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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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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꿈에

입력
2018.04.12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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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거의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학교 가야 할 아이를 날마다 깨우고, 공부며 온갖 일상에 잔소리를 했지만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그 바다 이후 오직 꿈에서라야 아이를 볼 수 있게 되어버리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게 한이 맺힌다. 왜 그 때 밥 먹듯 잔소리하는 대신 밥 먹듯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을까. 아니, 제발 잔소리라도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수행적인 발화 행위다. ‘사랑한다’는 말과 글은 참과 거짓을 진술하는 진위문이 아닌 수행문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와 나는 사랑 안에 있게 된다. 모든 사랑에 끝이 있다고 해서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이 오롯이 발현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이으면서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그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이제야 뒤늦게 먼 하늘로 피워 올릴 뿐이다.

2014년 4월 16일이 사랑을 환기시키는 특별한 날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잃은 가족만이 아니다. “큰 아이가/생일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참으로 슬프게 운 날이 한 번 있습니다.//3년 전,/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4월16일이 그 날입니다.//그 때부터 해마다 큰 아이는/생일 촛불 앞에서/이 기도를 빠뜨리지 않습니다.//하늘에서 부디 편안하세요./잊지 않을게요.//누구도/잊지 않아야 돼요.//잊지 않을게요.”(임복순, ‘아이의 기도’ 전문)

4월 16일이 생일인 아이처럼 영영 이 날을 기억할 이들에는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들도 있다. 누구보다 어린이, 청소년과 가까우니 슬픔, 분노, 죄책감이 더 컸을 것이다. 참사 직후부터 어린이청소년문학인, 출판인은 광화문 천막을 지키고, 소책자를 만들고, 진도 팽목항에 ‘기억의 벽’ 타일 작업을 했다.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전 12권) 작업에 참여해 유가족을 인터뷰하며 아이들의 삶을 남긴 139명 작가단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이들이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였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은 매년 4월호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작품과 글을 싣는다.

오는 14일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의 세월호대책실천위원회는 팽목항 주변 팽목바람길 개통식 걷기 행사를 가진다. 이날 정식으로 개통되는 길을 앞으로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1시마다 걸을 예정이다.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끝까지 밝히려는 뜻을 안고, 먼저 간 아이들과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뒤늦게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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