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6 청소년연대 ‘민들레 이야기’

4ㆍ16청소년 연대 ‘민들레이야기’ 단원들. 박지윤 기자

스물한 살이었다. 머뭇머뭇 드러낸 모습에서 제법 어른의 태가 났다. 세월호 참사 1,000일째였던 지난해 1월 7일, 노란 광장에 나선 9명의 생존 학생들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 주었더라면...” 1,000일 동안 단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을 그 아픈 가정(假定). 편지를 읽던 눈시울이 서서히 젖어들었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2017년 1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사건 1000일을 맞아 생존학생 9명과 유가족 9명이 무대에 올라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정반석 기자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고합니다. ‘가만히 있어라.’ 단지 ‘어리다’는 이유입니다. ’아직 뭘 모른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4년이 지났다. 다시 찾은 안산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당시엔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어린이들이 그 날 배에 올랐던 누나ㆍ오빠들과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이 됐다. 너무 어려서 잘 몰랐던 비극의 실체를 뒤늦게 깨우치기 시작했지만 어른들은 말했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계속 몰라도 된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15일 발대식을 하는 4ㆍ16 청소년연대 <민들레이야기>가 그 시작이다. 전국서 20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의사를 전해왔고, 안산에 사는 학생을 주축으로 15명이 꾸준히 모인다. “청소년들은 아직 못다 핀 존재들이잖아요. ‘꽃씨’를 떠올렸어요. 멀리멀리 날아가 어디서든 눈부시게 노란 꽃을 피워내자는 의미예요. 그래서 민들레이야기죠.” 이들은 그들의 언니ㆍ 형들처럼 가만히 있지도, 어른들처럼 가만히 잊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느덧 네 번째 봄을 맞이한 안산에서 <민들레이야기>의 학생들을 만났다.

7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민들레이야기 단원들. 윗줄 왼쪽부터 김대환(16)군, 홍재현(15)군. 아랫줄 왼쪽부터 정수빈(18)양, 이다영(17)양, 최가람(15)양. 박지윤 기자
“어리니까 몰라도 돼” “공부나 열심히 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급식 먹고 돌아왔는데 학교 끝났다고 집에 가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막 신나서 집으로 뛰어갔어요. 그 이후로는 그냥 어리둥절해 있던 기억밖에 안 나요. 사방이 눈물에 젖고 노란색으로 물 들고…” -홍재현(15)군-

그 누구도 열두 살짜리 어린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각자 제 몫의 슬픔을 감내하기에 바빴다. 아는 누나가, 형의 단짝이, 친구의 언니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지만,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대낮부터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계신 엄마를 따라 저도 뉴스를 봤어요. 한쪽 숫자는 그대로인데, 다른 한쪽 숫자는 자꾸 올라가는 거예요. 어? 무슨 큰일이 난 거구나.” 섣불리 묻지 않고 눈치껏 알아야 했다. 최가람(15)양도 그랬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들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어리니까 몰라도 돼’였고, 중학생 때는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가 됐죠.” 물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어른들도 있었다. 모르는 척 피해가려는 쪽이 더 많았을 뿐이다. “아직도 노란 팔찌나 리본 배지 달고 다니는 애들 중엔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남들이 하니까 그냥 다 따라서 하는 거죠.” 기억의 상징을 내걸고 다니지만, 정작 기억의 의미는 없는 셈이었다.

’민들레이야기’란 이름엔 멀리멀리 날아가 어디서든 눈부시게 노란 꽃을 피워내자는 다짐이 담겨있다. 민들레이야기 제공.

