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버려진 것들의 이름

버려진 나무 창문틀에 유리를 끼워 작은방 수납장 위에 잘 닦아 걸었습니다. 최고요 제공

새 물건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버려진 것들은 이상하게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누가 버린 물건들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였습니다. 복잡한 시내가 싫어서 이사했던 한적한 외곽 마을에서는 일정 요일이 되면 집집마다 버리는 물건들을 내놓았습니다. 버려지는 물건답지 않게 대부분 상태가 좋았고 종종 ‘무료이니 가져가라’는 친절한 쪽지가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햇살이 좋은 오후에 동네 산책을 즐기던 저는 그런 물건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 바구니, 알록달록한 담요, 이국적인 접시 같은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물건들이 ‘나 아직은 쓸 만하다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 손에는 이런저런 물건이 들려 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가끔은 옛날 토스터, 믹서기, 난로 같은 빈티지한 전자제품이나 근사한 나뭇결을 가진 가구들을 발견했습니다. 집에는 새것인 물건보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손때 탄 가구나 소품들이 많아졌고, 저는 그런 오래된 것들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생활이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도 오래된 것들, 그 중에서도 버려지기 아까운 오래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버려둔 물건들 앞에서는 걸음을 멈춥니다. 나무, 돌, 자개 같은 본래의 재료가 그대로인 물건들이나 곡선으로 가공한 옛날 문짝, 창문 등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쓰임이 다했을지 모르지만 혹시 내가 조금만 손보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몇 년 전에는 이태원 길거리에서 유리가 깨진 채 먼지 쌓인 나무 창문틀을 만났습니다. 가로가 약 50㎝, 세로는 30㎝ 정도의 크기로, 자세히 보니 틀 안쪽이 잔잔한 곡선으로 마무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이 좋아서 보자마자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동네 어귀에서 보았던 거울집이 생각나 창틀을 가지고 가서 여기에 거울을 끼우면 얼마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만 오천 원.” 거울집 주인 할아버지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럼 거울로 만들어주세요!”라고 외치듯 말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만든 거울은 작은방 수납장 위에 잘 닦아서 걸었습니다. 열쇠를 끼워 돌려서 잠그는 작은 열쇠 구멍이 있던 그 창문은 나무 천장과 검은 문틀을 가진 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거울이 된 창문과 침대 협탁이 된 부서진 꼬마 나무의자, 화장실 선반으로 쓰이고 있는 폐자재였던 편백 패널, 지금은 우리 집 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길가에 버려져 있던 바구니. 집에 있는 주운 물건들을 떠올려봅니다. 하나같이 오래된 것 특유의 결이 살아있습니다. 좀 투박해도 단단하고, 비싼 것은 아니어도 만듦새가 정성스럽습니다. 이런 물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버려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길가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다가도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꼭 본래의 용도가 아니라도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오래 쓰이면 그 편이 더 좋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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