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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15년 전 이라크전에서 얻은 교훈

입력
2018.04.15 16:4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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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가장 비극적 사건 중 하나인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15년이 됐다. 2001년 9월11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는 선언과 함께 “러시아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될 것”이라고까지 예측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은 그 전망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이라크전은 현 중동 문제의 시발점이자 냉전 이후 미국 헤게모니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그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포장됐지만, 침공의 토대는 9ㆍ11 이전부터 진행돼 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1998년 1월초 신보수주의 진영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2000년 집권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최우선 안보 순위 중 하나라고 선언했고, 필연적으로 PNAC 발기인 25명 중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10명이 부시 행정부에 합류했다.

부시 행정부는 결정적 증거가 없음에도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아이디어’를 알리는데 집착했다. 2002년 9월 럼스펠드는 당시 기밀문서 보고서를 받았다. 그 보고서에는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프로그램 현황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해 우리는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 한스 블릭스 위원장이 권고했듯 미국이 더 많은 주의와 엄격한 행동을 취했더라면 중동은 많은 고통을 면했을 것이다. 2003년 5월 부시는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탑승,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고 쓰여진 현수막 앞에서 연설했다. 그러나 그 임무가 테러로부터 이라크를 해방하여 국가를 재건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었다면 절대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심각하게 오도(誤導)된 정책이었지만, 이라크와 다른 지역을 삼켜버린 혼돈은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제거한 이후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저지른 추가적 실수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의 흔적을 모두 없애려는 부시 행정부의 ‘탈바트’ 정책이다. 이라크는 시아파가 대다수인 국가지만 사담의 정치기구는 수니파가 주도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이슬람화 시기에 깊은 종교적 신념을 얻었다. 재건 과정에서 배제된 많은 수니파는 과격한 전투적 종파주의로 전향했다.

탈바트 정책은 이라크 군대의 해체로 이어졌다. 갑자기 수입과 신분을 빼앗긴 수 천명의 군인이 이슬람국가(ISIS)의 선구자인 이라크 내 알 카에다가 이끄는 초기 수니파 극단주의인 살라피스트 저항세력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전직 바트 당원 일부는 학대가 횡행했던 미국의 억류센터에 수감됐다. 이라크 남동부의 캠프 부카 같은 억류센터에 수감돼 있는 동안 전직 바트당원과 살라피스트들은 서로 섞였고, 바트당원의 전투경험과 살라피스트의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가 융합했다. 2014년 ISIS가 ‘칼리프국가(caliphate)’를 선언할 무렵, 그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포함한 25명의 주요 사령관 중 17명은 2004년과 2011년 사이에 미국 억류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종파주의는 이라크의 시아파 주도 정부에 혼란을 야기했다. 2010년에는 누리 알 말리키 현 총리가 재선됐지만, 그가 이끄는 정당 ‘법치국가연합’은 아야드 알라위 전 총리가 주도한 ‘이라크 국민운동’보다 적은 수의 의석을 얻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알라위가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개입할 수 있었지만, 이란 정부가 선호하는 말리키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수수방관했다. 말리키의 정책은 이후 살라피스트ㆍ지하드에 대해 점점 편파적으로 변해갔다.

오바마 정부가 알라위 복귀를 거부한 것은 2011년 말 이라크 조기 철수 결정의 전조였다. 이 결정은 이미 이웃 시리아로 옮겨온 지하드 저항 세력에 길을 열어줬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이라크로 돌아가야 했고, 이후 시리아 개입을 시작했다.

오는 5월 이라크 총선에서는 안정을 유지하면서 국가기구를 지켜낼 정부가 나올 것이라는희망이 있다. 더욱이 차기 정부는 독립지향적인 이라크의 쿠르드인에게 다가가야 하고, 그들을 정치과정에 통합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미국은 정권 교체를 겨냥한 군사 개입은, 이후 닥쳐올 사태에 대한 현명한 계획이 없는 상태라면, 거의 대부분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15년 동안의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이러한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 증대는 이라크에서 외교를 포기하고 전쟁을 선택했던 미국의 실수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다. 유사한 접근법을 이란에 사용할 경우 미국은 중동에서 또 다른 30년 이상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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