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서 기획자 노만수 기획위원

[스태프가 사는 세상] <7> ‘책 사냥꾼’ 외서 기획자 노만수
#인터넷-종이더미 헤쳐가면서
팔리면서도 좋은 책 찾는 게 일
"좋은 책은 많다. 좋으면서 팔리는 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외서기획자 노만수씨의 말이다. 배우한기자

다음달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발표를 앞두고 눈여겨보고 있는 책을 물었다. 기자 출신 이라크작가 아흐메드 사다위의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을 꼽았다. 이라크에 대한 서구의 잦은 개입 때문에 이제 ‘진정한 이라크인’이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혼종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환상적인 느낌이 강한 범죄 소설이다. 이유가 있을까. “전반적으로 그런 기운이 와요. 이번에 맞히면 돗자리라도 깔려고요.” 외서기획자 노만수(49) 기획위원의 농담이다.

눈 여겨 보고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13편을 고르는 예선을 통과하더니 6편을 뽑아둔 최종 후보까지 올라갔다. 아직까진 예상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이면 딱 판가름 날 일인데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 작가 한강의 ‘흰’도 최종후보작 가운데 하나인데 말이다. “한강의 ‘흰’이 받아도 좋긴 한데, 저로서는 이 작품이 받으면 더…”하며 씨익 웃었다. 하긴, 이 문제는 외서 기획자의 숙명이기도 하겠다.

노 기획위원은 한국에 작가의 이름은커녕 작품활동 자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이미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상한 바 있다. 음악 콩쿠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뤘던 온다 리쿠의 소설 ‘꿀벌과 천둥’(현대문학)이 2017년 나오키상과 일본서점대상을 동시에 받으리라는 것 또한 예측한 바 있다. 사다위도 진짜 그럴 지 모르니, 일단 다음달까지 지켜보기로 하자.

노 기획위원이 ‘노’스트라다무스를 자처하는 건, 유달리 ‘감’이나 ‘촉’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랬다면 로또 번호를 맞히는 게 더 수지 맞는 장사일 게다. 노 기획위원의 예언 근거는 5쪽 분량으로 작성된, 고된 노동 끝에 만들어진 ‘검토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후하다. ‘보도성(★★★)’ ‘대중성(★★★★)’에도 평균이상 점수를 줬거니와 오락성ㆍ가독성ㆍ문학성ㆍ풍자성ㆍ우화성ㆍ추천지수 등에서는 모두 별 5개(★★★★★)를 줬다. 그 판단도 ‘내가 읽어보니 이렇더라’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출판계에서 기획안, 혹은 검토서를 가장 완벽하게 쓰는 사람”(강성민 글항아리 대표)이라는 평을 듣는 이답게 아랍권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이력, 출간 당시 이라크 등 아랍권의 반응, 그리고 번역 소개된 뒤 해외언론들의 호평, 특히 맨부커상에 영향을 끼치는 영미권 언론과 독자들의 반응과 서점 판매지수 등을 그 근거로 꼽아뒀다.

문학은 다른 분야와 달리 한가지 더 추가된다. 문학은 문체가 주는 미묘한 맛 같은 ‘읽은 재미’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수월하게든 아니든 무조건 전부 다 읽고 판단해야 한다. 10쪽 분량으로 작성된 ‘꿀벌과 천둥’ 검토서에는 그 결과 “에이스 번역자를 붙이라”는 당부까지 붙여뒀다. 언어적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일본 책은 대개 번역 난이도가 낮다고 평가 받지만, 이 책은 그렇게 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외서 기획자란 출판사에다 괜찮은 해외 서적을 추천해 출간 작업을 돕는, 일종의 ‘책 사냥꾼’이다. 노 기획위원은 대학시절 학교 앞 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판사 편집장 등을 거쳐 8년째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ㆍ중국 유학 경험으로 영어 이외 중국어, 일본어에 능하다. 독일어, 프랑스어는 사전이 있으면 그럭저럭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모든 경험이 ‘책 사냥꾼’의 밑천이다.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시작해 지금은 사계절, 세종서적, 살림출판사 네 곳에 기획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이나 부탁 때문에 다른 출판사 일도 한번씩 봐준다. 이렇게 지금까지 기획한 책은 200여권에 이른다.

인터넷 자료와 종이더미를 헤쳐가며 좋은 책을 뽑아내는 외서 기획위원 노동의 결실은 검토서, 기획안이다. 김주성기자
#대중-오락-문학-풍자성 등
평가 통해 꼼꼼히 책 고르지만
한국시장 소개 성공 가능성은
3할 타율이 안 돼 아쉽기도

그의 무기는 월드 와이드 웹, 곧 인터넷이다. 아마존은 기본이고, ‘보커라이’나 ‘키노쿠니야’ 같은 중국, 일본 인터넷서점도 누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도 자료의 바다다. 서평사이트, 주요 도서사이트 등을 통해 독자 반응까지 챙겨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현지 언론의 북 섹션을 정기구독하는 것은 물론, 해외 주요 문학상이나 출판상 수상 일정들도 줄줄 꿰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후보작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이게 끝은 아니다. 덩치가 제법 되는 출판사의 경우 외서 기획 업무를 내부 직원이 맡는다. 이들이 선호하는 책은 아무래도 대중성에 방점이 찍힌다. 이름값 있는 작가,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주제 등이 우선된다. 상대적으로 큰 돈을 동원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수익성을 생각한다. 쭉 지켜봐 온 저자 혹은 주제라는 이유로 먼저 찾았다 싶었지만,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나 마스네 무네아키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위즈덤하우스) 같은 책은 결국 자본력이 강한 출판사와의 경쟁에서 탈락했다.

