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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녹색성장의 역설, 폐비닐 대란

입력
2018.04.17 18: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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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된 폐비닐 중 많게는 90%가 고형연료(Solid Refused Fuel, SRF)로 재활용된다. 가연성 폐기물을 땔감으로 만드는 고형연료화는 참여정부 때 시작돼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산업으로 크게 번창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263곳의 SRF 사업체가 연간 135만 톤을 생산해 열병합발전소 등 152개 시설에 공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엔 사업장 폐기물까지 SRF 대상이 되었지만 유해성 논란이 일었다. 새 정부 들어 미세먼지 등의 우려로 SRF 규제가 대폭 강화됐다. SRF의 사업성 악화로 휴업과 조업중단이 속출하면서 업체마다 폐비닐이 쌓이고 있다. 여기에 재생 폐기물의 대중국 수출마저 막히자 민간업자들은 폐비닐 수거를 급기야 거부하고 있다.

혹자는 환경정책의 변덕이 폐비닐 대란을 불러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 시점의 규제 강화는 불가피하다. SRF의 과잉이 가연성 폐기물 발생량 증가와 소각에 따른 환경위해 증가라는 구조적인 환경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SRF의 본격적인 장려는 ‘폐자원의 에너지화’라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구호에서 나왔다. 태워 없애기보다 연료로 사용해 에너지로 회수하는 게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녹색성장 논리에 들어맞았던 것이다. SRF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는 박근혜 정부 때엔 SRF를 재생가능 에너지로까지 대접받도록 했다. 폐기물의 단순 소각임에도 친환경적 에너지 사용으로까지 포장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높은 폐기물 재활용률(83%)은 녹색성장을 성공모델로 알리는 징표의 하나가 되었다.

환경과 경제의 상생은 녹색성장의 기본원리다. 쓰레기를 돈이 되게 함으로써 환경문제도 잡고 소득 창출도 가능케 하는 SRF는 녹색성장형 폐기물 처리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환경문제는 시장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공공이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아무리 많이 배출되어도 민간업자가 알아서 수거해 재활용하거나 소각하니 정부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여기엔 깊은 역설이 개입한다. 시장논리에 따른 재활용은 폐기물을 돈이 되는 재화로 둔갑시키고, 이를 통한 수익추구는 폐기물 배출량의 지속적 증가를 초래한다. 여기에 더해 에너지 회수란 이름으로 가린 소각의 과잉은 에너지의 불필요한 낭비와 유해노폐물 배출의 지속적 증가로 이어진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물질순환이 환경문제를 기실 더 악화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

한국의 녹색성장은 하면 할수록 환경(가치)이 훼손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제본스의 패러독스’라 부른다. 가령, 에너지 효율적인 기기와 시설을 사용하면 활동 단위당 투입되는 에너지 투입량이 줄고 폐기물도 줄어들어 환경친화적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다는 이유로 더 많은 기기와 시설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총사용량이 더 늘고, 는 만큼 폐기물도 더 많이 배출된다는 사실이다. 환경은 결국 더 나빠진다. 환경가치를 경제논리에 철저히 예속시킨 대가다.

녹색성장 속에서 폐기물이라는 환경문제가 경제논리에 따른 물질순환으로 포장하여 해결되는 듯 했지만 기실 이면에선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가 더 늘고 폐기물량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16년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으로 세계최고 수준이다. 국민 한 사람이 매년 420개의 비닐봉지를 쓴다. 핀란드의 100배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다. 높은 재활용률에 도취돼 우리는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고 소비 방식을 바꾸는 것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명박 정부가 ‘에코 홈 100만호 공급’이란 이름으로 에너지 효율성 높은 신규주택건설 정책을 펼 때,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같은 이름(에코 홈)으로 사람과 가정의 녹색화(소비절약, 재활용, 자연보호 등)가 운동이 전개되었다. 어떤 것이 진정한 녹색가치를 실현하는 길일까?

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ㆍ단국대 도시계획 부동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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