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4세는 해당 부문에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팝업창에 뜬 문구를 보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다운 집을 가져보겠다고 서울시 행복주택 청약을 막 신청하려던 참이었다. 프리랜서인 탓에 근로소득 증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지난해 단편 드라마를 집필했던 경력으로 예술인 자격으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조건이 만 18세 이하, 만 40세 이상인 것을 반대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 치의 의심 없이 20~30대가 해당 연령인 줄 알았던 나는 허둥대다가 일단 일반 청년으로 지원을 하고 힘없이 홈페이지 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발표된 지원한 지역 청약 경쟁률은 25대 1이었다. 우리 세대를 ‘88만 원 세대’라고 부르던 시절인 10년 전의 유행어가 입안을 맴돌았다. 무려 행복할 수 있는 주택이라니, 난 안 될 거야, 아마.

행복주택을 일단 집다운 집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방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신혼부부가 아닌 청년 개인에게 할당된 방의 평균 넓이는 29㎡, 흔히들 말하는 평수로 9평이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행복주택 앞에 붙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무색하게도 청년 계층에게 제공되는 주택의 대부분은 서울의 맨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게 대부분이다. 월세가 시세보다 싸게 제공된다고는 하지만 목돈인 보증금도 부담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부동산을 전전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구할 수 있었던 기회가 멀어진 것에 미련을 털어내고 있는데 행복주택 청약에 지원했다는 말을 들은 친구가 물었다. “그 빈민 주택?”

빈민 주택은 또 무엇인가. 원래 이름은 청년 임대주택이다. 청년 임대주택을 지을 부지가 선정된 뒤, 인근 주민들이 이를 ‘빈민 임대아파트’라며 건설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청년들이 들어오면 ‘슬럼화’가 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말이다. 청년들이 지역경제에 활력을 준다면 모를까, 동네가 위험해진다니 얼핏 들어도 이상한 논리가 아닌가. 하지만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선 장노년층이 정의하는 청년에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이들은 바로 19㎡, 곧 5평 남짓한 방에 살게 될 가난한 청년이다. 본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부근에 이들이 살게 된다면 아파트값이 폭락하리라는 것이 청년 세대를 빈민으로 호명함에 일말의 주저함이 없는 일부 기성 세대가 염려하는 핵심 문제다. 대부분의 부동산을 소유한 세대가 한 사람이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겨우 일상을 영위할 만한 크기의 방을 치열하게 경쟁해서 얻어내야 하는 세대를 이토록 혐오하는 현실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다.

열심히 일하면 집 한 채는 가질 수 있었던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지금의 청년세대는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선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이 배우고도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된 청년들의 현재 상황에 부동산을 쥐고 있는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 청년들이 5평 방을 가지려고 줄을 설만큼 가난한 이유가 오직 세계적 경제위기나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만일까. 가난한 너희와 함께 살면 내 집 값이 떨어진다고 시위하는 이들에게, 대학가에서 원룸 임대료를 받아야 하는데 기숙사를 짓는다며 농성하는 이들에게, 10년을 쉬지 않고 일하며 살아왔지만, 방 한 칸을 빌리기 위해 25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청년인 나는 묻고 싶다. 청년들이 이렇게 가난한 것에 부모 세대의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방 한 칸을 빌릴 기회가 이토록 적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 또한 우리 세대의 피땀으로 살면서도 그로 인해 가난해진 우리들을 혐오하는 당신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미안해할 것은 기대조차 하지 않으니, 부끄러운 줄은 알기 바란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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