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가 사는 세상] <7> ‘책 사냥꾼’ 외서 기획자 노만수
외서기획사 노만수 기획위원이 작성한 검토서들. 짧게는 A4용지 서너 장, 길게는 열 장 이상이 넘어가는 분량이다.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찾아낸 좋은 책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주성기자

외서기획자 노만수(49) 기획위원이 가장 아끼는 도구를 꼽으라면 사실, ‘엉덩이’다. 좋은 책 가려내는 데 ‘운’이나 ‘감’ 따윈 없다. 서평, 독자평, 추천사 등을 읽어 나가며 포위망을 좁히더라도 좋은 책이란 결국 텍스트를 물어다 놓고 우직하게 읽어나가야 하는 작업이라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외서기획자 노릇을 오래 하다 보니 외국 에이전시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진 덕에 이젠 개인 자격으로도 해외 출판사에 ‘검토본’을 직접 요청해서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엔 일일이 출판사를 통해야 했다. 인터뷰한 날도 지난 12일 끝난 런던도서전에 참여했던 에이전시들이 따로 챙겨 보내준 이런저런 자료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짬을 냈다.

자신의 작업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하던 노 기획위원이 내민 것은 A4 용지 다발이었다. 긴 시간을 들인 엉덩이 노동의 집약체인 기획서, 혹은 검토서다.

처음부터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제안한 책이 출판되어야 일이 성사되는 방식이다 보니 좀 더 절박해졌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길어지고 풍성해졌다. 말하자면 출판사 사장에게 띄우는 ‘러브 레터’다. 한 때는 짧아졌다. 죽이 맞는 사장,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를 만나서다. 교수신문 학술기자 출신인 강 대표는 ‘양서(良書)’에 대한 욕심이 지독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찰떡궁합이었다. 노 기획위원이 성사시킨 200여권 가운데 130여권은 강 대표와 일한 결과물이다. 이 때는 기획서 없이 술 마시다, 밥 먹다가 성사시킨 경우도 있다. 무모할 정도로 쏟아낼 때였다.

지금은 약간 부담스러운 일이 됐다. 검토서를 기가 막히게 쓴다더라 소문난 게 독이 됐다. “이젠 간략하게 쓰고 싶어도 그렇게 간단하게 쓰면, 책이 별로인 것처럼 보일까봐, 또 일을 성의없이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신경 쓰이는” 단계가 됐다. 하지만 어쩌랴, 물건이다 싶은 책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이 검토서 한 단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을.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