노 기획위원이 대신 집중하는 건 콘텐츠의 ‘질’이다. ‘질’이라 해서 어렵고 고상한 어떤 학문적 분석 같은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노 기획위원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에 좋은 책은 많으나 내가 찾을 건 좋고도 팔리는 책”이다. 그는 “팔릴 책이냐, 좋은 책이냐 출판사 사장님들에게 묻는다면 100% 팔릴 책이라 본다”면서 “그 중에서도 좋은 책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좋고도 팔릴 만한’이란 곧 ‘한국에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다.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맥락, 흐름에 대한 이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어야 그에 걸맞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해외 자료만 볼 것 같지만, 한국 일간지 정독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우리나라 일간지나 주간지의 북섹션 기사들을 일일이 챙겨보는 이유다. 노 기획위원은 평소에 이렇게 많은 정보를 계속해서 접해두는 걸 ‘두첩(頭帖)’ 작성이라 부른다. 손으로 적어두면 ‘수첩(手帖)’, 머리에 담아두면 두첩이다.

그래서 가장 기쁠 때가 ‘의미 있는’ 저자, 담론 같은 걸 한국에 소개할 때다. 가령 최근 출간(노 기획위원이 제안한 출판사는 아니었지만)된 ‘보수의 정신’(지식노마드)이 한 사례다. 촛불시위, 탄핵 국면에서 보수의 붕괴 얘기가 나오자 노 기획위원은 보수에 대한 책을 집중적으로 훑었다. 그 결과 골랐던 책 2권이 바로 ‘보수의 정신’, 그리고 시카고대 교수 리처드 위버가 쓴 ‘Ideas have consequences’(이념이 중요하다ㆍ미발간)였다. 그는 “보수가 다 망했다고 할 때야 말로 ‘그럼 진짜 보수는 무엇이냐’라는 얘기가 나올 차례라고 봤다”고 말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다른),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글항아리) 등이 번역된 로마사 권위자 메리 비어드도 노 기획위원이 발굴한 저자다. “해외에서 제작된 로마 관련 다큐멘터리만 보면 이 분이 등장해서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대체 누군가 싶어 찾아보니 서구에서는 책만 써냈다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최고의 로마사 전문가더군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말고 이 사람 책을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서 추천했지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을 널리 알린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 교수의 ‘예정된 전쟁’(세종서적)도 뿌듯한 책이다. 책 자체가 미국에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미ㆍ중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 기획위원은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앨리슨 교수의 메시지에 동감했기 때문에 연구팀이 온라인 사이트를 열고 연구 성과들을 하나 둘씩 올려둘 때부터 쭉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책 출간을 듣자마자 바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가독성ㆍ가치성ㆍ화제성 등에 별 5개를 주면서 보도성, 판매성 등에서는 좋은 점수는 주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 되자 전 일간지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헤엄쳐 나간다는 만족감은 최상이지만 아쉬움은 있다. “공치는 세월이 많아서” 생활이 불안정하다.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해 ‘될 만한’ 책 10여권을 골라낸다면, 본격적인 텍스트 확인 작업에 들어가면서 절반이 탈락한다. 나머지 절반 가운데 3권 안팎은 출판사측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판권가격 협상 문제 등으로 중단된다. 그러고 나면 성사되는 경우가 적게는 1권, 많으면 2~3권 정도다. 3할 타율이 채 안 되니 들이는 품에 비해 성과가 적다. 4곳 출판사에 기획위원으로 이름을 올려 활동비 명목으로 얼마 간의 정기적 수입을 받는 노 기획위원은 나은 편이다. “프리랜서 외서 기획위원들이 저 말고도 제법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개는 좋은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합니다. 시장의 힘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입니다.” 출판의 다양성 같은 가치를 생각해보면 남다른 책을 골라내는 ‘책 사냥꾼’은 없어선 안 되는 존재다.

노 기획위원의 바람은 엉덩이를 조금 더 가볍게 해보는 것이다. 하루에 10시간씩 작업하다 보니 힘에 부치는 면도 있고, 온라인으로만 책을 검토해보는 것과 직접 서점에 가서 책 실물을 만져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어서다. “온라인으로만 봐도 볼만한 책들이 쏙쏙 눈에 들어오는데 실제 가서 보면 얼마나 또 다르겠어요?” 베테랑 기획위원의 희망사항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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