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14대 후손 '윌로우' ... 대 끊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16년 1월 90세 생일을 기념해 미국 연예잡지 ‘배너티 페어’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여왕 무릎에 앉아 있는 강아지가 2016년 세상을 떠난 웰시코기 견종의 홀리(Holly), 발 밑에 왼쪽부터 차례로 앉아 있는 윌로우(Willow), 캔디(Candy), 벌컨(Vulcan)의 모습. 캔디와 벌컨은 닥스훈트와 웰시코기가 혼합된 견종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73년 반려견 코기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버킹엄 궁=AP

올해 92세를 맞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최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일생을 함께 한 반려견 웰시코기의 마지막 후손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반려견 윌로우(Willow)의 죽음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듯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왕에게 반려견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영혼의 단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웰시코기의 인연은 여왕의 부친 조지 6세가 1944년 당시 공주였던 ‘릴리벳(어린 시절 엘리자베스 여왕을 가족들이 부르던 이름)’의 18번째 생일날 웰시코기 견종 ‘수잔(Susan)’을 선물하면서 시작된다. 10살부터 엄격한 후계자 교육을 받아왔던 릴리벳에게 수잔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휴식처였다. 1947년 에딘버러 필립공과 결혼한 뒤 신혼여행지인 지중해 몰타섬에도 데리고 갈 정도였다.

릴리벳은 1952년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25살 나이에 영국연방의 수장으로 등극한다. 자연스레 웰시코기도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로얄 도그(Royal Dog)’ 가 됐다. 여왕이 국가원수로 재임 동안 지금까지 수잔의 혈통을 이어 받은 30 마리의 ‘왕실 견’들이 명맥을 지켜왔다. 이번에 세상을 떠난 윌로우는 수잔의 14대 후손이었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왕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여왕이 윌로우의 죽음으로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왕실견들의 위상은 남달랐다. 비싼 카펫이나 가구에 소변을 봐도 혼나지 않았고, 왕실 직원들은 늘 소변 탈취제와 용변봉투를 소지하고 다닌다고 알려졌다. NYT에 따르면 왕실에서 일하던 직원이 개밥에 위스키와 진을 장난으로 섞었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 당장 개들끼리의 싸움을 말리다가 여왕이 왼쪽 손을 물린 적도 있지만 여왕은 개들을 내치지 않았다. 심지어 손자인 윌리엄, 해리 왕자가 TV 인터뷰에 나와 “개들이 하루 종일 짖어 괴롭다”고 불평했지만 소용 없었다.

왕실견들은 여왕뿐 아니라 영국 국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홍보 영상에서 영화 ‘제임스 본드’의 주연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버킹엄 궁에서부터 여왕을 에스코트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마리의 웰시코기들이 나란히 호위하는 모습이 따로 들어갔을 정도다. 이때 윌로우도 함께 촬영을 했다.

그러나 이제 윌로우를 끝으로 왕실에서 웰시코기는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여왕이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왕실 견’이 남겨지는 것을 슬퍼해 2015년부터 후손을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왕실에서 웰시코기가 처음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이미 여왕은 자신의 마지막을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BBC 방송은 영국 연방 국가들이 고위 그룹을 비밀리에 따로 꾸려, 후계자 문제 등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시 일어날 일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엘리자베스 2세의 코기들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특별 제작한 영상 속에도 여왕과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등장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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