잊지 말자고 아프게 다짐해놓고 너무 쉽게 지겨워했다. 기억하고 되새기는 게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던 것도 잠시. 그 의무는 어느새 교사 개개인의 재량에 맡겨졌다. “단원고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에 다녀요. 4월이 와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시험기간이다, 입시 준비다 바쁠 수밖에 없다는 이유인데 결국 먼저 행동하는 건 몇몇의 학생들이고요. 학교가 세월호와 관련된 뭔가를 주최한 적은 거의 없어요.” <민들레이야기>의 리더 정수빈(18)양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대입으로 바쁜 와중에도 자투리 시간을 쪼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대뜸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구는 선생님들은 있다. 이런 세상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결국은 너희가 바꿔나가야 한다고.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세상은 안전할 거란 믿음은 배신당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작 학생들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굳이 뭘 하냐. 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긴 하냐.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수빈양은 설득한다. ‘우리가 더 오래 살아갈 세상이야.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야지’라고. 노력은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새삼 ‘가만히 있으라’는 세뇌가 무섭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참사 이후에도 많은 것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청소년들이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들레이야기 단원들이 직접 만든 피켓. ‘너희들은 어려서 뭘 모른다니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민들레이야기 제공.
정치적으로 진화한 ‘세월호 세대’

“곧 4주기니까 광화문에서 추모제가 열리잖아요. 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등교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친구한테 ‘우리 같이 갈래?’라고 묻고 있었어요. 그런데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곁눈질로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불쑥 오시더니 갑자기 쏘아붙이시는 거예요. 그런 곳에 대체 왜 가느냐고.” -김대환(16)군-

딱 그 또래의 자녀가 있을 법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대뜸 다가선 여자는 밑도 끝도 없이 꾸지람을 늘어놨다. “너희들이 거기 나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니? 얌전히 할 거나 해.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학생이 말이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공부를.” 대환군은 재작년 11월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태극기를 온몸에 두른 할아버지ㆍ할머니들에게 멱살을 잡힐 뻔한 것. “어휴, 저 빨갱이 새끼들! 어린것들이 어디서 선동을 당해 가지고!” 대환군과 친구들이 ‘빨갱이’로 몰린 이유는 하나였다. 가슴에 매단 세월호 배지. 언제부터 노란 리본과 노란 종이배가 ‘종북 좌파’ 혹은 ‘빨갱이’의 상징이 됐는지, 대환군은 도무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었다. 잠자코 있었더라면 흠씬 두들겨 맞을 뻔했다. 주변 어른들이 달라붙어서 겨우겨우 그들을 떼어 냈다.

지난 1월에 가진 민들레이야기의 두 번째 오프라인 공식 모임. 이때 ‘민들레이야기’라는 단체명이 만들어졌다. 4ㆍ16안산시민연대 제공

“중학교 3학년만 돼도 어른들 하시는 세상 얘기 어느 정도는 알아들어요. ‘제 생각은요’ 한번 할라치면 ‘조그만 게 뭘 안다고 종알종알 끼어드냐’는 거예요.” 가람양은 답답하다. 훌륭한 어른이 되어 바꾸라는 말은 공허하다. “시간 지나면 결국 우리도 어른이 될 것 아닌가요? 이미 청소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게 되는 거예요. ‘계속 기다리라’하면 청소년들은 도대체 누가, 언제 대변할 수 있는 건가요.” 어른들 말마따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란 말은 억울하다. 요즘 청소년 열명이 모이면 일곱 이상은 광장에 나섰던 ‘촛불 시민’이다. 웬만한 어른들보다 시사 이슈에 예민하다. 페이스북에서 언론사 계정을 팔로우하는 건 기본, 포털 사이트에 걸리는 뉴스도 두루두루 다 살펴본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차가운 바다에 갇혔던 선배들의 존재가 그들을 바꿨다. 분노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능한 어른들을 향해 촛불을 들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정치적으로 진화’한 존재들이다.

“요즘 청소년 투표권 쟁취운동도 한창이잖아요. 저희도 동참하고 싶어요. 고등학생만 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넓어져요. 터무니없이 초등학생ㆍ중학생까지 투표권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18세로 낮추자는 거예요. 적어도 ‘청소년들 중 일부’는 유권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수빈양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망언에 LED 촛불을 들고 나선 친구들을 봤다. “사리분별을 못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다? 어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은 많아요. ‘사람’의 문제이지 ‘나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그게 한 두 살 차이라면 더더욱이요.”

