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내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개성공단 재가동을 희망하는 시민들의 메시지를 모아 전시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이나 세월호 참사처럼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떠들썩하지는 않다. 하지만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생각할수록 뜨악한 사건이다. 그 이전 달(2016년 1월)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폐쇄 직전에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긴 했지만, 착공 이후 12년 동안 남북경협의 성공모델로 안착한 개성공단을 우리 정부가 나서 전면 폐쇄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의 지적처럼 의사결정 과정도 문제투성이였다. 북한으로 들어간 현금이 핵ㆍ미사일 고도화에 쓰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폐쇄명분은 근거도 명확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 2094호 위반을 자인한 자기모순의 극치였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선도해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게 당시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도 북한은 두 차례 핵실험을 감행, 결과적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굳혔다. ‘채찍을 휘두르면 북한이 두 손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보수정권의 기대는 즉흥적이면서도 안이했고, 정부 정책을 믿고 합법적인 생산활동을 하던 124개 기업, 협력업체 5,000여 곳은 느닷없는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2개월이 흘렀다.

다음주면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다음달쯤 북미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마주 앉는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직원을 줄이고 대체 생산기지를 알아보면서도 이제나저제나 공단 재 가동을 고대해 온 기업인들에게는 모처럼의 화신(花信)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대압박이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냈다”고 틈만 나면 자랑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북한의 행동변화 없이 공단 재개는 실수”(코리 가드너 상원의원ㆍ4월 16일)라는 공화당 주류의원들의 냉소적 태도를 감안하면 그렇다. ‘여건 조성 시’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국정계획을 제시한 문재인 정부조차 신중론이다. 제재가 있건 없건 핵ㆍ미사일 고도화에만 몰두했던 북한의 태도에 질려버린 국민들에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개성공단은 북한정권의 달러박스’ 같은 구호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우리 정부와 민간이 12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한 개성공단은, 아쉽지만 손을 털고 나와야 할 프로젝트일까.

그 판단은 당근을 줘서 채찍 사용을 피하겠다는 진보정권이건, 채찍을 휘둘러 성과가 있으면 당근을 제공하겠다는 보수정권이건 자신들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는 북한의 시장화를 지원하고, 한국경제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합의하는 데서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자존심 강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대북 특사단을 만나 “우리는 가난한 나라”라고 발언했다는 외신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아버지 김정일이 군사강국화로 통치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김정은은 경제강국을 자신의 브랜드로 삼겠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불만처럼 개성공단이 핵 무장을 막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북한에 친 시장적 제도이식의 ‘씨앗’이 됐다는 점도 명백하다. 단순한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개성공단을 운영하면서 우리 측은 북한에 회계제도를 가르쳤고, 세금(법인세)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시켰고, 자본주의의 핵심인 소유권(토지이용권)의 작동 메커니즘을 알렸다.(이종태‘햇볕 장마당 법치’)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가 허송세월 하는 사이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찬 한반도 관여정책’(김병로 서울대 평화연구원 교수)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족동질성의 회복 같은 민족서사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개성공단을 남북이 모두 방치해버린 미아로 만들어 버리는 게 현명한 일일까.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왕구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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