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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여, 딸 바보 말고 빠미니스트가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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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여, 딸 바보 말고 빠미니스트가 되시라

입력
2018.04.1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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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페미니즘'을 낸 열아홉 살 유진 작가. 페미니스트 아빠 J를 통해 아빠와 딸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는 게 소원이다. 책구경 제공
'아빠의 페미니즘'을 낸 열아홉 살 유진 작가. 페미니스트 아빠 J를 통해 아빠와 딸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는 게 소원이다. 책구경 제공

가부장적 사회의 과도기 아빠 J

‘대 잇는다’ 망상들까 둘째도 포기

딸에게 니킥과 드릴 사용법 가르쳐

아빠가 그저 딸을 귀여워만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연약한 존재 돼

주위에서 똑똑하다 칭찬하다가도

“그래도 막상 며느리로는 싫어…”

페미니즘 백안시 이중 잣대 여전

“그런 평가를 받을 때면 너무 감사해요.” 하이톤 콧소리다. 고등학생 혹은 대학 초년생들이 발산하는, 발랄한 ‘까르르르’ 웃음 소리까지 곁들였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감정을 잘 조율한 책의 만듦새나 문장으로 봤을 때 나이 깨나 있는, 제법 노련한 여성을 떠올렸다. 그런데 책 날개엔 저자가 ‘1999년생’이란다. “첫 책을 냈을 땐 ‘애치고는 잘 썼다’였는데 이번 책은 ‘이제 좀 작가 같다’는 말을 들은 게 제일 기쁘다”고 했다.

책 제목은 ‘아빠의 페미니즘’. 검은 표지 한가운데 떡 하니 붙은, 거울처럼 보이는 은박은 누가 봐도 ‘미러링’(누군가의 폭력적인 언행을 거울로 반사하듯 재현해 해당 언행의 문제성을 부각시키는 행위)을 의미한다. 이번엔 또 어떤 욕을 할까 펼쳐 보면 의외다. 작가 본인 이야기도 녹아 있지만, 뼈대는 아버지 J와의 대화다. J가 딸에게 수시로 했다는 말은 이렇다.

‘손자’ 바라는 집안에서 외동딸을 키운 J는 “나와 너의 엄마는 혹시라도 아들을 낳으면 그 애가 너의 존재를 망각시키고 장남이 되어 버릴까 봐, 대를 잇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힐까 봐, 둘째를 낳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수십 년 동안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아 온 남성이다. 나는 나의 아들을 가해자로 키우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속옷, 양말 척척 찾아 입는 J를 신기하게 여기자 “바보냐, 지 빤스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게? 양말은 벗어서 왜 아무데나 던져. (중략) 권력이 폭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무의식에 각인된 결과야”라고 말한다.

자식이 귀해진 요즘, 딸바보의 시대라 한다. 그런데 딸바보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책구경 제공
자식이 귀해진 요즘, 딸바보의 시대라 한다. 그런데 딸바보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책구경 제공

부모와 자식은 1년에 한번만 만나야 하며 하릴없는 부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을 망친다고 주장하는 J는 “만약 내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거든, 그 즉시 나에게 멀어져라. 한 번뿐인 인생을 부모에게 저당 잡혀 살지 마라”고 했다. J는 또 딸에게 니킥과 드릴 사용법을 가르쳤다. 잘못했을 때는 애교와 눈물 대신 정중한 사과를 하라고 일러 줬다.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란 “스스로 약자가 되려고 할 때”라고 했다.

이런 J의 가르침을 받은 유진은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집에서 따로 공부하면서 ‘스물셋 독립’을 목표로 ‘10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지드래곤을 읽다’ ‘책구경’ 등 이미 두 권의 책을 썼다. 두 번째 책이름을 딴 출판사 ‘책구경’에서 낸 ‘아빠의 페미니즘’은 자신의 출판사에서 낸 첫 책이다. 글, 디자인 등 모두 혼자 했다. 열아홉, 독립 시동을 걸었다.

-이런 아버지가 실존하나. 요즘 말로 이거야 말로 ‘실화냐’다.

“100% 실화다. 난 오히려 자신들도 분명히 불편하고 힘든 일일 텐데 J만큼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하는 다른 어른들이 더 이상하다.”

-옳은 말 하는 건 쉽다. 그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게 놀랍다.

“부모님은 전적으로 내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주고, 응원해 줬다.”

-내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다는 걸 언제 느꼈나.

“전혀. 난 어릴 적부터 내내 그렇게 커왔기 때문에 한 번도 이상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좀 커서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내가 좀 다른 말들을 들으면서 자랐구나라는 걸 알았다.”

-옳다, 동의한다를 떠나 사회는 그대로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을까.

“그런 점도 있을 것 같다. 저보고 ‘예쁘다, 똑똑하다’ 칭찬해 주시던 다른 부모님들도 ‘며느리로는 싫다’거나 ‘우리 애가 학교 안 다니는 건 싫다’고 하신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우리끼리 ‘우리 팔자는 왜 이렇게 꼬였냐’, ‘우리 가족 인생이 꼬인 건 다 아빠 때문이다’, ‘아니다 너 때문이다’ 이러면서 웃는다.”

-이 책은 어떻게 쓰게 됐는가. 서문에 보면 J가 자신의 얘기가 책으로 묶이는 걸 격렬하게 저항(?)했다.

“요즘 화두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페미니즘에도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J의 삶을 기록해 보여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딸 바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긍정적 작용을 한다고 보지 않는다. 딸을 위한 아빠, 딸을 귀여워하는 아빠인데 어쩌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딸을 키운다는 말 같다. 그 이상을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홀로, 한 사람으로서 딸이 제 역할을 하고 바로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독립이다. 경제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그러기 위해선 출판사가 잘 돼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것들, 우리 고전에 대한 것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읽어 나가는 이슈 파이팅하는 글들을 앞으로 계속 쓰고 찾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버지가 궁금하다.

“절대 찾지 마시라. 거짓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J는 내가 만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시선 분산되는 건 싫다. 난 내가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누가 읽었으면 좋겠나.

“딸이 먼저 읽고 아빠에게 권하고, 그래서 딸과 아빠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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