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시간을 통해 필연이 된다. 지난주 내가 경험한 일은 우연이라 여기기엔 너무 필연적이었다. 나는 지인들과 전라남도 해남 땅끝 마을에 위치한 미황사(美黃寺)를 방문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더욱 신비한 미황사였다. 안개 때문에 미황사 뒤를 휘감은 달마산이 자취를 감췄다. 가만히 응시하면, 자신의 윤곽을 조금씩 보여줄 뿐이다. 대웅전에 올라 말로만 듣던 광활한 남해와 그 중간 중간에 수 놓인 섬들을 보고 싶었다. 남해와 섬들도 세속의 눈을 가져온 나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여행에 동행한 한 불교학자가 미황사 대웅전 법당에는 한국의 다른 사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비한 동물 부조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미황사 맨 꼭대기에 위치한 대웅보전으로 올라갔다. 속세에서 극락으로 가는 길은 가파를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해야 하고, 이전에 한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나의 숨소리도 내 귀에 들린다. 대웅전 정면엔 네 개의 나무 기둥을 주춧돌이 받치고 있었다. 내가 찾는 게는 중앙 왼편 기둥 주춧돌에 선명하게 새겨있었다. 그 오른 편엔 풍파의 흔적을 지닌 거북이 부조가 희미하게 보였다. 게와 거북이 모양이 미황사 주춧돌에 새겨지게 된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대웅전 마당에서 게가 이곳에 새겨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부슬비를 피해 아래로 내려갈 참이었다. 그런데 계단에 들어서니, 갑자기 몸이 청록색이고 배가 빨간 무당개구리가 내 발 앞에서 펄쩍 뛰었다. 하마터면 내 발에 밟혀 죽을 뻔했다. 내가 이곳에서 목격한 게와 개구리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한 특별한 모임에 참석했다. 인도에서 오신 저명한 명상가가 진행하는 소규모 명상모임이었다. 그녀는 길게 늘어진 천을 두른 인도의상 사리를 입고 단위에 좌정하였다. 그 앞에는 나를 포함한 도반(道伴) 20명이 허리를 곳곳이 세우고 가부좌 자세로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녀는 명상을 위해서는 호흡, 마음, 그리고 의식, 세 가지를 다스리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주었다. 특히 자신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감정들을 헤아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인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던 전설 하나를 소개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게와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아!!! 생면부지의 인도 명상가가 내가 어제 미황사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게와 개구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자비로운 눈으로 우리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 개구리가 살고 있는 우물에 빠졌습니다. 개구리는 민첩하게 헤엄치지 못하는 게를 보고 무시하며, 자신의 수영솜씨를 뽐내고 우물의 크기를 자랑합니다. 게는 개구리의 자화자찬에 한 마디 던집니다. ‘당신은 바다에 와 본적이 없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바다는 이 우물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합니다.’ 개구리는 게의 주장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구리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을에게 가장 큰 우물로 게를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바다가 이 우물보다 클 수는 없어!’ 그러자 게는 체념한 듯이 말합니다. ‘바다는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평상 우물 안에서만 살던 개구리가 게의 주장을 믿을 리가 없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한 세계 안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게에게 말했다. ‘너는 거짓말쟁이다.’

내가 이틀에 걸쳐 ‘게와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전에 한 번도 방문한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던 미황사와 인도 명상가를 통해 들었다. 서로 관계가 없는 두 사건이 나라는 고리를 통해 각각에 숨겨진 이야기가 가진 비밀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영어단어가 떠오른다. ‘세렌디피티’는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다. 이 단어는 원래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 ‘실론’의 별칭인 ‘세렌딥(Serendip)’에서 유래했다. 고대 인도인들은 실론을 ‘비단의 섬’이란 의미인 ‘스와르나 디위파(Swarna Dwipa)’, 즉 ‘세렌딥’이라고 불렀다. 1754년 영국 소설사 호러스 월폴(Horace Walpole)이 ‘세렌딥의 세 왕자들’이란 페르시아 우화를 소개하면서, 이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 우화는 후대 셜록 홈스나 코난 도일 추리소설의 원조가 된다. 이 왕자들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들이 추구하지 않은 것들을 우연히 발견한다.

미황사의 게는 나에게 ‘세렌디피티’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정의이며 진리라고 주장하는 개구리와 같은 나를 깨우치기 위해, 바다에서 한 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나 미황사 대웅전 기둥에 주저앉아 부조가 되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나를 위해, 인도에서 온 한 명상가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개구리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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