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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원회는 견제 기능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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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원회는 견제 기능으로 족하다

입력
2018.04.15 20:3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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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 사법처리 여부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올렸고, 이 위원회는 13일 구속기소로 결론을 냈다. 수사심의위는 교수 변호사 시민운동가 등 외부인사로 구성돼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 사건 절차나 결과를 검찰에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안 전 검사장은 2010년 서 검사를 추행하고, 이 문제가 검찰 내에서 불거지자 검찰국장으로 있던 2014년 부당한 사무감사에 개입하고, 이듬해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결정을 받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면 지난 1월29일 서 검사가 미투운동을 촉발한 지 석 달 만에 사법처리 결정을 내리는 셈이다. 그 과정에 서 검사가 정권 출범 후 박상기 법무장관에 이메일로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무시됐다는 의혹과, 여기에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조사단 단장을 맡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의 자격 시비까지 불거져 안 전 지검장 처리 문제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보강 지시가 이어지는 등 장고가 거듭되고 수사심의위에 사실상의 결정을 맡긴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심의위가 검찰의 사법처리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라고는 하나 법적 결론을 둘러싼 책임 소재가 흐려지는 문제는 물론이고 엄밀하게는 권한 충돌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헌법이 보장하는 검사의 기소독점과 영장청구 권한은 고도의 전문성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권 내내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검찰의 권한남용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치됐으나, 검찰의 책임 회피나 희석, 나아가 편의주의의 한 수단이 될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4시간 격론 끝에 정한 수사심의위 위원들의 결론이 사건의 증거나 관련자 진술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검증 작업을 거쳐 나왔는지, 수사검사의 사건 집중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수사심의위라는 게 시민이 배심원 역할을 하며 유ㆍ무죄를 따지는 법원의 국민 참여재판제와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국민 참여재판제 여부에 대해 선택권을 주고 있다.

이런 논쟁점들을 감안하면 수사심의위원회가 검찰의 사법처리 방향에 대해 보충 수사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견제 기구적인 성격이라면 모르겠으나, 사법처리 결정기구 성격을 띠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형사사건은 당연히 증거에 입각해야 하고, 증거나 진술이 말하는 바와 달리 검사가 정치적 입김, 여론 등 외적 요인에 치우쳐 인신구속 등 사법처리 방향을 정할 경우 영장이나 재판 과정에 하자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인사상 불이익 등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이 없는 수사심의위원회가 결정 기능을 함으로써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문제는 권한남용만큼이나 심각하게 볼 사안이다.

보수정권에서는 일방주의적 정책이나 정권 입김에 맞는 방향 설정이 비판의 대상이 됐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위원회, 자문기구 기능과 권한이 과대해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숙의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원자력 정책의 방향 전환도 그러하거니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된 대학입시 개편안의 최종 결정이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넘겨진 것 또한 전문성 시비나 책임 회피 등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종합적인 판단에 따른 고도의 정치 행위인 대통령의 공직자 임면 권한의 일부가 판단 영역의 범위밖에 있는 것일 수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손에 놓여진 일 또한 그렇다.

동서를 막론하고 위원회라는 조직은 그다지 호평을 받진 못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위원회라는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일컬어 ‘사회적 무책임의 원리’라는 말로 평한 바 있다. 정책의 책임성과 책임정치 면에서도 위원회나 자문기구는 정부 정책에 대한 견제 기능만으로 족하다. 더군다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을 받거나, 담보되기 어려운 우리 실정에서는 더 그렇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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