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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 없는 세 가지… 도살장, 동물원, 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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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 없는 세 가지… 도살장, 동물원, 농약

입력
2018.04.20 14: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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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도 풀어 주는 생명 중시

자연에서 얻어진 부탄의 행복지수

부탄의 두루미 보전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날개를 다친 어린 두루미 한 마리.
부탄의 두루미 보전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날개를 다친 어린 두루미 한 마리.

부탄에는 도살장과 동물원이 없다. 대신 가축의 행복과 야생동물의 자유가 있다. 부탄에 없는 또 하나는 농약이다. 모든 농사는 유기농으로 지어야 한다. 그 결과 생태계와 국민의 건강을 얻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해충은 어떻게 쫓는지, 농작물을 먹는 멧돼지가 밉지는 않은지. 한 농촌을 지날 때 할머니께 여쭤보니 이렇게 답했다. “곤충과 산짐승에게 기도를 하죠. 너무 많이 먹지는 말라고.” 논두렁처럼 아름다운 할머니의 주름살이 웃음으로 더 깊어졌다. 농담 같은 할머니의 말은 진담이었다.

부탄의 농민들은 멧돼지 잡는 올무를 놓지 않는다. 밀렵이 법으로 금지돼 있기도 하지만, 불교도인 국민들이 생명의 연결고리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명존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한번은 숲 속 리조트에서 묵는 동안 대형 바퀴벌레가 나와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벌레를 손으로 조심스레 잡아서 마당에 풀어주는 게 아닌가. 10대로 보이는 청소년 직원도 불(不) 살생이 몸에 배어 있는 모습에,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곰, 호랑이, 표범, 코끼리가 부탄에선 버젓이 살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길 낭떠러지 위 좁은 비포장 길을 몇 시간 아슬아슬하게 달리자 녹색 파도가 물결치는 광활한 평원, 폽치카 밸리가 펼쳐졌다. 두루미(Black-necked craneㆍ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검은목두루미(Common crane)와는 다른 종이다)의 겨울 서식지이다. 티베트에서 여름을 보낸 두루미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날아와 이곳 평원에 사뿐히 내려앉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갈 곳 없는 한국의 두루미들이 떠올랐다. 비무장지대(DMZ) 민간인출입통제선이 점점 북상하면서 두루미 서식지가 갈수록 좁아지는데, 멸종위기 Ⅰ급 두루미를 내쫓고 그 땅에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는 현실이다.

검은목두루미의 겨울 서식지인 부탄의 광활한 초원 '폽치카 밸리'.
검은목두루미의 겨울 서식지인 부탄의 광활한 초원 '폽치카 밸리'.

부탄의 절과 민가에 흔히 그려진 그림이 있다. 코끼리 위에 원숭이, 그 위에 토끼, 그 위에 새가 있고 그 옆에 나무가 있는 그림이다.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말하는 불교 철학을 그린 그림이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 근처의 작은 절 뒷마당에서 놀랍게도 산양과 표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을 발견했다. 그 위에 누군가가 쓴, ‘옴 마니 반메 훔’. 일체 중생의 깨달음과 행복을 비는 진언이다.

부탄이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사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부자 나라들을 연구해보니, 부는 소수에 집중되어 있고 대다수 서민들은 힘들게 살아가는 점, 개발로 인해 생태계와 국민이 병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새만금 간척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난개발 대신, 생명의 그물망을 돌보는 정부와 의회를 우리는 언제쯤 갖게 될까. 부탄은 자연을 지키는 문명을 선택했고 그 결과 행복의 나라, 세계의 로망이 되었다. 그 많던 개구리, 제비도 보이지 않고 미세먼지만 가득한 봄날에 부탄의 지혜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옴 마니 반메 훔.

글ㆍ사진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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