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 ‘레토’로 칸 경쟁부문 레드카펫 밟는 한국 배우 유태오

러 영화 ‘레토’ 서 빅토르 최 役
2000대 1 경쟁률 뚫고 따내
美ㆍ베트남 영화에도 출연 이력
“러 정부, 반정부 성향 문제 삼아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가택연금
칸 함께 갈 수 있게 관심 가져주길”
러시아 영화 ‘레토’의 주연배우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배우 유태오는 “지난 10년간 어떤 촬영장에서든 내 몫을 해내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다음달 열리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최고상) 트로피를 두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 다투는 경쟁작들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러시아 영화가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ㆍ여름)’다. 옛 소련 시절 체제 저항의 상징이었던 한국계 록스타 빅토르 최(1962~1990)의 청년기를 그린 영화라는 사실과 함께 주인공 빅토르 최를 연기한 낯선 한국 배우 유태오(37)가 단숨에 화제에 올랐다. 1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마주한 유태오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을 듣고 사흘간 얼떨떨했다”며 “감사하게도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태오는 2,000대 1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 역할을 따냈다. 단순한 운은 아니다.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연기를 공부한 그는 2009년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해 10년 가까이 연기를 해 왔다. 영화 ‘자칼이 온다’(2012)와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2’(2016) 등에 출연했고, 미국 독립영화 ‘서울 서칭’(2015),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2015)에도 비중 있게 나왔다. 베트남 영화 ‘비트코인을 잡아라’(2016)와 태국 영화 ‘더 모멘트’(2017)에서도 연기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이 쓴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국경을 넘나들고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아우르는 필모그래피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레토’도 그렇게 만났다. “제가 재외동포이다 보니 유럽 문화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루벤스가 그린 초상화 ‘한복을 입은 남자’부터 백남준, 빅토르 최, 차범근 등 유럽에서 활동한 한국인에 대해 조사해 보곤 했죠.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하나안’을 보고 박루슬란 감독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친분을 쌓은 박루슬란 감독에게서 어느 날 ‘레토’ 주연배우를 추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얘기를 김정환 감독(‘티끌모아 로맨스’)에게 전했더니 ‘네가 도전해 봐’라고 하는 거예요.”

유태오는 동화작가라는 이색 경력도 갖고 있다. 독일에서 성장한 자신의 유년기 상상을 시로 썼고, 그 시에 그림을 더해 ‘양말괴물 테오’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주성 기자

그는 기타로 자작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제작사에 보냈다. 곧바로 제작사가 그를 모스크바로 불렀다. “빅토르 최는 야성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저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멜랑콜리’한 감성을 느꼈어요. 감독님이 저의 해석을 흡족해하신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뒤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한국인 캐스팅을 고집했다. 어려 보이는 외모와 풍부한 연기 경험도 요구했다. 뮤지션 역할인 만큼 음악적 표현력도 눈여겨봤다. 유태오가 딱 들어맞았다. “그동안 제가 쌓아 온 모든 경험이 이 순간을 위한 연습이었던 게 아닐까 싶더군요.”

유태오는 촬영 3주 앞두고 러시아로 건너갔다. 시간표를 짜서 온종일 러시아어 대사를 외우고, 빅토르 최의 노래를 익혔다. 영화는 빅토르 최의 밴드 키노가 첫 앨범을 낸 1981년 여름을 배경으로, 빅토르 최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와 자유를 향한 꿈을 그린다. “빅토르 최가 사랑했던 나타샤라는 분이 촬영장에 오신 적이 있어요. 저를 가볍게 안아 주시면서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난다’고 하셨죠. 그제야 압박감이 스르르 녹아 내리더라고요.”

지금 세계 영화계는 ‘레토’에 주목하고 있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촬영 막바지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 가택 연금됐기 때문이다. 사유는 극장 운영 자금 횡령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반정부적 작품 성향이 문제가 됐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태오는 “당시엔 목이 잘린 닭이 된 듯 무섭고 힘들었다”며 “칸영화제에 감독님과 꼭 함께 갈 수 있도록 영화 팬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유태오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 정서가 그를 이끌었다. 더 넓은 무대를 두고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다. “한국에서는 저에게 ‘재외동포 출신’이란 수식을 붙이지만, 해외에선 그냥 ‘한국 배우’로 인식해요. 한국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묵묵하게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국인이라는 건 저에게 큰 자부심이에요. 1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고생도 했지만, 그렇게 쌓인 경험과 감정들이 저만의 자산이 될 거라 믿어요. 연기를 그만두라면서 늘 걱정하신 부모님께도 꼭 인정 받고 싶습니다.” 다부지고 힘차던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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