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 해부, 약물 투여… 비윤리적 실험 관행화
동원 동물 매년 늘고, 연구진도 갈수록 스트레스
“진료 통한 실습 도입 등 대체 실험 확대돼야”
서울대 수의대 학생들이 수의임상실습용 개 모형으로 실습을 하고 있다. 서울대 수의대 황철용 교수 제공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는 돼지의 경정맥에서 채혈을 한다며 학생들이 돌아가며 목을 여러 번 찌릅니다. 돼지 목 혈관이 다 터지고 시퍼렇게 멍이 듭니다. 그리고 죽인 다음 해부를 하죠. 돼지가 죽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수의사 이모(39)씨는 수의대 재학 시절 필수 과목인 해부학 수업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살겠다고 “꽥꽥” 소리지르며 발버둥치는 새끼 돼지의 목을 주사기로 찌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불과 몇 분전까지 살아있던 돼지의 시체를 해부하며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씨는 “처음에는 모두 힘들어하지만 실습이 반복되다 보면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둔감해지는 데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며 “이런 동물실험ㆍ실습이 연구자나 수의사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만 300만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실험에 활용됐다. 그 수는 매해 증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실험동물 연 300만 마리… 연구자 스트레스도 증가

한 대학에서 생물의학을 전공한 김모(23)씨는 암 유전자와 분자생물학적 데이터 분석을 위해 쥐를 이용하는 실험을 하던 중 가장 불편한 순간을 겪었다. 태어나기 전의 쥐로부터 직접 추출해낸 세포를 얻기 위해 새끼를 밴 상태였던 어미 쥐를 해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쥐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약물을 투여하고 실험 후 경추탈골로 반복해서 쥐를 죽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동물 실험에 들어가기 전 어떤 동물 윤리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대학원에서는 실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로 전공을 바꿨다. 김씨는 “동물 실험이 질병 치료에 기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동물에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하는 것에 반대하고 불편해 했다”고 전했다.

오는 24일은 세계실험동물의 날이다. 연구과정에서 실험대상으로 쓰이는 동물들의 고통을 줄이고, 실험 자체를 줄여나가자는 목적으로 1979년 영국에서 처음 제정됐는데 이제는 이날 세계 곳곳에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험동물 현실은 반대다.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동원되는 동물은 매년 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최근 발표한 ‘2017년도 동물실험 및 실험동물 사용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ㆍ공립기관과 대학, 의료기관, 기업 등 351곳에서 총 308만2,259마리를 실험했다. 전년보다 7.1% 늘어난 수치로 바이오, 의약 분야 수요가 늘기 때문이라는 게 검역본부 측의 설명이다. 동물실험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따라 가장 낮은 A등급부터 가장 심한 E등급까지 5단계로 나뉘는데 절반이 넘는 66.5%가 D와 E 등급에 해당해 상당한 고통이 따르는 실험으로 확인됐다.

수의대의 지역적 특성이나 지도 교수의 재량에 따라 동물의 수나 종류는 다르지만 여전히 해부학이나 병리학 수업에서는 해부 실습이 행해진다. 의학, 생물학 분야에서도 유전자 변형을 비롯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막는 ‘유전자 녹아웃’, 약품이나 백신의 독성과 안전성 검증을 위해 쥐나 토끼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하지만 학생들뿐 아니라 일부 교수진들도 살아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실습을 진행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또 교육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 경우도 많아 가능하면 영상이나 모형, 대체실험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실험이 늘어나는 만큼 실험동물에 대한 관리는 강화되지 못하는 가운데 수의대의 경우 정규과목에 생명윤리 과정이 포함되어있지 않을 정도로 실험 연구자들에 대한 윤리교육 등이 허술하다는 데에 있다.

먼저 실험동물 대부분은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 되어 왔다. 실험이 끝난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동물들도 실험실 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실험동물 전문구조단체인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실험에 동원된 15만 마리의 개 가운데 21마리만이 구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지난해 말 동물실험이 끝난 후 정상적으로 회복된 동물을 일반인에게 분양하거나 기증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 이 개정됐다. 하지만 회복된 실험동물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또 얼마나 많은 실험기관들이 분양이나 기증에 참여할지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또 서울에 있는 수의대 2곳 모두 무허가 번식장 등 미등록 실험동물공급자로부터 개를 공급받아 연구와 실습에 활용할 정도로 연구 윤리가 떨어진 상황에서 학생들에 대해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실험동물의 고통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스트레스와 고뇌로 이어진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동물복지에 눈 뜨면서 동물실험에 대한 고뇌와 스트레스를 느끼는 실험연구자로부터 실험동물 구조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다”며 “실험 연구자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실험동물 관리와 윤리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수의사는 “동물실험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로 인력을 배출하는 수의대에서는 다뤄야 하는 동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워야 하는 곳”이라며 “무분별한 동물해부나 실험은 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만 안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가 지난 2014년부터 도입한 수의임상실습용 개 모형. 고가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개를 활용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서울대 수의대 황철용 교수 제공
모형 실습 등 불필요한 동물실험 대안 마련해야

국내 수의대에서도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해 모형을 도입하는 시도 등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서울대 수의대는 채혈 등 기본적인 실습도 실험동물 한 마리에 여러 번 실습하기를 꺼려한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보고 2014년 미국 레스큐크리터스의 수의임상실습용 개와 고양이 모형 등을 도입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개 중성화 모형을 도입해 실습에 활용했다. 생체와는 달라 실습효과가 의문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무한 반복 실습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서울대 수의대 피부과는 또 학생이나 교직원을 대상으로 피부병이 있는 반려동물을 모집해 실습 과정에서 직접 진료를 보는 과정을 도입하기도 했다. 매년 8마리 정도가 꾸준히 참가해 따로 학교에서 실습견을 둘 필요가 없어졌다.

황철용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아직 실습용 모형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한계가 있지만 모형실습 방법을 개발하고 확대하면 충분히 불필요한 실험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동물뿐 아니라 연구자들을 위해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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