“올챙이 사정은 올챙이가 제일 잘 아니까 우리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는 거예요. 개구리 어른들은 올챙이적 생각 못해요. 청소년들 스스로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른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요.” 재현군이 <민들레이야기>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뭔가를 시도하고 이뤄내 보는 것. 어른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면서 정작 어떻게 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안다. ‘적어도 가만히 있지 말 것’.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들이, 여기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안전한 것 같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뇨!”

기자의 물음에 5개의 입에서 이구동성이 튀어나왔다. 대환군은 참사 이후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아쉬울 법도 한데 차라리 다행이란다. “여전히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여전히 책임 질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참사 이후 안전교육 관련법은 바뀌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느끼는 건 똑같다. 방법은 그대로고 횟수만 늘어났다. “이젠 100명 이상의 학생이 같은 장소로 체험학습을 가게 될 경우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을 해야 해요. 근데 안전교육이래 봤자 동영상 하나 보는 게 전부예요. 친구들은 다 자요. 내용도 그냥 뻔한 얘기예요. 안전벨트 하자, 구명조끼 잘 입자. 선배들이 구명조끼 안 입어서 희생된 게 아닌데…” 재현군이 불만을 토로하자 듣고 있던 4명의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7일 오후 민들레이야기 단원들이 오는 15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모식’에서 선보일 플래시몹을 연습하고 있다. 이들은 래퍼 치타의 노래 ‘옐로 오션(Yellow Ocean)’에 맞춰 안무를 선보일 예정이다. 정수빈 학생 제공

세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에 학교에서 30~40명 정도가 캠프를 간 적이 있어요. 강원도 산속으로 갔는데 눈이 엄청 와서 버스가 계속 미끄러졌죠.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공포로 떨리는 눈동자들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땐 달랐죠. 일단 다 같이 차에서 나왔어요.” 위험하니까 밖에 나와서 기다리자는 무언의 합의였다. 수빈양을 비롯한 친구들 모두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모두의 머리 속에 새겨진 ‘그 기억’ 때문이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요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뒷면에 세월호와 노란 리본이 그려진 손거울을 만들어 팔았다. 금세 동이 났다. 적지만 값진 돈은 세월호 관련 단체에 보탬이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학생들의 손만’ 거쳤다.

“저희도 해 보고 싶은 게 많아요. 퍼레이드, 서명운동, 플래시몹, 합창…. 아! 벽화 그리기도 계획 중이에요. 안산이 재개발 중이라 여기저기 위험한 공사현장들이 많거든요? 공사 가림벽에 세월호위로 날리는 민들레 꽃씨들을 그려 넣을 거예요. 그리고 청소년들도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들이 여기 있다고요.” (웃음)

7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플래시몹 연습을 마친 민들레 이야기 단원들이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지윤 기자
피어날 꿈들과 부서진 꿈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순수한 궁금증에 던진 물음이었지만 문득 ‘요즘 애들은 꿈도 공무원, 정규직이라던데 괜한 걸 묻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질문을 곰곰이 곱씹으며 바삐 굴러가던 눈동자들이 동시에 반짝하고 빛났다.

“동물사육사가 될 거예요. 새를 좋아해요. 보드랍고 따뜻하잖아요.” 친구들이 꺼낸 이야기에 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던 다영(17)양이 말했다. 얼굴 가득 미소가 배시시 번졌다. 차례로 너도나도 자신의 꿈을 말했다. 수빈양은 연극배우, 대환군은 IT전문가, 가람양은 음악 프로듀서, 재현군은 기자. 그들의 목소리가 가장 들뜨는 순간이었다.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딱 정하기가…” 수빈양이 말끝을 흐리면서 수줍게 웃었다. 꽃샘추위 탓인지 부끄러움 탓인지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 붉었다.

4년 전, 어두운 바닷속 아이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동그랗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고 한다. 두 주먹은 꼭 쥔 상태로. 뼈 속까지 스민 것은 한기였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그들에게도 두 뺨을 금세 붉힐 소중한 꿈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수백 개의 꿈이 부서진 그 날이, 또 왔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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