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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기초 지력’과 평생학습 시대

입력
2018.04.16 18: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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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三味)’라는 말이 있다. 세 가지 맛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중국에선 근대 중국의 큰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이 유년 시절에 다녔던 서당 이름, 곧 ‘삼미서옥(三味書屋)’을 통해 제법 알려져 있는 표현이다.

서당 이름으로 쓰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삼미는 독서와 깊이 연관된 말이다. 근대 이전, 지식인이라면 응당 사서오경으로 대변되는 경서와 ‘사기’ ‘한서’ 등의 역사서, 그리고 ‘노자’ ‘한비자’ 같은 제자백가서를 익혀야 했다. 삼미는 이들을 읽을 때 느낌을 순서대로 밥, 채소 반찬, 젓갈을 먹을 때의 느낌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밥, 채소 반찬, 젓갈은 식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다. 채소 반찬이라고 해서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나물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젓갈도 간장이나 식초같이 기본적인 것을 가리킨다. 자못 팍팍한 살림의 평민층도 매끼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고기와 생선 반찬을 늘 먹는다고 하여 멀리할 수 있는 바도 아니다. 신분 고하, 살림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이들 음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곧 삼미는 밥과 채소 반찬, 젓갈이 사람에게 그러한 것처럼 경전과 역사서, 제자백가서도 사람에겐 기본 중의 기본이란 통찰이 담긴 표현이다.

이런 비유가 먹혔던 까닭은 경전과 역사서, 제자백가서가 ‘기초 지력(智力)’을 길러주기 때문이었다. 밥, 채소 같은 주식(主食)이 기초 체력을 갖춰주듯이 이들의 공부를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고 국가사회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온갖 앎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기초체력이 갖춰져야 삶의 유지에 필요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기초체력이 그저 체육 활동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예컨대 노동 같이 일상을 꾸려가는 모든 활동에 필요한 것처럼, 기초 지력도 전문적 지식을 익히는 데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역량이란 것이다.

전근대시기 중국에서나 그러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사물인터넷(IoT) 등 삶터가 온통 ‘스마트’한 첨단기술로 켜켜이 연결되고 있는 지금도 사정은 매일반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일상 차원서 폭 넓고 속 깊게 전개될수록 ‘평생학습’의 필요성이 더 한층 커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우리는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기초 지력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다음 두 차원에서는 분명하게 그렇다.

첫째, 지식 기반 사회가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지식은 사람을 인간답게 해주는 핵심의 하나였다. 그러나 늦어도 지난 세기말부터 지식은 인간다움의 고갱이보다는 이윤 창출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큰 학문 연마보다는 스펙 쌓기가 중시되고 사회 진출 후에도 끈질기게 자기계발이 요청되고 있듯이, 개인 차원에서도 지식이 생계의 미더운 자산이 된 지 꽤 됐다. 이제 지식을 익히는 일은 전통적 의미의 공부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밑천을 획득하는 활동이 되었다.

둘째는 갈수록 똑똑해지는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세계 초일류 바둑기사를 연파한 후 더는 사람을 대적할 이유가 없다며 은퇴해도, 의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1분 내 90%에 가까운 정확도를 구현해도, 또 인공지능 변호사가 국내 10위권 대형 로펌에 고용되어 민완 변호사 몇 명이 며칠 또는 몇 달간 해야 했던 일을 20~30초 만에 해치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예견한다. 분명 일리 있는 판단이다. 그런데 이때 인공지능과 비교되는 인간은 지적, 인격적 역량을 상당한 수준에서 두루 갖춘 수준의 인간임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낮잡아 봄이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갈 때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지적, 인격적 역량을 두루 갖춘 수준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사람처럼 두루 잘하지는 못해도 인공지능은 지금 수준에서도 이미 우리 인간의 유력한 경쟁자가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공지능을 어서 타도하자는 말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협업한다면 더 나은 삶과 사회의 창출이 수월해질 것임은 분명하기에 적어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평생학습을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진화를 멈추고 있지 않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고령시대가 임박해 있다. 평생직장 패러다임이 붕괴된 지 자못 됐고, 사회 진출 후 첫 직업으로 평생의 삶을 지탱하는 시절도 지나갔다. 제2, 제3의 직업을 가질 수 있거나 아니면 ‘평생 직업’이 가능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원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기초 지력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강도로 요구되는 평생학습의 시대, 그 한복판에 놓여 있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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