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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좌ㆍ우 구도로는 ‘제2의 근로혁명’ 풀 수 없다

입력
2018.04.1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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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임금이나 야근 휴일 근무에 매달려야 지탱이 가능한 기업이라면 얼마나 더 가겠습니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계기로 산업구조 개혁도 속도를 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대기업 총수를 지낸 재계 지도자급 인사가 사적인 자리에서 한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7월부터 적용될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 예상했던 답변과 달라 내심 놀랐다.

한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대학생은 “편의점이나 피시방 채용 면접에서 경력이 있는지 물어본다”며 “최저임금 인상 이후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면서 여기에도 스펙이 필요한 시대가 된 모양”이라고 하소연한다.

한국일보는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무제가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 이후 우리나라의 근로 관행을 다시 한번 크게 뒤바꿀 ‘제2의 근로혁명’이 될 것이라고 보고 준비상황을 점검하는 기획을 연재 중이다.

기획 준비가 진행될수록 ‘제2의 근로혁명’은 기업 대 근로자, 대기업 대 중소기업, 보수 대 진보라는 기존 틀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졌다. 앞에 소개했듯이 기업주가 근로시간 단축을 찬성하고,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은 최저임금 인상이 불만스러운 새로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규모보다 업종에 따라 이해관계가 나뉘고, 노사대립도 희미해져 ‘월급을 더 줄 수 없어 직원을 줄인다’는 고용주와 ‘보수가 적더라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근로자는 같은 입장이 된다.

제2의 근로혁명 과정에서 근본적 갈등은 디지털산업과 전통산업 사이에 놓여있다. 인력 비중이 높은 업종이라면 소프트웨어 개발 같은 정보통신 업종도 제2의 근로혁명에 적대적인 전통산업으로 분류되며, 공정 자동화가 진행됐다면 섬유나 신발 업종도 제2의 근로혁명을 환영하는 디지털산업이다.

제2의 근로혁명은 보수 대 진보라는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상호 토론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도출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도 제2의 근로혁명은 ‘관심 밖 이슈’이다. 여ㆍ야 간 득실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역대 국회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번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된 것은 역설적으로 여야의 주요 관심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시행을 불과 석 달 앞두고, ‘제2 근로혁명’을 성공시켜야 하는 과제가 이렇게 우리에게 넘어왔다. 성공하면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고, 더 바란다면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일자리 공유가 활성화되고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장 취재결과 도입 초기 부작용이 애초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세계적인 명품 가방 브랜드에 지퍼를 납품하는 국가 공인 명장(名匠)은 진작 해외로 공장을 옮기지 않은 걸 후회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한다. 자동화 기기 도입이 가능한 업종은 고용을 늘리기보다 기계를 늘린다.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제2의 근로혁명은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과제이다. 정부가 할 일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경우 적용 시기가 종업원 규모 기준으로만 나뉘어 있는데, 여기에 업종별 상황을 살펴 적용시기를 더 세밀하게 나누고, 유연근로시간제 운영도 업종 형편에 맞춰 다양화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제2의 근로혁명 이후 변화도 대비를 해야 한다. 193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후 미래에 대해 “진보적 국가들의 생활 수준이 지금의 4~8배가 향상되고, 일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주당 15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케인스 예언의 절반은 이미 실현됐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주당 15시간 노동’을 향한 변화가 전 세계에서 움트고 있다. 2030년 한국의 주당 노동시간이 몇 시간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의 영역이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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