 그의 추천으로 일본문단에 합류했다. 정지용은 그에게 직접 지도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열심히 모방하며 자기 시를 창작해 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국 전통 민요의 가락을 살리면서도 근대시의 새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정지용은 교토에서 도회지의 풍경과 생활을 서정적으로 읊었다. 당시 일본은 이른바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의 파도를 타고 대중문화를 구가했다. 정지용은 가와라마치(河原町) 번화가, 가모가와(鴨川) 풀섶, 히에이잔(比叡山) 숲 속을 거닐며 ‘카페프랑스’ ‘황마차’ ‘압천(鴨川)’ ‘슬픈 인상화’ ‘다리 위’ 등을 지었다. 이 작품들은 한국 모더니즘의 모태라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가 1928년 7월 22일 세례를 받은 가와라마치교회(성프란시스코 사비엘 천주당)에도 들러보았다. 그의 세례명은 프란시스코(방지거, 方濟各)였다.

정지용은 도시샤대를 졸업한 후 휘문고보 영어 교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경향신문 주간(1946.10.1-1947.7.9),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경향신문 주간으로 있을 때 윤동주 시를 게재하고, 곧이어 초간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행했다(1948.1.30). 그는 서문에서 윤동주의 순결한 생애를, ‘동(冬)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라고 칭송했다. 윤동주는 정지용을 통해 비로소 불멸의 민족 시인으로 부활한 셈이다.

정지용을 기리는 유지들은 2005년 윤동주 시비 곁에 그의 ‘압천’을 새긴 시비를 건립했다. 윤동주 시비보다 10년 늦었지만, 도시샤대는 정지용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그의 시비를 세우도록 배려한 것이다. 나는 화강암 속살이 희게 빛나는 시비 앞에서 선후배가 서로 끌고 밀며 저승에서나마 마음껏 조국을 노래하라고 기원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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