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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잔치 오빠들의 브로맨스 “식성도 아픈 것도 닮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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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잔치 오빠들의 브로맨스 “식성도 아픈 것도 닮아가요”

입력
2018.04.21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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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문경은 감독-전희철 코치

대학시절 ‘오빠 부대’ 인기 라이벌

SK 18년 만의 챔프전 우승 합작

지도자 콤비 7년만에 승리의 열매

연대·고대 출신, 대표팀서 우정

‘모래알 팀’ 혹평 속 함께 뛰어

“성적보다 팀 하나로 만들기 노력”

SK 문경은(오른쪽) 감독과 전희철 코치가 20일 경기 용인의 구단 숙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섭 기자
SK 문경은(오른쪽) 감독과 전희철 코치가 20일 경기 용인의 구단 숙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섭 기자

1990년대 농구대잔치 추억에 젖은 팬이라면 서로 ‘으르렁’대는 라이벌 관계라고 오해하기 딱 좋지만 이런 ‘브로맨스’(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신조어)도 없다.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가다 보니 식성도 닮아가고, 걸리는 질병도 같다.

대학 시절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던 서울 SK의 문경은(47) 감독과 전희철(45) 코치는 지난 18일 눈물도 같이 흘렸다. 원주 DB와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7전4승제)에서 연거푸 2패를 당해 우승 꿈이 물거품 되는 듯 했지만 사상 최초로 2패 후 4연승의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문 감독은 애써 침착하게 명승부를 펼친 이상범(49) DB 감독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예의를 표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전 코치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모습에 문 감독도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2011~12시즌 감독대행과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과 끝없이 싸운 끝에 이뤄낸 반전드라마였다.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0일 경기 용인의 구단 숙소에서 만난 문 감독과 전 코치는 “선수 때보다 지도자로 정상에 오른 것이 더 기쁜 것 같다”며 웃었다. 문 감독은 “이상범 감독님과 경기 후 악수를 나눌 때부터 울컥했는데, 울고 있는 전 코치를 보니까 눈물이 났다”면서 “전 코치가 억울하고 분해서 우는 것은 봤어도 기뻐서 우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전 코치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 눈물이 잘 나온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연세대 시절의 문경은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세대 시절의 문경은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 감독과 전 코치는 현역 시절 각각 ‘람보 슈터’, ‘에어본’으로 불리며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연세대의 문 감독, 고려대의 전 코치는 코트에서 숙명의 맞수였지만 청소년 대표팀부터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각자 학교에서 보낸 시간보다 대표팀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오래 함께 뛴 팀 동료처럼 느껴졌다.

문 감독은 “대학 때만 빨간색(고려대)과 파란색(연세대)으로 달랐지, 워낙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우리가 다른 팀에서 뛰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 코치는 “상대 팀으로 만날 때는 치열하게 경기했지만 선수들끼리 잘 아는 사이라서 심판 몰래 선수를 치거나, 지저분한 플레이는 서로 하지 않고 깔끔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시절의 전희철 코치.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려대 시절의 전희철 코치. 한국일보 자료사진

둘은 나란히 1997년 프로에 와서 한 차례씩 우승을 맛 봤다. 문 감독은 2001년 서울 삼성에서, 전 코치는 2002년 대구 오리온스에서 정상에 섰다. 대학에 이어 프로에서도 각자 다른 팀으로 뛰던 둘은 2005년 서울 SK에서 마침내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은퇴 전 힘을 모아 한번 더 우승 꿈을 이루기 위해 불꽃을 태우려고 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 방성윤, 조상현, 임재현 등 초호화 라인업에도 SK는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혹평 속에 암흑기를 보냈다. 전 코치는 “그 때는 전력이 좋으니까 코칭스태프의 초점은 전략이나 전술에 맞춰졌다”며 “모래알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힘겨운 시기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지도자가 돼 성적보다 팀을 하나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고, 결국 이런 성과도 나왔다”고 했다.

지도자로 우승 꿈을 이룬 전 코치와 문 감독. 김지섭 기자
지도자로 우승 꿈을 이룬 전 코치와 문 감독. 김지섭 기자

2011년 지도자로도 첫 발을 내디뎌 하나의 목표로 7년간 달려오다 보니까 둘은 서로 닮아가는 것을 느꼈다. 전 코치는 “감독님이 원래 쌀국수나 고수를 못 먹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즐겨 먹는다”면서 “식성이 비슷해진 탓에 통풍도 같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문 감독은 “처음엔 컴퓨터 게임도 왜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전 코치 옆에 있다 보면 나도 따라 하게 된다. 어제 딸과 ‘배그’(배틀그라운드 게임의 줄임말)도 4시간이나 했다”고 고백했다.

용인=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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