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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뉴스] 아이디어만 빼가는 고객사 갑질에 웁니다

입력
2018.04.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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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을’들을 향한 무자비한 갑질 행태는 광고계에서 더욱 횡행합니다. 대기업의 광고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중소 광고 대행사들은 수백만 원의 돈을 들이지만, 가까스로 경쟁 입찰을 통과해도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받기 일쑤랍니다. 이미 제출한 기획안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하는 것도 예삿일. 업계에서 ‘찍힐까’ 무서워 법정다툼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데요. 한국일보가 이들의 사정을 정리해봤습니다.

제작 : 박지윤 기자

원문 : 손영하 기자

광고대행사 T사에서 근무하는 조모(46)씨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유아용품 매장을 지날 때면 쓰린 속을 애써 달랩니다. 한창 잘 나가는 유아용품 Z사의 한 상품 광고 문구가 매장마다 걸려 있기 때문인데요. 거기엔 남 모를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2016년 Z사가 진행한 제품 홍보·마케팅 공개입찰에 참여했어요. 광고 문구며 아이디어를 구상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했죠." 피땀 어린 노력 덕인지 조씨 회사의 기획안이 채택됐습니다. 

"그런데 Z사는 본계약을 앞두고 미적거렸어요. “기다리라”고만할 뿐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에 다른 광고대행사가 일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직접 찾아가서 항의를 했더니 기존 담당자가 퇴사해서 업체도 바꾸기로 했다는 거예요." 공들인 시간들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더욱 기 막혔던 건 진행되는 내용이 조씨 회사가 냈던 아이디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 사실상 '먹튀'와 다름없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인 A사 사람들 역시 최근 조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돌연 "안 되겠다"며 회사가 남긴 말은... "계약 성사 이전이니 돈은 줄 수 없다." 직원 십 수명이 무려 7개월간 매달린 일이었습니다. 

광고나 제품 디자인 제작 등을 대행하는 중소업체들이 고객사의 ‘갑(甲)질’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경쟁 입찰을 통과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지만 고객사의 변덕 갑질에 프로젝트 취소를 당하기 일쑤. 

"당신 업체랑 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과정은 ‘없던 일’이 됩니다.  부당함을 따져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몇 주간 밤새워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백만 원 이상 돈을 들여봤자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것. 부당함을 따져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탈락한 업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고객사가 마음대로 도용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 날강도가 따로 없지만 절대'을'인 대행사들은 별다른 대응을 못한 채 속앓이만 할 뿐이죠...  “다수 업체로부터 광고전략 프레젠테이션을 받은 뒤, 아이디어들을 조합해 광고를 만들어요." "가장 적은 금액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고 다른 경쟁 업체 전략을 줘서 일을 진행하기도 하죠” 광고대행사 A사 대표 고모(49)씨 

법적 조치를 고려해보다가도 금세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괜히 문제제기를 했다 고객사에 ‘찍힐까 봐’ 그냥 넘어가야 할 때가 많죠.” 광고대행사 직원 허모(36)씨

법정다툼은 길게는 몇 년씩 걸리는 걸립니다. 워낙 도용이 교묘하게 이뤄져 법원에서 인정받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조씨가 다니는 T사 역시 Z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긴 했지만, 승소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제안서를 요청할 때부터 프로젝트를 언제부터 시작할지, 대행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 할지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 표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기석 한국디지털기업협회장

도 넘은 고객사의 아이디어 먹튀 갑질, 오늘도 중소 대행사들의 눈물은 그치질 않습니다.

원문: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제작: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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