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스토리(13)] 바둑인생 아직은 포석 단계

“후배들에겐 바둑을 즐긴 선배로 남고 싶어”
지난 2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김채영 3단은 “연승 기록 보단 대국에서 자신감을 찾은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록이긴 합니다만, 아직은 좀….”

부담스러워 했다. 들뜰 만도 했지만 오히려 신중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는 자신만의 집중력 다잡기로 보였다. ‘2018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무패 행진 중인 김채영(22ㆍ서울 부광약품) 3단의 첫인상은 그랬다.

지난 2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김 3단은 “제 바둑인생에서 지금은 아직 초반 포석 단계”라며 자신에 대한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를 경계했다. 김 3단은 19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박지은(35ㆍ인제 하늘내린)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 올해 이 대회에서만 10전 전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이미 13연승을 달성한 그의 연승 기록도 23연승까지 늘었다. 이는 국내 단일기전 사상 역대 2위 기록이다. 이 부문 1위는 한국 바둑계 살아 있는 전설인 이창호(43) 9단이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농심 신라면배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기록한 30연승이다. 김 3단의 23연승 때문에 바둑황제인 조훈현(65) 9단의 ‘박카스배’ 22연승(1987~91년)과 이창호 9단의 ‘제왕전’ 22연승(1990~93년) 기록 등은 3위로 밀려났다.

지난 2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김채영 3단이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 대 알파고'가 벌인 대국을 복기하면서 전체적인 판세를 설명하고 있다.
“연승은 기록일 뿐…샴페인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후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아요. 운도 좋았고요. 그 보단, 바둑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부분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어요. 갈 길은 멀지만, 확실한 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기력 향상과 관련, 냉정한 진단으로 대신했다.

김 3단은 특히 연승 기록에 가려진 자신의 아킬레스건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누가 봐도 현재 국내 여자바둑 랭킹 1위는 최정(22) 9단입니다. 제 연승 가운데 최 선수와의 대국은 없어요. 상대전적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 선수는 우승도 많이 했어요. 제가 당연히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국내 여자바둑 랭킹 3위인 김 3단은 자신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짚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국내 여자 프로 바둑기사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지만 김 3단의 공식 기전 우승은 지난 2014년 ‘제19기 여류국수전’이 유일하다. 당시 우승도 바둑계에선 전무후무한 상대방의 막판 실수에 편승했던 결과여서 김 3단에겐 사실상 ‘반쪽짜리’ 우승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난 김채영 3단이 기보를 보면서 복기하고 있다.
“훗날, 후배들에겐 바둑을 즐겼던 기사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만 김 3단은 연승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얻은 소득도 크다고 했다.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지금까진 남자 기사들을 포함해 저보다 객관적인 기량이 앞선 선수들과의 대국에선 주눅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바둑을 둬 보지도 못하고 지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이젠, 이런 게 많이 줄었습니다. 상대방이 누구든, 승패와 관계없이 제 바둑을 둘 수 있게 됐거든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최근 친동생인 김다영(20) 3단의 기량 향상도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동생의 바둑 실력도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아요. 친자매가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지난해 말 열렸던 ‘제1회 한국제지 여자 기성전’(우승상금 3,000만원)에서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김다영 3단도 요즘 물오른 기량으로 주목 받고 있다. 바둑계에선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채영ㆍ다영 3단은 부친인 김성래(55) 5단과 함께 3부녀 바둑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김채영 3단은 인터뷰 말미에서 프로 바둑기사로서의 지향점도 내비쳤다. “승부사로서 최종 목표는 당연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일입니다. 그래도 훗날, 후배들에겐 바둑을 즐겼던 기사로 더 기억되고 싶어요.”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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