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으로 쉬엄쉬엄 고흥 마복산 산길

고흥 마복산은 기암 절경과 다도해 풍경을 동시에 즐기는 산이다. 해재 인근 임도에서도 남성리 해안마을 앞으로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흥=최흥수기자

보성 벌교에서 1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이라는 대형 입간판이 눈에 들어 온다. 자연 환경만큼은 자신 있다는 표현이다. 우주발사대가 들어선 외나로도, 한센인의 아픔을 간직한 소록도 정도로만 알려졌던 고흥은 연홍도를 미술 섬으로 꾸미고, 애도(쑥섬)을 이야기 가득한 정원으로 가꾸는 등 관광객 유치에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웅장함과 아기자기함을 동시에 갖춘 팔영산도 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큰 맘 먹지 않으면 여덟 봉우리를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비해 포두면 마복산은 힘들이지 않고 자연이 빚은 비경과 다도해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다도해와 기암절경을 동시에…마복산 산길

마복산(馬伏山)은 말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다. 조선 영조 33년(1757)에 전국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마북산(馬北山)으로 표기돼 있는데, 1917년 일제강점기에 마복산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35m로 그다지 높지 않고 지경도 아담한 규모지만, 해창만에 접한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을 돌아오려면 4~5시간은 족히 걸린다. 중턱부터 시작하는 내륙과 달리 바닷가 산은 해발 고도만큼 고스란히 걸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마복산 해재에서 보는 다도해 풍경.
마을 뒤편으로 다도해의 섬들이 그림처럼 둥둥 떠있다.
바닷가 산자락에서부터 몽글몽글 봄이 오른다.
마복산 기암 아래로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대신 산행의 즐거움을 일부 포기하고 차량으로 천천히 옛길을 돌아봐도 괜찮다. 좋게 포장하면 ‘마복산 쉽게 오르는 요령’이고, 사실대로 고백하면 게으른 여행객의 잔꾀다. 북측 산기슭의 마복사까지는 임도를 겸한 포장도로가 나 있고, 이 길은 마복산의 남측과 북측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과 연결돼 있다. 시작은 차동리 내산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마복산 북측 골짜기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4km 구불구불 산길을 거슬러 오르면 해발 300m 고갯마루(해재)에 닿는다. 산중턱에 조각처럼 매달리 기암괴석 주변으로 진달래며 산벚꽃이 화사하게 피었고, 이제 막 움트는 새순이 엷은 초록으로 능선을 물들이는 중이다. 나뭇가지는 아직 겨울 때를 완전히 벗지 못해 몽글몽글 피어나는 봄이 단풍처럼 곱다.

해재 정상에 닿으면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면서 시선은 바다로 향한다. 수평선 부근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로 둘러싸인 내해의 크고 작은 섬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마침 비가 그친 직후였고 바로 황사가 뒤따라 파란 바다는 보지 못했지만 다도해 풍경만으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오른편 활공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가면 시야는 더욱 넓어진다. 왼쪽 내나로도에서 오른편 거금도까지 부챗살처럼 펼쳐진 바다에 소룡도 대룡도 수락도 대염도 지죽도 시산도 등 다 헤아리기 어려운 작은 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둥둥 떠 있다.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봄날의 꿈결 같다.

마복사 뒤편에 오르면 드넓은 해창만 들판이 펼쳐진다.
해재 인근 바위봉우리에서 보는 다도해 모습. 황사가 푸른 바다를 가렸지만 나무랄 데 없는 풍경이다.
봉우리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린 진달래.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것 같은 바위 덩어리 하나하나가 자연의 예술품이다.
비가 갠 후 운무에 휩싸인 마복산 능선.

마복산 자체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다. 능선과 골짜기마다 말 근육처럼 매끈하고 힘이 넘치는 바위가 쌓이고 널렸다. 조물주가 아무렇게나 주무르다 내던져 놓은 것 같은데, 갈라지고 이어진 선이 살아 움직이는 듯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해재에서 마복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10분 정도 걸으면 해탈바위를 지나 조선바위와 병사바위로 이름한 거대한 바위 군상이 떡 버티고 있다. 바닷가 방향으로 덩그러니 올라 앉은 바위는 굴러 떨어질 듯 위태하고, 내산마을 쪽에 솟은 바위는 당당하고 우람하다. 자연의 작품을 함부로 가두고 규정짓기엔 인간의 언어가 한없이 초라하고 왜소하다.

해재에서 마복사까지도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마복사 뒤편 언덕에 오르면 바다 대신 드넓은 해창만 들판이 펼쳐진다. 본격적이 농사철이 아니어서 텅 빈 들판에 바둑판 논두렁을 따라 초록이 오르는 모습이다. 1969년 완공한 해창만 간척지는 고흥 최대의 평야이기도 하다. 정식 등산로는 이곳 마복사에서 해재까지 3.3km, 넉넉잡아 2시간이 걸린다.

하루 두 번 바닷길 열리는 우도

마복산이 말과 관련한 지명이라면, 득량만의 우도(牛島)는 소와 연관된 섬이다. 고려 말 섬에 처음 들어와 살던 황씨가 지형을 살펴보다 소의 머리 형상을 한 대형 암석을 발견하고 ‘소섬’ 혹은 ‘쇠섬’으로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고 전한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 한때 우죽도(牛竹島)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70여가구가 살고 있는 작지 않은 섬이지만 관광지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차츰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하루 두 번 열리는 우도 바닷길.
질펀한 갯벌에 굴이 새카맣게 박혀 있다.
우도 바닷길을 걸으면 살아 숨쉬는 갯벌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남양면 중산일몰전망대에서 가깝다. 물이 빠지면 6시간가량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섬까지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입구에 2개월 치 바다가 갈라지는 시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바다타임닷컴(badatime.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량으로 가면 수월하지만 걸어서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약 1.3km로 20분 정도 걸린다.

섬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지나온 바닷길을 중심으로 양편으로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우도는 득량만에서도 쑥 들어간 구석진 곳으로 갯벌이 만들어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바닷길에서 보면 수평선에 걸리는 작은 섬 풍경도 정겹지만, 차진 펄 밭에 굴이 새카맣게 박힌 모양이 장관이다.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모습이나 양식장에 줄줄이 걸린 굴만 보아 온 터여서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고흥 사람들에게 어릴 적 정서와 입맛을 자극하는 ‘피굴’이라는 음식이 있다. 굴을 껍데기째 삶은 후 뽀얀 국물에 알맹이만 담가 차게 식혀 먹는 별미다. 외지인에겐 낯설지만 주민들에겐 가장 익숙한 음식이다. 우도 바닷길에서 보는 갯벌 풍경은 고흥 ‘피굴’을 닮았다.

과역면 산티아고 커피농장의 고흥 커피.
영남면 미르마루길 용바위 조형물. 고흥군청 제공

우도에서 가까운 과역면에는 15농가가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전체 생산량은 미미해도 국내 최대 커피 생산지다. ‘커피마을’과 ‘산티아고’ 커피농장 두 곳에서 고흥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산티아고 농장은 원두를 직접 볶아 내려 마시는 체험장도 운영한다. 다음달 영남면 남열리에 고흥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걷기길이 열린다.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용바위까지 이어지는 4km 탐방로 이름은 용과 하늘을 의미하는 ‘미르마루길’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끼고 다랑이와 몽돌해변 등을 지난다. 다음달 12일 이곳에서 미르마루길 걷기축제가 열린다.

고흥=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